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이 000인데 우쩌죠?
대학은 이미 학문을 하는 기관으로의 역할을 상실했다. 대학 진학률은 이미 80%에 육박하기 시작했고, 대학은 이제 학문을 연구하거나 탐구하는 것이 아닌 취업을 위한 기관의 역할을 더욱 충실하게 하기 시작했다. 대학 스스로 그렇게 변한 것이 아니라 국가가 대학을 그렇게 만들었다. 프라임 사업, 링크 사업 등 각종 사업단을 끌어들여 대학 평가를 시작했고, 평가를 잘 받은 대학은 어마어마한 국가 자금을 받기 시작했다. (한 학과에 1년에 10억이 넘는 자금이 투여되기도 한다.) 평생 연구만 하던 교수님들은 갑자기 자기소개서 첨삭을 하고 오래전 졸업한 대학 동창들에게 졸업생 제자들의 일자리를 부탁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대학과 학과는 이제 취업을 잘하는 학과와 못하는 학과로 구분되기 시작했다. 문송이라는 단어는 문과라서 죄송하다는 단어이다. 일명 전화기 학과 (전기전자/ 화학공학/ 기계공학) 는 취업률 깡패라는 별명을 얻어 90~100%에 가까운 취업률을 기록한다. 국문학과는 문화 콘텐츠 학과로 바뀌고 있고, 예체능계 학과들은 20%의 취업률로 전공이 한순간에 사라지기도 한다.
전공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해보면 정말 오래전 대학이라는 기관이 생기면서 만들어진 '구분'이다. 마치 도서를 분야별로 구분하듯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그리고 생각하는 방법을 구분한 것이다. 이런 구분으로 몇년간 생각하고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면 사고 방식도 역시 그쪽 방향으로 발전하게 될수 뿐이 없다. 디자인을 전공하는 사람 눈에는 모든 것이 디자인으로 보인다. 식당의 메뉴판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벽에 붙여있는 포스터가 눈에 거슬리기도 한다. 반면 신문 방송학과 전공자는 어떨까? 메뉴판의 오탈자, 맞지 않는 높임말이 신경 쓰일 것이다.
초중고등학교에서는 누구나 비슷한 한 권의 교과서로 세상을 읽는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8시까지 등교해서 배우는 것이 비슷하다. 하루 12시간을 학교에 잡혀 있다 보니 세상을 보는 창이 비슷할 수 뿐이 없다. 같은 책을 읽고 같은 생각을 공유한다. 사실 '공유'라는 것을 하기도 어려운 구조다. 우리의 교육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하지 않으니깐.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다양한 방법으로 조금 더 깊게 그리고 좁게 세상을 보는 방법을 배운다. 회사에서 일을 하거나 대학에 입학해서 전공을 선택하면 세상을 바라보는 수백 가지 방법 중 하나의 filter로 세상을 본다. 몇 년간 그렇게 '같은'방식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과 있다 보면 사고도 행동도 그렇게 변한다.
4년을 신방과에 있으면서 나는 어떤 메시지가 전달되고 그것이 여론이 되는 과정을 공부했다. 신문을 읽으면서도 뒤에 숨어있는 메시지를 찾으려 노력했고 졸업을 하고 나서 교육 영업이나 기획 일을 하면서도 나는 꾸준히 진중권, 홍세화, 강준만의 책이 나오면 우선적으로 구매할 만큼 사회가 돌아가고 여론이 형성되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말 그대로 신문방송학과에서 배웠던 창으로 교육업계를 바라보기 시작했던 것이다.
* 우크라이나의 건축설계사이자 파티셰인 Dinara Kasko의 케익. 건축학과가 케익을 바라보는 관점은 파티셰 과정을 이수한 파티셰들과는 다르다. 신문방송학의 창으로 바라본 교육은 또 다른 차별화된 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창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더 멋진 것들이 탄생한다.
