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핸들을 다시 잡고 싶었을 뿐
악명이 높아봤자, 제 몫만 다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했던 나의 오래된 삶의 가치관이 깨졌다.
사회생활을 굳이 하지 않아도 괜찮았던 운 좋은 시절을 다 지난 셈이다.
그녀는 지극히 '상사'하면 생각나는, 전형적인 모든 덕목(?)을 갖추고 있었다. 본인이 한 것 최상으로 드러내기, 본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들어주고 정성스레 반응하길 기대하기, 퇴근 전에 업무를 주어 야근 유도하기. 딱, 우리네가 알고 있는 상사의 이미지 그것이었다.
그와 반대로 나는 지극히, 'MZ'와 같은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우습게도 지금은 내가 그러한 후임들을 MZ라 지칭하기도 한다). 그녀와는 A부터 Z까지 그 어느 것도 맞는 게 없었다. 그러니 그녀에게 나는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었고, 나 역시 그녀를 유별나다고 여겼다. 당시에는 조직생활 내 'MZ'라는 단어로 용인하고 규명 지을 수 있는 행동이 아니었기에 더더욱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그녀는 회사에 참 열심이었다. 그녀가 OFF일 때는 선임이나 파트타임 친구들과 신이 나서 업무를 보곤 했는데, 오후 느즈막쯤 나타나 함께 근무하는 것처럼 전두지휘하고선 기어코 같이 매장 문을 닫을 때까지 함께 하다가 헤어짐을 고하는 그러한 사람이었다. 얼마나 회사를 사랑하면, 이라는 생각도 잠시. 저렇게나 할 일이 없나?라는 날 것의 감정이 올라왔다.
그녀는 나를 열심히 사포질 했다. 이 조직에 적응하라는 의미이기에 나 역시 그 의중에 따랐다. 그 과정이 녹록지만은 않았다. 일시적 난독증이 오기 시작했다.
아침에 해야 할 업무를 메일로 남겨 확인하는 게 일과인데, 글이 읽히지 않았다. 말 그대로 '하얀 건 종이, '까만 건 글씨' 같은 경험이었다. 정말 당황스러웠다. 한 번 한 글자 한 글자를 쓰면서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단어 하나하나가 따로 놀기 시작했고, 자음과 모음이 분리되어 날아갔다. 저걸 읽어야만 일을 하는데. 눈물이 났다. 하지만 눈물마저 흐르면 눈앞이 흐려져 까만 게 글씨라는 것조차 분간할 수 없으니 마음을 잡고 한 글자 한 글자를 펜으로 꾹꾹 눌러썼다. 그렇게 모음과 자음, 단어를 조합하여 해야 할 일을 어림잡아 이해했다.
아침 하루 일과를 좀 더 일찍 시작해야 하는 이유가 생겼었다.
계속되는 사포질, 말도 안 되는 업무량은 세차게 날 몰아붙였다. 모두 퇴근한 매장에 남아 일을 하다가, 문득 시계를 보니 새벽 4시였다. 빨리 마치고 집에 가서 좀 눈이라도 붙여야겠다, 생각이 들어 급하게 물건을 옮겼다. 급한 행동은 빈틈이 있다. 물건이 와르르 쏟아졌다. 펜슬라이너 하나가 집기 구석으로 또르르, 굴러들어갔다. 그걸 주으려고 무릎에 땅을 대는 순간, 1년 전 그 나를 집어삼킨 바다가 나에게 밀려왔다. 주르륵,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또 의지가 부족해서 직종을 바꾸면 안 되는데, 이것마저 못 버티면 난 루저인데. 이제 진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그 이후 점점 일에 대한 보람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매장 진열을 바꾸는 것에 칭찬을 받거나, 발주를 넣는 일을 성역으로 치부커나, 매출을 올리기 위한 방편으로 올드한 배치나 '점장 PICK'과 같은 팝업 문구(어느 시대 점장픽이란 말인가)를 보며 발전이 없음을 깨달았다. 이건 의지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음도 함께 깨달았다.
더 발전할 수 있는 직무, 배울 수 있는 직종, 생산적인 무언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영감을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이 '일'은 나의 삶에 과연 발전과 생산적인 무언가를 가져다주는가?
운전대를 바로 잡은 기분이었다. 지금 이 일을 그만두는 것이, 진로도 제대로 못 정하는 루저라서, 의지가 부족해서, 변덕이 심해서가 아니라 나는 그러한 사람이었기에 나에게 맞는 직무를 찾아다녔던 것이다.
이제야,
대학교를 다 졸업한 후 회사까지 취직해 놓고 그제야, 운전대를 제대로 잡은 것이다.
물론 음악도, 매장관리도 모두 내가 원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장애물을 만났을 때 좌측으로 돌지 우측으로 돌지 확신이 서지 않았기에 들이박은 것이고,
그 장애물을 넘길 만한 동기가 충분히 채워지지 않았기에 계속 핸들만 신변잡기 했었음이라.
신기하게도 마침 아빠에게 전화가 와서 일은 어떠냐고 물었다. 든든한 장녀이고 싶었던 나는 그날 따라 막내가 되고 싶었다. "힘들어 아빠"
근데 아빠는 별말 없이 제안을 하나 건넸다. "안 맞을 수 있으니, 대신 대학원을 한 번 가봐"
대학원. 대학교 때도 피해 다녔던 그 대학원을, 고민 선상에 다시 놓을 날이 올 줄은 몰랐다.
20대 중반, 모두가 사회에 하나씩 자리 잡아 본인만의 업을 수행 할 동안,
마지막 종착역을 향해 걸어갔다. 더 이상 핸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