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을 살아가다(feat. 스쿠버다이빙)
나는 40대 중반의 남자입니다. 나는 심리상담사입니다. 나는 내가 가장 신뢰하는 여자의 남편이고, 내 나이 마흔이 넘어서 태어난 세 쌍둥이의 아빠입니다. 그런데 세 쌍둥이가 태어나고 함께 육아를 하다 보니 육체적인 과로와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쌓여서 어느새 우울감과 무기력감이 심해졌습니다. 중년의 신체적·심리적 변화와 함께 세 쌍둥이 육아의 힘듦과 혼란스러움이 뒤섞여서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세 쌍둥이가 태어난 후로는 육아를 주로 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는 세 아이를 키우는 행복보다는 육아로 인한 피로와 스트레스에 짓눌려 버렸습니다. 그래서 내 삶의 동기인 성취감을 느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성취감은 나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게 합니다. 그런데 육아를 하다보니 성취감이 어느 순간 내 삶에서 다 사라져 버린 듯 느낄 수 없게 되었습니다.
40대가 되면서 내 몸이 아프다는 신호를 자주 강하게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이전과는 달라진 건강 상태때문에 불안해졌습니다. 건강 상태가 전반적으로 나빠지면서 병원에 갈 일이 많아졌습니다. 게다가 우울함과 초조함 그리고 무기력함을 자주 느끼면서 짜증과 화도 많아졌습니다. 계속 이렇게 살다가는 큰일이 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내 마음의 건강을 위해 삶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이런저런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전에 하다가 그만두었던 취미 활동도 다시 해보고, 해보고 싶었던 캘리그래피도 배우고, 체력을 올리려고 개인 PT도 해보았습니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여행을 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친구와 같이 여행을 가기로 했습니다. 여행 계획을 세우다가 우연히 스쿠버다이빙을 접했습니다. 다이빙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서 스쿠버다이빙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커졌습니다. 오래간만에 새로운 활동에 대한 호기심과 도전하고 싶은 열정이 느껴졌습니다. 모처럼 나를 흥분시키는 감정이 사라지기 전에 스쿠버다이빙에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나는 다이빙 교육을 받고 싶은 지역을 선택해서 다이빙 센터를 예약하고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습니다. 스쿠버다이빙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내 삶을 짓눌렀던 우울감과 무기력함을 떨쳐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쿠버다이빙을 가는 날까지 두 어달 동안 삶이 즐거웠습니다. 스쿠버다이빙은 내 삶의 즐거움을 되찾기 위해 도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상치도 못하게 내 중년의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전과 다른 중년이라는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마치 어른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인 ‘성인식’처럼 스쿠버다이빙은 나만의 ‘중년식’과 같았습니다.
나는 마흔이 넘어가면서 신체적 변화와 함께 심리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중년의 '나' 자신에 대해서는 제대로 살펴보지 않았습니다. 아마 나이가 들어가는 나 자신을 거부하고 싶어서 심신과 환경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전과 달라져야 하는 중년의 삶의 태도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데 나 또한 그러한 평가와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젊음과 비교하여 나이 들어가는 나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심지어 수치심마저 느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보니 건강하고 바람직한 중년의 정체성을 형성하려는 노력조차 안 했던 것 같습니다. 정체성을 형성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를 결정하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년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건강한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한 정신적 노력이 필요합니다.
스쿠버다이빙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서로 몰랐던 사람들이지만 스쿠버다이빙 버디로서 바닷속에서는 자신의 안전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안전까지 챙겨주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즐기면서도 타인의 삶을 돌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충분히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습니다. 타인의 삶까지 배려하는 것이 내가 중년으로서 지향해야 하는 삶의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를 위한 자리로만 채우려는 마음에 타인을 위한 자리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성숙한 방향으로 한 단계 너 나아가지 않는다면 중년 남자의 실존적 외로움에 더하여 심리적 고립감을 느낄 것 같았습니다. 스쿠버다이빙을 통해 육지와 다른 바닷속 세계를 경험하면서 내 인식의 벽을 넘어설 수 있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스쿠버다이빙은 내가 중년의 삶을 제대로 시작할 수 있는 '중년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