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만으로는 부족한가봐

맨 땅의 헤딩이 이런건가?

by 한도톰

원래 전공하던 학과에서 꽤 나름 다양한 활동을 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와 다르게 성적에도 아주 관심이 많았다. 이유는 보상이 장학금이었기 때문이었다.


본 전공의 성격은 경제-법률이었기 때문에 암기력과 이해력만 있다면 반은 먹고 들어갔다.

암기력 하나는 자신이 있었기에 대학 4년 내리 장학금을 놓쳐본 적이 없었고,

누군가 대학생활이 어땠냐고 물어본다면 재미와 공부를 모두 놓치지 않았던 만족스러운 순간이었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한편에는 너무나 치열했어서 딱히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

다시 돌아간다면 복수전공이 아니라 교환학생을 신청해서 더 넓은 세상을 둘러볼걸.

그 정도의 아쉬움이 남을 뿐.


사실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자아를 찾겠다며 휴학 1년을 시원하게 신청했다.

그리고 휴학 1년 동안 무엇을 했냐 하면,

카페 아르바이트, 유럽여행, 작곡학원 다니기 이 세 가지를 했다.

어쩌면 감이 잡혔을 것이다.

아, 이 사람 1년을 정말 시간 낭비 했구나!


시간 낭비가 맞았다. 사실 1년이면 인턴이나 상근직을 통해 월 150 정도 받으며 저축을 해도 될 일이었고,

혹은 저축한 돈으로 유럽 여행을 6개월 동안 다닐 수도 있는 시간이었다.

혹은 작곡학원을 다니며 파트타임을 다녀도 괜찮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격증을 따도 괜찮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도톰은 그렇게 부지런하지 못했고,

구미가 당길 목표가 없다면 쉽게 행동을 허락하지 않은 자극추구의 끝판왕이었다.


그래서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람과의 관계와 커피에 관한 지식(?)을 쌓았고,

일주일 남짓한 시간으로 젊은이의 나라 독일을 탐방하며

혼자 사는 방법과 외로움을 잘 음미하는 방법을 터득했고,

일주일에 한 번 학원 가는 시간 외에 '잉여인간'처럼 시간을 5개월 동안 버리며, 나는 왜 이렇게 살까를 반복하는 반추의 여왕이 되어있더랬다.


그 1년의 시간을 버렸다는 자책감과

남은 게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자괴감을 안고 시작한 복수전공.

그래도 모래 한 줌만큼의 쥐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작곡에 대한 일정 지식을 안고 첫 발을 내디뎠다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한 열정으로 선택한 길은, 열정으로만 해결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고,

그 역시 단순한 과정이 펼쳐지진 않았다.

전문적인 장비와 이미 필드에서 활동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눌리는 느낌은 지워지기가 생각보다 힘겨웠다.

그리고 그들은 정식적인 절차를 밟고 본 학과에 어렵사리 합격했지만,

나는 일반 입시를 통해 입학을 한 뒤 전문적인 절차를 밟지 않고

발만 들이미는 모양으로 보였기 때문에 텃세가 있는 건 당연했다.


그런 걸 딱히 아쉬워하거나 그들을 미워하진 않았다. 당연한 감정이었다.


그래서 가끔 외로운 마음이 들 때면 걸어서 한강공원을 음미하며 맥주 한 캔을 홀로 따거나,

광화문에서 청계천을 한 바퀴 돌거나,

덕수궁이나 경복궁 돌담길을 걸으며 쓸쓸한 마음을 애달프게 달래고 더욱 깊게 탐색해 보는 것.

그리고 지금은 힙지로가 되어버린 을지로에 가서 자신의 등치를 자랑하는 콘크리트들을 보며

나 또한 저런 등치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도전을 얻는 힐링. 그게 나의 외로움 해소 방법이었다.


대학교 3학년 때 복학을 하면서 시작된 첫 수업은 이론 수업.

그래도 이론 수업은 자신 있었기에 누구보다 열의 넘치게, 그리고 선학습을 했고

모르는 게 있다면 교수님께 여쭤보고,

도서관을 뒤져가며,

인터넷 내 커뮤니티에 대고 물어보며,

냉담함을 무릅쓰고 학과 분에게 장비와 프로그램을 물어보고(하지만 돌아온 건 모른다의 대답뿐..)

그렇게 그냥 같은 선상에 서고 싶어서 부단히 학습했던 기억이 난다.


그 결과 다행히 장학금을 유지할 만큼의 성적을 매번 거두었어서 나름의 효능감을 느꼈다.

그게 버텨주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던 듯하다.

그리고 그런 열의를 교수님도 알아보셨던 듯 차별 없이 대해주셨고,

진로에 대한 아낌없는 조언과 결과물에 대한 칭찬도 모자람 없이 주셨던 듯하다.


하지만 예체능은 늘 그러하듯, 실전은 실습부터였다.

스스로 프로그램을 만지며 곡을 만들고, 영상물을 창작해 내는 과제가 쏟아져 오면서

본 전공과 복수전공을 함께 병행하는 건 마치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느낌과 흡사했다.


