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주재원 와이프로 살아남기
2014년 10월달 후드득 비가 오는 경부 고속도로에서 우리 차는 조금만 더 가면 주유소가 나오겠지 하고 달렸지만 서서히 줄어드는 기름에 차는 멈추었고 갓길에 멈춰진 차안에 나와 남편이 있었다.
나의 직장 경력은 대학 졸업 후 그때까지 꽉 채워서 10년을 채워가고 있었고, 몇번의 이직을 통해 대학교 전공보다는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책상도 자리도 없던 나에서 병원의 서비스 매니저로 자리가 있었고, 과장 승진을 앞두고 있었다.
남편이 “중국으로 가서 생활을 4년 동안 해보는게 어떻겠냐?”고 처음으로 의사를 물었을 때에는 막연하게 외국에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에 “기회가 되보면 가보자.”라고 대답을 했었다. 우리 세대에서는 누구나 해외에 가서 살아보는 것을 꿈꿀 것이고 나또한 그러하였다. 그곳이 영미권이면 좋겠지만, 중국이라도 괜찮았다.
실은 고속도로에서 멈춰버린 차처럼 우리의 가정도 멈춰가고 있었다. 아이는 그해 3살이 되었는데, 하루에 8시간 근무를 하고 집에 오면 나와 남편 모두 잠들고 있는 아이를 보거나, 잠들 아이를 보아야 했다. 당연히 둘의 대화는 부족하였고, 친정어머니가 아이를 봐주기 위해서 집에 계셨기 때문에 더욱더 우리의 사이는 냉랭했다.
연봉을 위해서 미래의 우리와 아이를 위해서 현재의 우리를 희생하며 살아간 시간들.
그리고 나는 무엇보다 우리의 현재를 위해서 중국에 주재원 와이프로 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