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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누리 Dec 26. 2023

누가 무엇을 알고 있는가?

거래적 기억체계와 정보공유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는 화목한 가정 운영이라는 목표를 함께 공유하지만, 각자 담당하는 정보의 분야가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남편은 가정 내에서 경제에 대한 정보를 담당하고, 아내는 각종 친인척 대소사에 대한 정보를 담당할 수 있다. 또는 그 반대일 수 있다. 이렇게 집단의 의사결정 및 문제해결 과정에서 구성원들 간 지적 노동의 분업(cognitive division of labor)이 발생하는 현상을 거래적 기억체계(transactive memory system)라 한다.


부부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거래적 기억체계 안에서 각각 특정된 역할을 맡게 된다. 가정 경제와 친인척 대소사 같은 정보가 부부간에 효과적으로 공유되지 못하면 불화가 발생할 수 있다. 자녀를 출산하고 양육하면서 가족 규모가 커질수록 각 담당는 정보가 복잡해지 때문에, 부부는 서로 무슨 정보를 어떻게 보유하고 있는지 모르게 된다. 혹은 상대에게 필요한 정보가 무엇인지 모른다. 정보가 원활히 공유되지 못하는 부부는 자주 싸우게 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많은 기업들이 자사에 가치 있는 정보를 생산하기 위해 애쓴다. 직무와 관련된 특정 정보의 습득, 정리, 해석, 재구조화, 보고와 같은 업무과정에서 각 팀원은 특정부문을 담당함으로써 구성원 간 거래적 기억체계가 구축되게 된다. 이러한 직무 전문화는 점점 복잡해지는 업무에 따르는 과도한 인지적 부담을 해소해 준다. 그뿐만 아니라 구성원들의 역할, 업무, 전문 영역에 대한 상호이해를 향상해 효율적 업무 흐름을 가능하게 해 준다. 그러나 조직의 규모가 커지고 업무영역의 전문화가 진행됨에 따라, 누가 어떤 정보를 가지고 있는지 파악조차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조직 구성원들 간에 효과적으로 지식이 공유되지 못하는 문제와 소통의 부재는 조직을 비효율적으로 만든다. 중복된 작업 때문에 신규 직원의 적응 기간이 연장되거나 프로젝트 지연이 발생할 수 있다. 또한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개인이나 팀에 대한 의존성이 높아져 조직 정치가 만연하게 된다. 업무 역량과 상관없는 조직 정치는 이직의도를 높이기 때문에 조직 성과에 부정적이다. 따라서 조직에서 업무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누가 어떤 정보를 가지고 있는지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필요한 정보를 효과적으로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조직의 거래적 기억체계에서 정보의 공유는 프로그램 개발조직에서 특히 중요하다. 코드를 작성할 때에, 개발자는 다른 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코드의 변수이름을 짓는 고민을 먼저 한다. 그리고 주석을 통해서 간략하게 코드의 내용을 설명한다. 에러가 발생했을 때는 어떠한 에러 메시지를 보여주어야 할지 고민한다.


더 나아가 릴리즈 노트, 개발 가이드 문서, 기술 블로그 등 보다 더 높은 수준의 지식 공유를 실천하기도 한다. 가장 흔하게 쓰이는 것이 “README”파일이다. 이 파일은 함께 작업하는 동료 개발자를 위해서, 더 나아가 오픈 소스라면 내 코드를 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꼼꼼히 잘 작성해야 한다. 또한 로그(Log)를 남김으로써 어디서 문제가 발생하는지 파악할 수 있게 한다. 그렇게 하면 애플리케이션 서비스를 운영하는 경우, 정상적으로 서비스가 작동하는지 혹은 에러가 발생한다면 어디서 발생하는지 금방 찾아낼 수 있다.


이렇게 저장된 코드에 대한 정보는 프로그램을 개발한 구성원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타자가 쉽게 파악할 수 있게 해 준다. 누가 무엇을 알거나 모르는지를 조직 내 구성원이 함께 공유하는 것은 조직의 복잡한 거래적 기억체계 내에서 효율적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게 한다.