하필 또 본 전공과 복수전공의 캠퍼스 위치가 달라도 너무 달라서,

하루는 밤새도록 작품을 만들다가 본 전공 과제를 수업 1시간 전에 해 가기도 하고,

오전에는 본 전공 팀플모임을 하다가

오후에는 복수전공 팀플모임을 하러 가며 시간을 알뜰하게 써보기도 하고,

시험기간에는 과제에 올인할 수 없으니 집에서는 본 전공 공부를,

그리고 복수전공을 하러 가는 지하철 안에서는 노트북으로 하나하나 음을 찍어가며 작품을 완성했던 적도 있었다. (심지어 완성도 못했어서 걸어가는 길에서 밸런스 체크를 했던 때도 기억난다)


정말 서러웠던 건, 작곡프로그램의 용량이 너무 무거워서 노트북이 감당하기 많이 힘겨워했던 것인데,

40만 원 키보드도 당해낼 수 없었는지 음 하나 찍을 때마다 1-2분이 걸렸다. (물론 그 시간마저 아까워서 다른 PC로는 본 전공 PPT를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키보드를 완성하고, 드럼을 완성하고, 싸비를, 인트로를, 스트링을, 하나하나 완성했을 때의

그 허망함이란...


또 제대로 된 녹음실도 없어서 (또는 사회적 기술이 약했던 나로 인해 녹음실을 빌릴 수도 없었어서)

휴대폰에 보컬을 녹음하고 프로그램에 입힐 때 그 이질감을 없애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역시 지워버릴 수 없었을 때의 박탈감.


그리고 모두가 함께하는 녹음실에서 질 낮은 퀄리티가 울려 퍼질 때의 부끄러움..


다른 학생들은 장비를 뭘 샀느니, 저걸 샀느니, 패드를 가지고 새로운 퀄의 음을 찍고 선보이는데

야매로 받은 프로그램과 키보드로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밴드음악이었을 뿐이었다.

그게 나를 가장 작게 만드는, 순간 중 하나였다.


그리고 이미 사람을 하나하나 꾸려서 공연도 하고 필모도 한 줄 그려놓을 때,

왜 나는 동아리나 사람을 모집할 용기가 하나 없을까, 왜 늘 혼자 하려고 할까 하는 용기 없는 나를 탓할 때가 가장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학과 친구들과도 좀 거리가 멀어졌다.

본 학과 친구들은 선배들과 함께 캠퍼스도 즐기며 가끔 수업도 빼가며 놀기도 하고,

토익도 준비하고 취업도 얘기하는데, 공통 관심사가 아니니 자연스럽게 대화 주제에 참여하지 못했다.


나는 정작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학문을 적응하기 위해 열정 하나로 버티고 있으니 말이다.


토익? 취업 준비? 자격증? 그것 또한 나에겐 사치였다.

당장의 졸업작품을 준비해야 하는데, 그만한 퀄리티가 허락할 만한 상황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본 학과 친구들과 멀어진 만큼 얻은 것이 있다면,

함께 복수전공을 하는 몇몇 친구를 만나 어려움을 공유하고 팁을 전수받았던 경험을 한 것.

그들도 나만큼이나 진로의 굴곡이 있었고, 원래 하던 것이 있었고,

음악에 대한 열의가 있어서 발을 들였구나.

앞으로의 미래를 물어봤을 때는 막연함이 가득한 이야기도

서로에게 현실성 있게 조언해 주었기에 좀 버텼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중간중간 교수님들이 재능이 있다고 격려해 주는 순간까지.

그게 대학교 4학년 2학기 때였다. 그때 조금 숨통이 틔였던 듯하다.


그전까지 원래 복수전공 학과인 친구들과 친해져 보고자 나름의 시도를 했지만,

당시 20대 초의 나는 그렇게까지 방어적인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쉽게 열게 할 정도로 센스가 있거나 세련되지 않은 사람이었기에

그저 혼자 나만의 상처를 받고 홀로 고군분투했지 않았나 싶다.

어쩌면 지금의 나였으면 좀 더 비집고 들어갔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저 시기에 혼자서 무언가를 터득하고, 배우며, 부딪히고, 맨땅에 헤딩하다가 머리가 깨져도 보고,

그리고 그 깨진 머리를 어떻게 여맬지를 고민하고, 붕대도 감아보고,

이 붕대가 아니면 다른 약을 써보기도 하고,


외로움과 못난 자신을 자책하는 감정을 혼자 달래며 해결도 해 보는

그야말로 '혼자 하기 달인'이 되었던 때였다.


그땐 혼자가 편하다,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떠올려보면 외로웠기에 그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아 편해지려고 노력했던 듯하다.

하지만 또 그러한 다크하고 딥한 감정 때문에

오히려 곡이 더 잘 써졌는지도 모르겠다.


혼자 하기의 달인이 너무 만렙을 찍어서일까?

졸업작품을 준비해야 하는데, 다들 졸업 공연이기 때문에 부산히 준비하는 움직임이 보였다.

누군가는 밴드를 모집하고, 누군가는 직접 연주를 하고.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되어 사람들을 모아 보기도 하고 수소문도 해 보았지만,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이때 활용할 수 있는 능력치는, '혼자 하기의 달인'을 활용하는 것.


그렇게 내 생애 첫, 그리고 마지막이 되어버린

졸업 공연을 준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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