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사가 되기로 한 날

by 한도톰

몸이 아프다고 퇴사한다고 할까? 그러기엔 물건을 옮겼던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누가 봐도 건강한 직원이었기에 의심받기 딱 좋은 정황이었다. 퇴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건 정말 어려웠다. 계약이 만료되어 자연스럽게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는 말이 아닌, 내 자의로 이 업장과의 연을 끊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기 그지없었다.


어려울 땐, 정면돌파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보지도 않을 사람들, 알게 뭐람. 솔직하게 얘기하자. 이 업계는 나와 맞지 않고, 대학원을 간다고. 그건 내가 버티지 못하면 루저라고 생각한 열등한 모습을 올바르게 마주하는 방법이었다. 오래 버티지 못할 텐데,라는 말에 대한 오기를 인정하기가 힘들었으나 그게 맞았다. 나는 버티지 못했다.


때는 5월 말. 어디 가서 좋은 간판하나 잘 달았기에 누군가가 "어디다니냐"고 물어보면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나의 어깨뽕 그 자체인, 그 회사를 단 3개월도 못 채운 시점에 얘기하기란 쉽지 않았다. '역시 그럼 그렇지, 너도 못 버틸 줄 알았다'라는 흔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20대 초의 객기 기질은 그때까지 남아있었나 보지.


그 장면이 참 생생하다. 매장 복도를 지나 카운터 좌측 끝에 'staff only'가 적혀있는 문을 열어, 나를 시험대에 오르게 한 그 점장에게 말을 건넸다. '점장님. 할 말이 있습니다.'

누구나 비장하게 할 말이 있다고 하면 다들 예측 가능할 것이다. 그녀도 예측했던 모양인지 생각보다 퇴사 이야기는 쉽게 흘러갔다. 다만 대학원을 간다는 말에 20대 후반에 거길 가서 뭐 하겠냐는 둥, 가도 여기보다 월급도 잘 못 받을 거라는 둥 등의 덕담(?)을 남긴 건 예외였다.


재미있던 건 그녀가 나름 인사고과를 신경 쓰기 위해 나에게 단속을 했다는 사실이었다. 지역장님 면담 때 본인 때문이 아니라 개인사유라 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분명히 면담에 본인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던지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녀의 소원대로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 굳이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더라도 그렇게 분위기가 흘러갔다. 지역장이 나의 대답을 대변하듯이 뒤에서 얘기하는 점장을 내보내고 나에게 조용히 그리고 진지하게 물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대답할까 싶었지만, 어차피 보지 않을 사람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먹칠을 하나 싶었다. 그리고 나름의 정신승리를 하자면 그녀가 아니었으면 대학원에 갈 생각조차 못 했었으니.


3개월 3주의 기간은 마치 내게 3년과 같은 시간처럼 느껴진다. 지금도 그렇다. 굉장히 짧은 시간인데 말이다. 안 맞는 옷과 사람을 만나면 1분 1초를 맞게 하려 에너지를 쏟기 때문일까? 처음 제대로 한 회사생활은 제대로 되지 못한 단추를 억지로 끼워 맞춘 나날이었다.


새로운 배움의 시작을 하기 위한 기로에서 어떠한 길을 잡아야 후회 없이 걸을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사람을 탐구하고 그들의 완벽하지 않음을 애틋하게 바라보는 마음, 그것은 내가 어떤 삶을 살아도 꾸준하게 변하지 않았던 가치관이었다. 이 가치관을 업을 삼는다면, 적어도 도중에 포기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복수전공을 했을 당시 교수님께서 추천한 '음악치료사'를 상기시켜, 관련 대학원을 알아보기 시작했으나 내가 생각하는 방향과는 조금 달라 보였다(엄밀하게 말하면 아웃풋이 넉넉하지 않아 보였다). 좀 더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을 대하고, 그러한 전문적 기술을 내포할 수 있는 '심리상담사'가 내 마음에 들어왔다. 임상보다 재미있게 업으로 삼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살펴보니 명맥 깊은 대학원은 입학수순과 공부 과정이 참으로 어려워 보였다. 더욱이나 나 같은 '진골'집단에게는 엄격한 잣대가 들이밀어졌다. 정말 유명한 교수님이 계시는 곳은 성골이 아니면 입학 자체가 어렵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또 다른 입시준비의 시작이었다.


엄마는 대학원을 반대했다. 그래서 도움을 빌리지 않고 혼자 무언가를 이뤄내야겠다,라는 생각이 앞섰다. 입시는 10-11월 시작, 지금은 7월. 단 3개월 만에 공부를 마스터해야 한다. 경제적 독립도 함께. 마침 그때 집 바로 앞에 있는 상가 편의점 아르바이트 자리가 나왔다. 시간은 오후 5시부터 11시까지였다. 오전에 공부하고 저녁에 아르바이트를 하면 적당한 시간이었다. 마치 내가 대학원에 가라고 떠밀어준 상황을 누군가가 마련해 주듯 일이 술술 풀려갔다.


단 3곳의 대학원에 원서를 넣었다. 명맥 깊은 대학원 2곳, 내가 연구하고 싶은 분야의 대가이신 교수님이 계시는 대학원 1곳. 하지만 3개월 분량의 짧은 지식과 경험은 명맥 깊은 교수님의 마음에 차지 않았는지 불합격 통보가 날아왔다. 대신 연구하고 싶은 분야의 대가인 교수님이 계시는 대학원에서, 합격 통보가 날아왔다. 분명 면접을 희한하게 봤을 텐데 무슨 마음으로 뽑으신 건지 알 길이 없었다.


반수를 더 해서 좀 더 네이밍이 있는 대학원을 갈지, 연구 분야만 바라보고 갈지 고민이 되었다. 이러한 고민은 고등학생 입시 때도 했던 경험이었다. 과거의 경험은 크게 도움이 된다. 한 놈만 팬다는 결심으로, 한 연구 분야만 조진다(?)라는 마음으로 진학을 선택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선택은 참 잘한 선택이다. 이곳에서 상담뿐만 아니고 소중한 동료들과, 상담에 대한 애티튜드를 다양하게 배웠기 때문이다.


때는 봄 3월, 다시 입사 때처럼 봄의 계절이 돌아왔던 시기였다.

다시, 나는 시작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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