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살 내 꿈은 뭐였을까?
패션 디자이너, 간호사, 선생님, 가수. 어린 시절, 하고 싶은 일들은 참 다양하다. 이것도 저것도 하고 싶은 것이 많은 나이. 드라마가 나오면 언제 내가 간호사가 되고 싶었냐며 급작스레 광고 디자이너로 바뀐다. 그러다가 빼도박도 못하게 꿈과 미래가 결정되는 시간이 있다. 바로 고3 수능 성적이 발표되고 나서이다. 이때는 대부분의 내 수능 성적이 곧 미래의 직업으로 귀결된다. 반드시 어떻게 해서든 대학에 입학해야하다보니 결국 내 흥미와 적성은 수능 점수에 맞춰 이리저리 흔들린다. 오늘은 이 학교의 경영학과가 좋았다가 내일은 저 학교의 신문방송학과가 갑자기 미래 비전이 밝아 보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아, 나는 누구란 말인가.
이렇게 입학한 대학 생활. 1학년이 정신없이 지나고, 중간 고사도 몇 번 보고, 시험을 쉽게 내겠다는 교수님에게 한두 번 속아도 보면 그제야 내 주변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다. 어떤 친구들은 밤을 새워 이것저것 하며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해대는데 이건 뭐 재미가 없다. 사실 좋아하는지도 싫어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공부가 원래 이런 것 아닌가? 아 이 전공,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전공이었나? 엄마한테 떠밀려, 담임 선생님한테 설득당해 어쩌다가 걸려 들어온 학과였던가?
그리고는 다시 어린 시절 내 꿈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 나 뭐하려고 했었지? 가장 최악의 상황은 그런 어린 시절의 모습들을 떠올리며 현재에 안주하는 것이다. 그 당시 내가 하려던 꿈을 접게 만든 여러 상황들에 대해 핑계를 대며 그 일을 하지 않고 미련을 가득 갖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의 꿈은 그렇게 뭉게뭉게 구름이 되어 커진다. 도달하지 못하는 나의 꿈은 미련과 환상 사이에서 진화하고 결국 어린 시절의 꿈은 나에게 지금 내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고 열심히 살지 않는 핑계거리가 된다.
“ 선생님, 제가 원래 좋아하던 일은 이게 아니였어요.”
“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지 않아서 그런지 전공도 재미없고, 사는 게 의미가 없습니다.”
이런 상황이 대학 졸업 때까지 지속되면 어떻게 될까? 미련이 가득해지면 결국 오늘의 현실이 재미없고, 이런 재미없는 현실이 몇 년간 지속되다 보면 졸업 때 자신의 모습은 한심해지게 된다. 이런 친구들에게 하는 이야기가 있다. 방학을 이용하던 휴학을 하던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미친 듯해보는 시간을 갖으라는 것이다. 실제 그 일에 몰입을 해서 해보았을 때 나타나는 결과는 보통 두 가지이다. 하나는 내가 10여 년을 넘게 꿈꿔온 그 일이 생각보다 재미없다는 것. 또 하나는 정말 이 일이 나한테 아주 잘 맞아서 이걸 평생 해봐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많은 대학생들이 그렇듯 나 또한 어린 시절 미술에 재능이 있다고 자부했다. 부모님 몰래 할아버지한테 돈을 빌려 화실을 다녔으니 말이다. 고3 시절 미술을 하고 싶다는 것을 확신! 하여 시작한 이 몰래 화실 생활은 결국 이과인 나에게 미련만 남기고 끝났다. 나는 결국 이공계 전공을 선택해서 대학을 들어갔다. 대학에 간 후에도 그 미련은 계속 남았다. 아르바이트를 미친 듯이 해서 모은 돈으로 처음 구매한 것은 화구 세트, 수십만 원을 들여 화구 세트를 사고 찾아간 곳은 일반인들을 위한 화실이었다. 선생님은 나에게 잘한다며 칭찬을 연신 해주셨다. 역시 난 재능이 있었던 것이었다라고 착각하는 순간, 그 화실에 입시 준비를 하는 친구가 들어오고 나서 그 착각은 무참히 깨졌다. 나보다 훨씬 더 잘 그리는 그녀에게 선생님은 호된 질책을 하고 계셨다. 생각해보면 나는 ‘취미’로 온 수강생이고 이 수강생에게는 칭찬이 필요할 뿐 판단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 나는 그림으로는 이 분야에서는 관심과 호기심이 있을 뿐 직업으로 삼을 만큼의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주일에 두 번의 일탈이 취미의 수준이지 이를 악물고 악다구니를 쓰면서 이 일을 하고 싶을 만큼 좋아하지도 재능이 있지도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등받이도 없는 의자에 몇 시간씩 앉아 그림을 그릴만큼 절실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는 마음이 오히려 편해졌다. 매일 거부하던, 내 옷 같지 않던 일상에 다시 적응해보기 위해 노력했었다.
