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하위징아는 그의 책 <호모루덴스>에서 인간의 궁극적 미래를 놀이하는 인간에서 찾아냈다. 그는 ‘놀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인간 문명을 빛나게 한다고 말한다. 이런 그의 주장 또는 논리에 따르면 나는 미래가 어두운 인간이다. 제대로 놀아본 적이 언제인가? 맘껏 쉬면서 놀이를 해본 적이 언제인가? 까마득하다.
19살, 원하던 원하지 않던 앞으로의 인생을 결정하는 수학능력시험을 친 이후로 나는 일을 쉬어본 적이 없다.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지 못해 구직활동을 하던 때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아! 그리고 카드빚을 내어서 3개월간 떠난 호주 어학연수시기에는 정말 오롯이 영어공부에만 집중한 때였으니 그때도 제외해야겠다. 여하튼 20세부터 지금까지의 약 24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포함해 직업 없이 지낸 시간이 채 6개월이 되지 않는다. 장담한다.
흔히 접하는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을 비롯해, 고급레스토랑 웨이트리스, 전단지 배포, 샴푸샘플 배포, 학습지회사의 문제편집자, 사무실 지키는 경리, 본격적인 직업이었던 호텔리어, 홍보담당자 등등 현재까지 약 15개의 일 또는 직업을 가져보았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내가 거쳐온 일들을 나열해 보려는 시도를 한 적 없는데 최근에 ‘참 많은 경험을 했었구나’하고 문득 떠올랐다. 지금까지의 직업, 앞으로의 내가 할 일에 대한 생각을 해보면서(사실은 퇴사가 너무 하고싶어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로 어떻게 오게 되었지를 생각해 보다가 내가 참 많은 일들을 했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내가 나의 삶에서의 경험치가 너무 낮았구나,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직업들이 있을텐데 나는 그 직업들에 대해 나열해 볼 생각도 없이 이렇게 흘러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내가 원해서 닿아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살아내는데 급급해서 그렇게 흘러가는대로 일들이 나에게로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잘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의 진정한 적성은 무엇이었을까? 시간을 되돌린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다양한 경험들과 내가 원하는 방향을 일치 시켰다면 어떤 시너지 효과가 있었을까? 과연 다시 살아낸다면 내 직업은 바뀌어있을까? 하는 궁금함이 든다. 또 백세시대를 넘어 백이십세까지 산다는데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를 퇴직하고 나서는 나는 또 앞으로 어떤 직업을 가지고 늙어갈까? 하는 고민이 든다.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니 다른 경험치는 낮았을 지언정 그동안 원했던 또는 어쩔 수 없이 해야했던 다양한 일을 통해 남들과는 다른 다양한 경험을 했겠구나 싶기도 하다. 그런 경험들이 지금까지 직장생활을 해오며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되었겠구나 싶었다. 앞으로의 도전에 자양분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이를 정리해 보고 싶은 욕구가 올라왔다.
항상 일이란 것을 해왔지만 그 시간이 괴롭지만은 않았다. 즐거운 때도 있었고, 그 와중에 연애도 했다. 그래서 다양한 일을 하면서 있었던 뿌듯했던 때, 좌절했던 때, 화가 머리끝까지 났던 때 등등 다양한 스토리가 나올 것 같다. 20년을 넘게 호모루덴스와는 거리가 먼 일하는 인간이었지만, 일하는 인간이었던 시간을 글을 쓰는 '놀이'를 통해 풀어내어 보려고 한다.
그 처음 이야기는 서러웠던 이야기로 시작해볼까 한다. 못먹어서 그리고 배고파서 서러웠던 기억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