홈쇼핑의 카메라맨, 대기업의 홍보팀, 신문사의 기자. 나와 동일한 전공을 한 많은 친구들은 말 그대로 '전공을 살려' 입사를 했다. 나는 조금 다르다. 첫 직장이 교육 관련 일이었고 나는 그 일을 잘 하고 즐거워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첫 직장은 책을 읽고 그 내용을 좀 더 쉽게 다듬어 청소년들, 학부모님들에게 전하는 일을 했었고 이후에도 여러 교육 프로그램을 서칭하고 강사들과 조율하여 대학과 기업에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일들을 했다. 교육공학을 전공하지도 교육과 관련된 일을 하지 않았지만 심리학, 교육학을 거쳐 기업의 인사 업무, 리더십, 창의력 등 교육과 연계된 분야의 많은 수업을 대학 외에서 들었고 사회생활을 하며 구매한 책들은 무려 2,000권이 넘는다.
내향적인 친구들의 입사를 도울 땐 내향적인 사람들에 대한 책은 몽땅 사서 읽었고, 관련 다큐멘터리, 국내외 논문까지 찾아보았다. 실제 인사팀 담당자분들에게 밥을 사며 내향인들의 채용에 대한 내용도 심도 있게 물어보았다. 어린 시절의 경험이 현재까지 발목을 잡고 있는 학생들과 상담을 할 땐 30권이 넘는 책을 사서 어린 시절의 경험이 어른이 돼서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공부하고 관련 프로그램을 기획하기도 했다. 내가 직접 심리 상담을 하진 않지만 위험군에 속한 사람에게 상담사에게 가라고 설득을 하기도 했고, 그런 친구들을 대할 때 어떤 것을 조심해야 하고 배려해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전공은 신문방송학과였지만 나의 10여 년의 시간은 1,000권이 넘는 책, 수백 편의 다큐멘터리, 국내외의 수십 편의 논문, 그리고 10년간의 경험이 또 다른 전공을 만들어주었다. 그 기간 동안 정보를 파악하고 교육의 트렌드를 감지하고 데이터를 정보로 만드는 능력은 4년간의 전공 때문에 생긴 관점이다. 전공이 틀을 만들어줬다면 졸업을 하고 난 뒤의 경험과 나의 활동은 그 안을 채운다. 직장도 대학의 전공과 유사하게 처음 몇년간의 직장이 세상을 바라보는 사고방식을 알려준다.
대기업은 전공과 직무가 일치하는 경우가 많다. 기업들의 경우 영업 직군을 제외하곤 정말 본인의 '전공을 살리는' 그런 연결성이 존재한다. 공대 전공자들이 가는 직무가 있고, 상경계가 가는 직무가 있다. 많은 대학생들의 좌절은 이렇다. 고등학교 시절 대학 전공을 선택할 때 그리 고민을 많이 하지 않고 떠밀리듯, 혹은 수능 점수 맞춰 전공을 선택하다 보니 어쩌다가 대학에 그 전공으로 입학했고, 졸업할 때 회사를 선택하려니 정말 난감한 것이다. 게다가 설상가상 취업률이 낮은 전공은? 이젠 멘붕이 제대로 온다.
공식부터 깨야한다. 앞으로의 산업과 직무는 과거의 기준으로 분류하고 학습한 것과 매우 다른 차원으로 변화할 것이다. 간편해진 3D 프린터가 제조업을 공장 중심이 아닌 개인 중심으로 바꾸었고, 킥스타터 등의 크라우드 펀딩은 사업 자금이 넉넉하지 않아도 작고 크게 나의 아이디어를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전공을 통해 기업에 가야만 접할 수 있던 것들을 이제는 국가의 지원을 통해서 그리고 민간 자본을 통해서 개인이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딜로이트에서 발간한 제조업의 미래를 꼭 한번 봐야한다. 이젠 모두가 한 곳에 모여서 고등 교육을 대학에서 받을 이유가 없어졌다. 물건을 만들 수 있는 기관이 이제 공장이 있는 기업만이 아닌 것처럼.