어린 시절 부모나 내가 속한 상황 때문에 거부당하고 할 수 없던 일이 있다면 그 덕질을 한번 취미로 삼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대학생들은 종종 내 전공이 발목을 잡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이제는 전공 하나로 먹고 살기 어려운 시대가 도래했다. 근사한 취미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몇 년간 짬짬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하나 해보는 것은 정신적 해방감과 정서적 만족감을 준다. 대학생들 중 본인만의 취미나 특기가 없는 친구들도 꽤 있는데, 이렇게 하고픈 일들이 취미나 특기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듯하다.
최근, 온라인 웹툰을 전문으로 하는 레진 코믹스는 채용 공고에서 ‘업무 외에 무언가에 심각하게 빠져 있는 분 ( 자전거, 레고, 다트 던지기, 식도락 등 온갖 종류의 덕질)’이라는 내용을 조건으로 걸었다. CJ의 경우 ‘마니아'라고 불릴 정도로 몰입해본 분야를 최대 3개 적어내시오.’라는 항목을 만들어 자기소개서에 넣기도 했다. 이 내용들은 전공 수업에서의 이야기를 듣고자 낸 질문은 아닐 것이다.
대학의 전공 하나로 수십 년을 버티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 평생 공부해야 하고, 대학이 아닌 여러 다양한 기관들이 생기면서 직장을 다니면서도 항상 새로운 것에 열려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복수 전공도 좋고, 그걸 꼭 학위가 아니더라도 교양 수업처럼 하나둘씩 수업을 듣기도 하고 외부에 강좌가 열리면 적은 비용으로 강의를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특히 예체능 분야의 진로를 한 번쯤 생각해봤다면 지속적으로 자신만의 관심 분야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 내용을 블로그, 인스타그램 등의 SNS를 통해서 모아 이후 현 전공과 함께 연결해서 진로를 선택할 때 접목을 시키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대학시절 전공을 10대에 내가 원하던 것으로 정하지 못했다고 그 카드를 버리는 것은 정말 아까운 일이다. 전공으로 선택받지 못한 일들은 버려야 하나? 전공이 아니면 그걸 배울 수 있는 곳이 없나? 대학 교육이 고등 교육의 전부이고 대학 이외에 어른이 되어서 학습할 수 있는 곳이 없다면 모를까 최근에는 배울 곳이 넘치고 넘쳐난다. 미련만 가지고 있지 말고 냉콤 오늘부터 즐겁게 시작해보자.
TIP
1. 오프라인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곳
- 마이크임팩트 스쿨 http://www.micimpactschool.com/ : 다양한 짧은 수업들이 많다. 마치 청년과 직장인을 위한 방과후 문화 센터 같은 느낌
- 온오프믹스 http://www.onoffmix.com/ : 세미나, 박람회를 비롯 조금 더 전문적인 수업들이 무엇이 있는지 찾을 수 있다.
2. MOOC - Massive Open Online Course
- MOOC라는 단어로 검색해보면 여러 사이트가 나온다. 대표적인 것이 Edx와 Coursera이다. MIT를 비롯하여 전 세계의 유명 대학의 전공 수업을 온라인으로 듣을 수 있다. 시험을 보고 몇만원을 내면 수료증도 준다. 우리나라도 한국형 MOOC를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