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런 곳에 올 생각을 했어요

by 한도톰

서울에서 신입직원 교육을 받고 지하철을 타던 공기를 아직도 기억한다.

대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듯 출근했던 그 계절, 3월 8일.

첫 발령지는 집과 가까운 곳이었다. 당시 분홍색 스웨터와 검정 바지, 검정 운동화를 신고 긴장이 가득한 마음으로 익숙한 거리를 낯설게 걷던 발걸음.


그 매장은 시내 한복판에 있었다.

친구들과 설레는 만남을 가지러 나갔던 거리가 하나의 일과로 자리 잡혔다는 사실이 묘하게 생경했다.


우리가 속한 브랜드는 후발주자였다.

이미 시장을 독점한 브랜드를 쫓겠다고 두 기업이 비슷한 브랜드를 내놓은 상황이었다. 1개의 기업은 막대한 자본으로 크기와 브랜드 양으로 승부를 보였고, 다른 1개의 기업은 외국에서 들여온 브랜드로 승부를 보였다.


나는 외국에서 들여온 브랜드로 승부를 보인 기업에 속한 직원이었다.

하지만 하필 내가 발령받은 매장 바로 옆에, 그 엄청난 크기와 브랜드로 본인의 등치를 자랑하는 매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사이좋게.

그 매장은 낮인데도 더 밝아보였다. 멀리서도 잘 되는 집이라는 기운이 났다.

생각해보니 나 역시 손님일 때 그곳을 갔지, 우리 매장에는 들어온 적이 없었다.


평일 점심 이후여서 그런지, 손님은 1-2명이 전부였다. 딱히 헤칠 것도 없는 통로를 지나 파트타임직에게 점장님을 찾았고, "staff only"라는 곳을 알려주었다. 그곳에는 발주를 넣고 계시는 점장님이 계셨다.

나를 한 번 쓱, 훑어보더니 자리에 앉으란다. 그리고 처음 내뱉은 말은,

"솔직하게 얘기할게요. 도망치려면 지금 그만두세요"

였다.


이제 막 열의를 갖고 임하려는 직원에게 사기를 불어넣지는 못할망정 이 무슨 공기 빠지는 풍선 같은 소리란 말인가? 내 표정을 읽었는지 말을 덧붙였다. 기운 빠지게 하려는 소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기대를 심어주려는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고.

이 공기 빠지는 말은 점장님뿐만이 아니었다. 몇 시간도 채 안 지났는데, 인수인계를 해 주는 선임이 조용히 속삭였다. "왜 이런 곳에 올 생각을 했어요"


다잉메시지인가? 아니면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 내뱉는 교토식 화법인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하지만 이미 진로를 한 번 틀었고 더 이상의 뒤처짐은 없으리라고 결정한 이상, 내가 선택한 기로에 대해 실패감을 또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날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했고, 의지가 없는 사람의 하소연이라고만 치부했다.


처음에 할 일은 브랜드 파악과 청소, 캐셔 등이니 파악하는데만 중점을 두라고 했다. 발주는 나중 일. 매장 닦기는 아르바이트에서 멈출 줄 알았는데 직원이 돼서도 하는구나. 하지만 발주고 나발이고 알게 무엇인가. 나는 지금 새롭게 튼 둥지자리에 나뭇가지 하나 올려놓는 것이 중요했다.


인수인계를 해 주던 선임은 퇴사했고, 그 다음 선임이 나의 선배가 되었다. 나보다 많은 경험을 지닌 동생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이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운 좋게 입사 기회를 얻었고,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 반, 한 켠으로는 내가 지금까지 입사를 위해 노력한 건 무엇인가에 대한 허무함 반이었다. 입으로는 대단하다고 칭찬을 했지만, 속에서는 명치끝에서 올라오는 뭉클하고 느글한 기분이 들었다. 그 기분은 얼굴 근육까지 퍼졌다. 아마 웃는 내 모습이 어딘가 좀 어색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경험은 무시를 못 했다. 손님 응대나, 매장 관리나, 브랜드 지식까지 모두 해박했다.