이 외에도 많은 기업들이 거래적 기억체계 내에서 효과적으로 정보를 공유할 수 있 다양한 기법들을 활용하고 있다. 고어텍스(Gore-Tex) 소재를 만드는 기업 고어어소시에이트(Gore Associates)는 각 부서와 공장의 구성원 인원을 150명이 넘지 않게 설계한다. 만약에 생산 규모가 증가하여 인원을 늘려야 하는 경우에는 새로운 공장을 짓는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중간관리자가 없다는 점이다. 조직 내에 ‘상사’라는 개념이 없다고 한다. 상사와 부하직원 대신에 멘토와 멘티가 있을 뿐이다. 멘토는 멘티의 성장을 도울 뿐, 전통적으로 여겨지는 상사가 아니다. 고어어소시에이트는 멘토링 시스템을 통해 구성원 간의 소통의 질을 높인다. 소규모 집단을 구성해서 서로 깊은 관계가 되도록 하고, 신뢰 관계에 기반하여 중간관리자가 필요 없을 만큼 유기적인 조직을 만들었다.




고어어소시에이트에서는 각각의 팀이 높은 수준의 전문성을 가지면서도, 복잡한 업무 때문에 발생하는 과도한 인지적 부담이 해소되고 구성원 간에 활발한 정보의 공유가 일어난다. 즉, 거래적 기억체계의 장점이 극대화되는 것이다.


영업 사원부터 제조설비 사원까지 통틀어서 서로가 담당하는 역할과 책임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한다. 서로 깊이 신뢰하고 있으므로 어떤 문제도 자연스럽게 논의할 수 있다. 필요한 정보가 있으면 직접 가서 물어보면 그만이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혁신을 선도하는 아이디어가 탄생하고, 아이디어를 실현시킬 방안이 빠르게 확산된다. 고어어소시에이트의 효과적인 거래적 기억체계는 혁신을 선도하여 높은 성과를 냈다. 고어텍스 탁월한 기능을 모르는 소비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학기 초에 과회장으로서 첫 행사를 진행하기 위한 회의를 진행할 때였다. 그전 학기에 나는 학생회에 속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코로나 시국이 장기화되는 상태에서 학생회 간부 지원자들의 자소서만 보고 학생회를 구성했기 때문에 학생회 구성원들의 역량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나는 구성원들이 각각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알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 회의는 회장 임기 중 가장 긴 회의 시간을 기록했다. 기본적으로 구성원들의 역량을 파악하는데 가장 오랜 시간을 할애했다. 서로가 서로를 잘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자신의 역량이 출중함에도 불구하고, 업무를 배정받은 사람이 일을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지 첫 행사의 성과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렇게 몇 번의 행사를 진행하면서 각자의 역량과 가치 있는 정보가 정확하게 공유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는 거래적 기억체계를 확실하게 활용하여 효율적으로 학생회를 운영할 수 있었다.




직접 과회장을 역임해 보니 자소서와 면접은 큰 맥락에서 개인의 역량을 파악하는데 도움 된다. 그러나 더욱 세부적인 역량을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조직 구성원들과 최대한 직접 부딪히면서 개인의 역량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직원들과 함께 호흡하고 솔선수범하는 리더십이 중요한 이유다.


리더는 모든 구성원들이 사생활 침해를 받지 않는 선에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고어어소시에이트의 사례처럼 거래적 기억체계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수직적이기만 한 전통적 상하관계는 지양해야 한다. 그리고 구성원이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진정한 멘토와 멘티의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게 중요하다.




공태윤. (2023). 한국외국어대학교. 바이오메디컬공학부.


최진남, 성선영. (2021). 스마트 조직 행동. 생능.


테드의 기록 공간. (2022.09.15). 티스토리 블로그.


Christopher Chae. (2021.04.18). 분산 기억 만들기. 칸다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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