처음엔 IT를 기반으로 전공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꼭 해당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이 분야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전공이나 학위를 보유한 사람보다 이를 거부한 사람들이 이 업계에서 더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마케팅, 경영에 대한 내용들은 일반서와 단기 교육 과정들이 점점 보편화되었고, 노하우와 팁을 알려주는 강좌들도 속속들이 개설되었다. 더 이상 고급 정보들은 박사학위를 딴 교수들이 대학 내에서만 하는 강의로 한정되지 않는다. 인터넷에는 각자의 학습과 경험을 통해 실무에서 활용할 수 있는 살아있는 지식들을 가진 사람들이 활약하고 있고 그들은 '전문가'로 불린다. edX, 코세라 등의 온라인 강좌들도 한몫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최신 학문들을 인터넷을 통해 접하는 '나만의 전공 코스'를 짜는 사람들이 생겼고 그들은 스스로 자신의 진로 지도를 완성해나가고 있다.
많은 대학생들이 본인의 전공이 사회로 진출하는데 발목을 잡는다는 이야기를 한다. 사회생활 진입 1년 차는 그럴 수 있다. 몇 년을 지나 5년 10년 차가 되었을 때 하고자 하는 공부, 쌓고자 하는 경험을 잘 설계하고 의도한다면 과거에 본인이 했던 전공보다는 일을 하며 학습하는 시간으로 이를 충분히 새롭게 만들 수 있다. 특히 대기업이 아닌 경우 본인이 의도한 만큼으로 업무의 영역을 좀 더 빠르게 잡아갈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이 나오는 경우는 더 그렇다. 누구에게나 새롭고 생소한 분야라면 가장 비슷한 전공이 그 영역을 초기에는 잡아가겠지만 생각만큼 그 분야의 전공자들이 빨리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도 알 것이다. 보통 사람은 원래 하던 일을 하는 습성이 있어서 안전한 본인의 일자리를 박차고 새로운 곳으로 마구 도전하지는 않는다.
아직 대학생이고 본인의 전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지금 전공에 이름이 없는 새로운 분야가 나왔을 때 조금 과감히 발을 담가보는 것도 좋다. 관련 분야의 기업에 문을 두드린다던가, 몇 권 나오지 않은 책들을 읽고 관련 포럼이나 박람회에 참석하며 그 분야에서는 꽤 얼리 어답터가 되어 있을 것이다.(이 시대에는 새로운 것이 등장했을 때 먼저 그 앞에 서 있는 다는 것은 꽤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이런 분야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사람과 정보가 붙는다.) 그리고 그런 새로운 모임에서는 관심을 표명해주는 한 명 한 명이 너무도 귀하다. 그러다 보면 출중한 실력이 아닌 '관심을 갖는 것'만으로도 발을 담글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도 한다.
드론에 관심이 있다면 드론학과가 생기길 바라는게 아니라 어딘가 구석 창고에서 허접해 보이는 드론이라도 만드는 팀으로 들어가는 것이 이 시대의 방법이다. 책이 나오길 기다리기보다는 게시판 어딘가 드론에 대해 썰을 풀어대고 있는 능력자를 찾는 것이 논문을 쓰고 있는 교수님을 만나는 것보다 현명할 것이다. 새로운 기술과 트렌드가 생기고 있고 이 분야를 직업으로 시작하고 싶다면 이 방법을 추천한다. 시간과 경험의 가치는 그것이 누적되었을 때 나타난다. 세상을 보는 방법, 좀 더 충만한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나만의 filter를 통해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이런 마음으로 튜터링을 만들고 있습니다. 일반 영어 학습과는 조금 다른 관점으로~
관심 있으신 분들은 http://www.tutoring.com/ 튜터링도 놀러와주세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