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 디자이너의 경험]
오랜만에 브런치에 올리는 글입니다. 많이 주관적이고 가볍지 않은 생각을 적었습니다.
안상수 선생님과 인연
안상수 선생님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우연한 기회로 선생님, 그리고 선생님의 개인 연구실 조교들과 한 달간 독일에 머물게 되면서이다. 당시에 나는 대학에서 학부를 졸업하고 홍대 근처에서 친구들과 음악 레이블(음반 기획사)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었다. 기획자, 프로듀서, 몇몇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들이 모인 작은 규모였다. 나는 내 앨범을 준비하며 동료 뮤지션의 디자인을 도와주는 역할을 했다. (돕는다는 표현이 다소 어색하지만 돈을 받고 일을 한 것은 아니니 돕는다는 표현을 쓰겠다.) 라이브 클럽이나 크고 작은 행사들이 우리의 주요 무대였다.
좋아하는 음악으로 과연 돈을 벌고 먹고살 수 있을까? 비주류 음악으로도 성공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막연한 시기였다. 미래가 불확실했기 때문에 나는 학생 신분을 더 유지하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에 대학원 진학을 마음먹었다. 디자인에 큰 뜻이 있거나 무언가 더 배우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목적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입시를 치렀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운이 좋게 장학금을 받으며 입학할 수 있었다. 같은 학부를 나온 자대생이 아니었기 때문에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안상수 선생님과 함께 한 달간 독일에 인사이트 투어를 떠나게 된 것이다. 지금에서야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안상수 선생님도 날개집이라는 디자인 연구실도 잘 몰랐다. 선생님은 그 해에 인쇄 출판 분야에 가장 영향력이 있는 디자이너에게 부여하는 구텐베르크 프라이즈를 수상했고 독일, 라이프치히의 초청을 받아 한 달간 독일에서 머물며 준비된 워크숍, 강연, 투어를 진행하는 일정이 잡혀있었다.
대신 떠나게 된 여행
상수동, 학교 후문 오래된 빌라에 위치한 선생님의 개인 연구실 조교는 5명이었고 그중 연구실 조교 A가 개인 사정이 있어 투어 참여가 어려웠다. 시간이 많이 흘러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독일에서 숙박, 항공권 등 지원금이 나오는 것이었기 때문에 학교에선 남은 한 자리를 두고 공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리고 어떤 과정이나 절차가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높은 경쟁률을 뚫고 남은 한 자리를 내가 차지하게 되었다.
나는 안선생님과 인연이 있었던 것도, 선생님의 수업을 들은 적도 없고 디자인 작업을 보여드리거나 포트폴리오 제출도 없었다. 심지어 영어 인터뷰였는데 나는 질문들을 이해하지도 못한 채 인터뷰를 위해 외운 문장들만 반복했다. 나는 해외여행 경험이 없었고 단순히 외국에 나가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나는 운이 좋았고 A를 대신해 투어에 깍두기로 참여했다. 안선생님과 함께 하고 싶어 했던 그 많은 친구들을 대신해 비행기에 오른 것이다. 그렇게 안선생님과 인연을 맺고 음악과는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독일에서 나는 마치 꿔다 놓은 보리자루 같았다. 유창하게 외국어를 구사하지도 못했고, 독일 학생들과 워크숍에서도 디자인에 대한 이해도가 적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좋은 작품들과 귀한 자료들을 꺼내어 보여주어도 정작 나는 그것들이 뭔지 몰라 감흥이 없었다. 유명한 디자이너를 소개를 받아도 누군지 몰랐다. 이 좋은 기회를 정말 잘 활용하고 꼭 필요한 사람이 있었을 텐데 아무것도 모르고 의욕도 목적도 없는 내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는 것이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한 달 내내 불편했다. 4주가 지나고 서울로 돌아가기 전 날 밤 안선생님은 조용히 나를 불러 한국으로 돌아가면 연구실 일을 도와줄 수 있는지 물었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있는 힘을 다해 한 번 해보고 싶었고 도움이 되고 싶었다.
같이 음악을 하던 친구들에게 사실을 말하고 연구실 일을 시작했다. 사실 음악이 좋았지만, 음악을 하면서도 잘될 것이라는 확신은 없었다. 동료들 모두 이것 하나만 보고 있고 어떻게든 음악으로 성공하려고 모든 것을 걸고 있는데 나만 다른 안전한 장치들을 계속 찾고 있다는 것이 비겁하게 느껴졌다. 진짜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하는 것이 맞지… 라는 생각에 준비하던 앨범을 정리하고 대신 친구들에게 디자인이 필요한 상황마다 디자인을 도와주었다. 내심 그것이 함께하던 친구들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고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친구들의 작업을 돕고 있다.
그렇게 나는 누구누구의 대신 디자인을 시작했고, 미안한 마음이 있어서일까 누구보다 열심히 디자인을 했다. 재능이 없었고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자존심도 없었다. 많이 묻고 많이 듣고 동료들에게 배웠다.
누군가를 대신해 일한 다는 것
시간이 많이 흘러 자연스럽게 내가 사람을 뽑을 위치가 되자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 “어떤 사람을 채용하고 싶은지…”. “어떻게 하면 좋은 회사, 가고 싶은 회사에 입사할 수 있는지…” 매우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답은 간단하다. 가장 그 자리를 원하고 가장 간절한 사람을 채용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채용에는 많은 변수들이 작용한다. 운, 시기와 타이밍, 간절함을 뛰어넘는 감각과 실력, 학연과 지연 등 말이다. 솔직히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이런 변수 들 또한 하나의 실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중요한 사실 하나는 내가 차지한 그 자리는 정말 그 자리를 간절하게 원하던 다른 누군가의 자리라는 것이다.
*지난 겨울 내 친구이자, 동료이자, 좋은 경쟁자이던 A가 세상을 떠났다. 미국에서 긴 유학생활을 마치고 멋진 스튜디오를 만들어 디자인과 교육 분야에 활발한 활동으로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던 중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 A를 대신해 디자인을 시작했던 것처럼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나는 여전히 누군가를 대신해 디자인을 하고 있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