작업기 | <표기식> 나무가 서 있다. 자라는 나무가 서 있다.
1년 동안 한강 둔치에서 발견한 한 그루 나무를 촬영한 사진작가가 있다. 작가님은 매일같이 한강을 찾아 ‘자라는 나무’를 섬세하게 살피고 프레임에 담았다. 매일 똑같은 나무를 촬영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변화를 발견할 수 있을까?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나무라면, 그 짧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순간순간 발견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어제보다 얼마나 늙었는지를 알아채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사람의 마음, 행동, 변화 등을 관찰하고 브랜드 경험을 설계하는 디자이너 관점에서 가장 섬세하게 살핀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를 고민하다 작가님의 작업이 생각났다.
작가님을 처음 만난 것은 어떤 프로젝트를 위한 사전 미팅에서였다. 우리는 자연스럽고 날것 느낌이 나는 ‘계획된’ 사진이 필요했다. 의도하지 않은 듯, 무심하게 툭 순간을 담으면서도 그 자연스러움이 철저하게 계산된 사진 이어야 했다. 몇몇 작가님들과 미팅을 진행했지만 딱 우리가 생각하는 분이 없었다. 날것의 느낌을 원했지만 우리가 미팅한 작가님들의 사진은 날것 느낌의 대상을 촬영하더라도 묘하게 구도와 그리드가 맞아있었다.
표기식 작가님은 우리와 약속된 미팅룸에 들어오면서부터 여러 가지를 관찰하며 툭툭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던졌다. 미팅룸으로 오기까지의 동선이라던지, 지금 시간대에 햇빛이 어디서 들어오고 그림자는 얼마나 어떻게 떨어지는지, 문을 열고 걸어 들어와 자리에 앉기까지 그 짧은 순간에 회의실 조명과 콘센트의 위치, 개수까지 모든 파악을 마쳤다. 순간을 담아낼 계획을 본능적으로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의 의도를 듣고 '이런 것들이 필요한 것 맞냐며 툭툭 꺼내 보여준 사진은 딱 우리가 생각했던 이미지 그대로였다. 프로젝트는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결과도 좋았다. 예민한 성격이라 같이 작업하기 힘들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전혀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
프로젝트를 잘 마치고 얼마 지나, 찍어둔 나무 사진으로 달력을 만드려고 하는데 내가 디자인을 도와주었으면 좋겠다 하여 기꺼이 하겠다했다. 시간의 순간을 담은 사진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달력이라는 것이 묘하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같은 순간은 없다. 그리고 한번 지나간 순간은 되돌릴 수 없다. 자신을 아예 지워버리고 세심하게 나무와 교감하며, 미세한 변화를 관찰해 계획적으로 찰나를 포착하는 이 작업이야말로 가장 마이크로 한 디테일이 살아있는 경험 디자인이 아닐까?
작가님은 사진은 작가님과 닮았다. ‘어떻게든 되겠지’, ‘그냥 하는 거야. 잘 모르겠어’라고 말하며 무심한 듯 툭툭 찍어내지만 그 안에는 엄청나게 섬세한 관찰과 계획이 담겨있다. 아름답게 흔들리기 위해서도 관찰과 계획이 필요하고, 자연스럽게 혹은 무심하게 찍기 위해서도 관찰과 계획이 필요하다.
우리가 앞으로 디자인을 하며 나무가 자라는 변화를 포착할 만큼 섬세하게 대상을 살피는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아래 링크에서 작가님의 더 많은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pyokisik.com/portfolio/the-tree나무가서있다-자라는나무가서있다/
에도 아주 가끔씩 작업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