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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거울 Dec 17. 2021

2. 당신이 생각해야 하는 것들

주재원 와이프로 살아남기

‘주재원 와이프’라고 내가 나 스스로를 명명한 것은 나에게 직업이 직함이 가지는 것들을 버리고 내가 사회인으로 독립된 존재라기 보다는 000씨의 와이프로 된다는 의미였다. 


1.     나보다는 0000의 와이프가 된다는 것


11년간의 직장 생활에서 쌓아온 경력은 나의 태도와 말투, 성격적 특징과 맞물려 나란 사람을 만들었었다. 이건 후에도 이야기하겠지만 주재원 와이프 삶에는 도움이 되기도 하였지만 그렇지 못하기도 하였다. 나는 그것이 크게 작용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것이 나에게 큰 의미였고 결국 ‘나’였기 때문에 영향은 컸다. 

주재원 와이프가 될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주재원 기간 동안은 나를 두고 누군가의 와이프로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나에게는 한국의 직장을 그만두고, 경력이 단절이 되는 모험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다. 


2.     사회적 커리어의 위험 요소


그 당시의 나는 주재원 와이프라는 선택이 리스크가 있음을 알있었고, 머리속으로 무수히 많은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았다. 

4년후 복귀하였을 때, 나의 커리어가 어떻게 되길 바라는가 계획을 세웠다.  

근무하는 회사에서 그 기간 동안 휴직을 인정하고, 복직이 가능하다면 감사한 일이겠지만, 나의 경우는 퇴사를 하여야 하는 구조였다. 동종 업계를 4년간 떠나 있는 다는 것은 트랜드를 에 둔감해지며, 업무 감각도 떨어지고, 또 같이 근무했던 동료들이 앞서 나가는 것이 당연한 기간이다. 


나는 4년간의 중국생활과 나의 업인 CS 전문가가 결합을 해서 시너지가 나길 바랬다.

실재로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2018년부터 밀려드는 중국인 의료관광 고객들 덕분에 많은 병원들이 빠르게 성장하였고, 내가 근무하는 병원에선 별도의 층과 팀을 꾸릴 만큼 중국인 고객들의 구매력은 어마어마 했다. 나는 4년이란 시간을 중국에 대해서 잘 알고 중국인들과 생활하며 중국전문가로 다시 태어나길 계획하였다. 4년이란 시간이 그냥 공백으로 보이지 않길 바랬다. 그래서 촘촘하게 중국에 들어가서 적당한 적응기간을 거치면 바로 대학교 어학원을 통해서 중국어를 배우는 계획을 짰으며, 무모하지만 공인 중국어 급수도 목표를 세웠다.


3.     우리가족의 재정적 상태


세번째로 생각해 본 것은 4년후, 아이와 우리 가족들의 재정적인 상태와 다시 터전을 잡을 곳에 대한 것이였다. 4년후면 당시 3살이던 아이는 초등 입학을 앞 둔 7살에 한국으로 복귀하게 된다. 중국에서 아이는 국제 학교(유치원에 해당되는 프리 스쿨)를 다니게 하여 자연스럽게 영어에 노출시키려 했다. 그리고 한국에 복귀하였을 때 말이 어눌해지면 안되기 때문에 한국어 공부도 계속해서 시켜야 겠다라고 생각했다.

 우리가족이 중국에 가기로 마음을 먹은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는 지금 살고 있는 전세집의 전세금을 빼서 당시 당첨이된 경기도 신도시의 아파트의 입주대금을 다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의 환율과 생활비 보조금액등을 꼼꼼하게 정리하여 보니 지금 맞벌이를 하면서 친정엄마에게 드리는 용돈과 생활비 등등을 비교하였을 때 4년후 재정상태는 지금과 비슷하거나 (우리는 이 이야기를 진지하게 나누었다. 나의 연봉인상률 까지 반영해서 열띤 토론을 하였다) 조금 낮더라도 생활의 질과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언어 노출의 기회 등을 고려하여 선택하게되었다. 그리고 복귀시점과 복귀 시, 어디로 갈것인지 까지 대략적인 그림을 그렸다. 4년이란 시간은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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