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씨네마' 팟캐스트 게스트 참여
넷플릭스 드라마 [인간수업]을 본 후
지난주에 [퇴근길 씨네마] 팟캐스트에 심리상담사로서 초대를 받았습니다. [인간수업]이라는 드라마를 다룬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넷플릭스 10부작 드라마 [인간수업]을 몰아서 다 봤습니다. [퇴근길 씨네마]에 초대받기 전에 3회까지 봤던 드라마였는데 너무 심란해서 더 이상 보지 않았었습니다. [인간수업]은 고등학교 청소년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드라마입니다. 그런데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입니다. 청소년이 보기에는 매우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장면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청소년을 소재로 했을 뿐 성인이 보라고 만든 드라마입니다. 청소년 관람불가여서 시청자가 한정되어있고, 청소년이 나오는데 드라마인데도 넷플릭스에서 1위라고 합니다. 요즘 인기 있는 핫한 드라마라는 겁니다.
[인간수업] 매회 마지막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소년을 알고 계시면...”이라는 문구와 함께 청소년 상담 전화번호가 나옵니다. 사회 구성원인 어른의 역할이 한 가지 등장합니다. 드라마 속 어른들 대부분은 자신의 잘못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청소년을 이용합니다. 그러나 드라마 마지막에는 현실의 어른들에게 청소년을 도와주라고 부탁합니다.
[인간수업] 드라마의 중요 소재는 청소년 성매매입니다. 최근 ‘n번방’ 사건이 알려지면서 아동·청소년 대상 온라인 성범죄에 대한 충격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청소년 성매매 관련해서는 1990년대 중반부터 ‘원조교제’로 아동·청소년 성범죄가 알려지면서 충격을 줬습니다. 그 후로 조건만남이나 스폰 등으로 용어가 달라지기는 했지만 아동·청소년 성범죄는 꾸준하게 발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4차 산업혁명의 기술이 ‘n번방’ 같은 악마의 소굴도 만들어냈습니다. [인간 수업]에 등장하는 기술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우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는 위치확인 서비스부터 성매매 매칭까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도 청소년 성매매로 돈을 법니다.
이번에 드라마를 보면서 알게 된 사실도 있습니다. 청소년이 성매매를 해서 비용을 잘 받으면 30만 원이라고 합니다. 가출 청소년들이 성매매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연구들이 꽤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봤습니다. 30만 원이라는 돈이 청소년에게 어느 정도일 지를 말입니다. 편의점 알바 하루 12시간씩 3일을 일해야 30만 원을 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기 어려우니까 하루 6시간씩 6일을 일해야 30만 원을 벌 수 있습니다. 결국 일주일 정도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 30만 원입니다. 30만 원이라는 돈이 청소년에게는 적은 돈이 아닙니다. 특히, 생존을 위해 돈이 필요한 가출 청소년들에게는 말입니다. [인간수업]에서는 가출한 청소년들이 모여 사는 가출팸이 나오기도 하지만, 학교에 다니고 집이 있는 청소년도 나옵니다. 드라마는 가출 청소년만 성매매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여러 채팅 앱을 통해서 청소년 성매매가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적 현실을 볼 때 드라마 속 현실은 타당해 보입니다.
드라마를 보고 난 후 무엇을 이야기할지 고민했습니다. ‘인간다움’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올랐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인간다움은 타인에 대한 공감, 존중, 배려 등 바람직한 인성을 바탕으로 합니다. 그리고 인간다움은 주체성입니다. 주체성은 비슷한 환경과 상황이라도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인간의 의지이자 마음의 힘입니다.
드라마에서 사람들의 ‘만남’이 많이 나옵니다. 부모-자녀 만남부터 성매매 만남까지 다양한 만남이 있습니다. 그런데 드라마 속 대부분의 만남에서는 상대방을 도구화시켜 버립니다. 자신의 잘못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대상일 뿐 진정한 만남이 없습니다. 드라마에서 성매매는 인간을 도구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런데 주인공 규리를 대하는 부모도 자신의 잘못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자녀를 도구화시키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규리와 지수의 동아리 선생님만 진정한 만남을 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타인을 이용하는 것은 결국 인간을 하나의 물건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인간다움은 없습니다.
인간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이러한 힘은 동물에게서도 드러납니다. ‘학습된 무기력’을 연구했던 실험실 개들 중 1/3은 학습된 무기력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성장기에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란 아이들을 추적 조사한 연구가 있었습니다. 연구 결과를 보면 아이들이 나쁜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렇겠구나 싶은 중독자나 범죄자가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이나 성직자와 같이 환경의 영향을 벗어나서 바람직한 모습으로 자라난 경우도 있었습니다. 미국의 할렘에서 자란 아이들이 다 범죄자가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인간이 성장기 환경의 영향을 뛰어넘을 수 있는 주체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물론 주체성을 발휘하라고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이 환경의 영향에서 벗어나서 살아간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체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것을 의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동·청소년은 발달과정 중에 있기 때문에 주체성도 발달 중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동·청소년에게 주체성을 강하게 요구하면 안 됩니다. 오히려 성장기에 주체성을 길러줘야 성인이 되어서 주체적인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수업]에 나오는 지수와 규리 같은 청소년들에게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한다고 비난할 수가 없었습니다.
퇴근길 씨네마 [인간수업] 편 듣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