나는 진심으로 그 동생의 업무 능력을 존경했다. 그리고 그녀가 가지는 순발력도 배우고자 노력했다. 친해져서 나중에야 들은 이야기지만, 당시 내가 생기 없는 모습으로 매장을 닦는 모습을 보니 "병약한 언니 한 명 들어왔다"라고 느꼈더란다. 사람이 느끼는 마음은 숨기려 해도 어딘가에 비집고 흘러나오나 보다.


스케줄은 주 2회 휴일, 5일은 주간과 야간으로 돌아갔다. 주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야간은 오후 2시부터 오후 11시까지였다. 병약한 언니는 야간보다는 주간이 좋았다. 병약해서는 아니었고, 엄마의 성화 때문이었다. 엄마는 내가 9 to 6인 사무실에서 더운 때에는 시원하게, 추운 때에는 따뜻하게 지내길 바랐다. 그렇게 일을 하라고 보낸 대학이었고, 뒷바라지였는데 남들 일할 때 쉬고 쉴 때 일하는 딸의 모습이 못내 많이 아쉬웠었나 보다.


하지만 당시 나는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하는 마음으로 가득 찼었기에, 엄마의 안타까움이 "역시 내 딸이지"라는 자랑스러운 감정으로 치환되기를 간절히 바랐었다. 그 간절함은 힘듦이 있어도 말을 못 하게 되는 침묵으로 이어졌고, 모의 걱정 어린 성화에는 "내가 알아서 한다"는 퉁명스러움으로 표현되었다.

하필 또 봉사하던 교회 사역자와 동역자분들이 주말에 일하는 나를 탐탁지 않게 여겼었고, 남자친구는 내 스케줄에 맞추어 만나야만 하는 상황에 지친다며 푸념을 늘어놓으니 무엇 하나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다고 여겨졌다. 꼭 날 지지하는 사람이 있어야만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가 하는 행위를 지지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그것만큼 외로운 일이 없었다.


그래도 점장님과 선임과의 팀워크가 잘 맞아서 어찌어찌 재미있게 버텼었다. 사람을 상대하는 것도, 니즈에 맞추어 무언가를 권하는 것도, 눈빛과 표정을 보고 원하는 바를 파악하는 것도, 매출을 올리기 위해 진열을 바꾸는 일. 모두 나에겐 흥미로운 일이었고, 잘 할 수 있다는 감각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오래가지 못했다. 바로 옆에 존재하는 큰 매장의 매출을 따라가기엔 역부족이었는지, 기업은 이 지역의 매장을 버리기로 결심한다. 바로 이 매장을 좌천구역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촉망받는 지금의 점장님이 이 매장에서 썩어나길 바라지는 않았나 본지, 기대주인 매장으로 이동하였다. 대신 온다는 점장에 대한 소문은 심상치 않았다.


선임은 비장하게 나를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도톰님, 우리 힘을 합쳐야 해요"

아, 보통 아닌 분이 오는구나.


선임 말로는 이미 한 번 좌천당한 곳에 있었고, 거기서도 좌천당해 오는 점장이라고 일러줬다. 덧붙여, 그녀 밑에 있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그녀의 독특함(?)을 견디지 못해 많이 그만두었고, 그것도 하나의 인사평가이다 보니 아마 이곳으로 오는 것이 아니냐-하는 추론이었다.


나 또한 결국 그녀의 독특함을 견디지 못한 사람 중 한 명이 되긴 했다.

퇴사 당시 내가 그녀의 인사고과에 마이너스한 줄 정도의 역할이 되지 않았을까-하는 기대가 있었지만 3년 뒤 번화가 한복판의 매장에서 여전히 점장으로 서 있는 그녀를 보고 알았다. 한 줄도 못한 값이구나.


생각 해 보면, 나 스스로에게 지지받고 싶었던 발악은 생각보다 미약해서 그랬던 걸수도 있다.


독특함이 결정적인 이유였을까.

아니면, 그저 떠날 타이밍이 필요했던 나에게 적당한 핑계가 생겼던 것뿐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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