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는 아이도 혐오스럽게 만든다

코로나의 잔인함

by 최옥찬

코로나는 해맑게 웃고 친절한 여자 아이를 순식간에 혐오스럽게 만들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구청에서 코로나19 긴급 문자가 왔습니다. 코로나19 추가 확진자가 나왔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내용이었습니다. 나는 문자를 받고 추가로 확진자의 동선을 확인했습니다. 확진자는 집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조리사였습니다. 동네에 금세 소문이 돌았습니다. 어머니를 통해 아파트 같은 동에 사는 아이가 확진자가 나온 어린이집에 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문자를 받기 전 날 오후에 그 아이와 세쌍둥인 우리 아이들이 아파트 놀이터에서 함께 놀았습니다. 그리고 그 놀이터에 나도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아이들을 집에 데리고 가기 위해서 그 놀이터에 아이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어린이집에서 하원하고 집에 들어오기 전에 아파트 놀이터에서 잠시 놀곤 했습니다. 물론 코로나로 위험한 시기여서 항상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안보내면 모르겠지만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었기 때문에 아파트 구성원들로 제한된 놀이터에서 노는 것을 허용했습니다. 무엇보다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이 하원 하고 놀이터에서 놀다 보니 우리 아이들도 함께 놀고 싶어 했습니다.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은 마스크를 항상 착용했습니다. 날이 더워져도 아이들이 숙명처럼 마스크를 쓰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려 안타까웠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2돌 지나면서부터 미세·초미세 먼지 때문에 작은 얼굴에 밀착되지도 않아 별로 도움도 안 될 것 같은 마스크를 쓰는 것이 습관화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아이들이 코로나로 위험한 시기에 더워도 마스크 쓰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서 무척 다행스러웠습니다.


코로나 확진자가 인근 어린이집에서 나왔다는 사실에 아이들의 할머니인 어머니는 매우 불안해하셨습니다. 어머니는 그 날 놀이터에서 우리 아이들과 함께 놀았던 확진자가 나온 어린이집에 다닌다는 그 아이가 누구인지 설명해주었습니다. 나도 확진자 문자를 받기 전 날 늦은 오후 놀이터를 떠올려보았습니다. 그 날 나는 아이들이 하원 후에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고 있다고 해서 집으로 데리고 가려고 놀이터로 갔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고 있었습니다. 모든 아이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는 모습에 순간 코로나가 생각나면서 불안감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며 깔깔거리며 웃는 모습은 코로나로 위축된 마음에 생동감과 활력을 주었습니다. 이 아이들이 제한된 아파트 놀이터에서라도 뛰어놀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집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물론 놀기 위해 태어난 아이들처럼 노는 것에 열중한 아이들을 한 번에 불러서 데리고 가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두 딸은 아빠가 부르는 소리에 경쟁하듯이 아빠 손을 잡고 집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안 간다고 도망 다녔습니다. 그때 한 여자 아이가 밝고 기운찬 목소리로 우리 아이들의 이름을 한 명씩 부르면서 손에 무엇인가를 주었습니다. 그것은 햇살에 밝게 빛나는 초콜릿 금동전이었습니다. 그 여자 아이는 내 손을 잡고 있던 두 딸들에게 초콜릿을 하나씩 주었습니다. 그런 후에 더 놀고 싶다고 뛰어다니는 아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쫓아다녔습니다. 결국 아들의 손에도 초콜릿을 하나 건네주고는 늦은 오후 햇살을 등진 채 우리 아이들에게 밝게 인사하고 갔습니다. 우리 아이들과 또래 여자 아이인데 놀이터 친구였습니다. 그 여자 아이였습니다. 코로나 확진자가 나온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가 말입니다.


코로나 확진자 문자를 받은 어머니는 다급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손자들이 다니는 어린이집 원장님에게 전화를 하셨다고 했습니다. 원장님은 확진자가 나온 어린이집 직원들과 원생들 그리고 학부모들까지 코로나 검사를 했다면서 다음 날 오전 9시에 결과가 나오는데 음성이 나오면 괜찮다고 어머니를 안심시켜 드렸다고 했습니다. 어린이집에서 발생한 코로나 추가 확진자 문자를 받고 어린이집과 관련된 사람들의 코로나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어머니는 불안해서 잠을 거의 못 주무셨다고 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일하는 부모 대신 아이들의 할머니·할아버지가 매일 등·하원을 시켜주십니다. 그러한 상황임에도 어머니는 아이들을 괜히 놀이터에서 놀게 했다는 죄책감과 아이들이 코로나에 감염될까 하는 불안감 때문이었습니다. 다행히도 어린이집 관련해서 검사했던 사람들은 모두 음성이 나왔습니다.


어머니는 피 말리는 초조한 시간을 보내시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안 되는데, 그 여자 아이가 그렇게 밉고 나쁘게 생각되더라”


그런데 나도 그랬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손에 초콜릿을 건네주면서 해맑게 웃던 그 아이의 얼굴이 순식간에 혐오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순간 그 여자 아이가 참 나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이러한 내 생각의 흐름에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되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도 이렇겠구나 싶었습니다.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너무 크다 보니 아무런 책임이 없고 오히려 피해자인 어린아이에게까지 순간 분노의 화살을 쏟아부으려고 하니 말입니다.


혐오스러워진 그 여자 아이를 다시 원래대로 되돌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다시 했습니다.


“그 여자 아이가 나쁜 게 아니다. 아이도 피해자다. 나는 코로나가 우리 가정의 건강과 삶을 파괴할까 봐 너무 두렵다. 그래서 코로나로 인한 불안한 삶이 지속되는 것이 너무 화가 난다. 그러나 내가 분노할 대상은 그 아이가 아니다. 내 분노의 대상은 코로나 바이러스다.”


이런 식으로 분노할 대상을 정확히 하면서 코로나와 여자 아이를 구분하여 생각했습니다. 그런 후에 우리 아이들에게 친절했던 여자 아이의 해맑게 웃는 얼굴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