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마지막 음악과제
10년도 더 된 일이라 졸업공연 날짜는 가물가물하지만,
서울 혜화 어귀의 어느 지하 공연장에서 무대에 올랐다는 기억만큼은 또렷하다.
대학교 친구들과 교회 언니들이 꽃다발을 들고 와 그동안의 고생을 축하해주던 장면도 아직 선명하다.
졸업공연작은 역사소설 『9일 여왕』을 모티브로 삼아,
나탈리 포트만, 스칼렛 요한슨, 에릭 바나가 출연한 영화 천일의 스캔들의 장면들을 재편집해
그 위에 음악을 입히는 작업이었다.
영국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 왕위에 올랐던 레이디 제인 그레이.
정치와 종교 갈등 속에서 왕위 계승의 도구로만 쓰이고,
자기 삶은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채 사라진 인물이다.
왕비가 되기 위해, 그리고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애쓰다 몰락하는 영화 속 앤 볼린의 감정선이
레이디 제인 그레이가 느꼈을 법한 불안과 체념, 공포와 닮아 있다고 느껴
그 장면들을 차용했다.
(개인적으로 정말 추천하는 영화다. 기회가 되면 꼭 보시길.)
하지만 장비에 투자하지 않은 자는 죄인이라고 했던가?
왕정시대의 서사를 담는 음악이니,
건반과 스트링 솔로가 차곡차곡 쌓여 팡!하고 터지는 오케스트라의 사운드를 기대했으나
퀄이 낮아도 너무 낮은 프로그램의 스트링 솔로는 마치 노래방 기계음을 연상시켰다.
마치 80년대 붉은봉 마이크를 들고 부를법한, 어딘가 촌스럽고 얇은 소리.
게다가 졸업작품을 지도해주시던 교수님은 민속음악쪽이셨고,
그러다보니 나의 음악 속에 자꾸만 민속적 코드와 리듬을 심어보려 애쓰셨다.
정말 '뽕끼가득한 음악'이 탄생하냐 마느냐 그 기로에서,
전공생들만큼의 배짱도, 노련함도 없던 나는
결국 한 마디의 뽕을 타협하듯 끼워 넣었다.
그리고 그 작품은 통과됐다.
'다 된 9일 여왕에 뽕끼뿌리기'
권력 앞에서 어쩔 수 없이 고개 숙여야 했던 레이디 제인 그레이의 심정을,
그 순간만큼은 아주 조금 이해한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스트링 솔로라도 실제 바이올린 전공생을 두어 공연하고 싶었지만,
돈도, 시간도, 무대 여건도 허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어설퍼 보일 수 있다"는 총괄의 말에
눈물을 머금고 이 부끄러운 '졸(업)작(품)'을 선보였드랬다.
그런데도 공연의 결과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함께 공연을 보러 온 친구들이 든든하게 힘이 되어주어서인지,
교회 언니들의 격려가 있어서인지,
무엇보다 없는 자본과 촉박한 시간 속에서
최선을 짜내던 나 자신에 대한 보상이
조금이나마 돌아오는 기분이 들었다.
졸업작품말고도 주전공의 졸업논문을 함께 준비하고 있었던터라,
마치 냉탕과 온탕을 오가듯 마음의 스위치를 켰다 껐다 하던 시간들.
그 모든 과정을 그 무대에서 스스로 인정받는 듯해
스스로 그동안 잘 해내왔다는 위로를 그 공간에서 다 얻었던 것 같았다.
음악은,
아니 작곡을 하면서 느꼈던 건,
재능 못지 않게 필요한 집요함과 예민함이라는 사실이었다.
켭켭이 쌓여가는 하모니를 거슬리지 않게 다듬고,
수많은 악기와 박자, 장조와 단조를 재미있게 만져대며
귀에 듣기에 지루하지 않게끔 끝없이 조율하고 정교하게 구현 해 내는 과정.
그래서 예민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항상 신경은 곤두세워져야 했으며,
다양한 스펙트럼을 수용하고 섭렵해야 하는 발빠름이 필요했다.
그 세계는 그랬다. 늘 긴장된 신경과 빠른 감각을 요구했다.
그럴만큼 나는 용기있지 않았고
그만큼 담대함도 없었다.
밑바닥에서 배워야하는 시간과 환경, 그 과정에서 감수해야 할 불안정한 삶.
그 삶을 위해 포기해야하는 것들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졸업작품을 끝으로 음악을 내려놓았다.
그저 나의 못 다한 삶의 이슈, 혹은 과업을 성취했다라는 것에 만족했다.
그냥 이런 때가 있었고, 저런 때가 있었지- 정도.
가끔 곡을 만들고 싶은 욕심도, 몰두했었던 때도 그리워질 때가 있지만,
내가 그때만큼의 능력과 기민함을 살려 롱런할 수 있었을까?에 대한 대답은 여전히 공백이다.
할 줄 알았던게 피아노 밖에 없었고,
좋아하는게 음악 밖에 없었기에,
그것을 나의 삶의 직업으로 선택하지 못해서 진로고민이 계속된다고 상황을 탓하며
고민을 종결하겠다고 호기롭게 시작했던 음악.
그 음악을 소장용 앨범으로 두기로 결심하고 난 뒤,
백수 취준생으로 있을 수가 없어 대학교 조교라도 하며 첫 경제적 독립을 시작했다.
주전공으로는 도저히 취업하고 싶지 않아서,
여전히 9to6로 살아가는 행정사무직을 하고 싶지 않아서,
스페셜한 무언가를 바라지만 경제력은 포기할 수 없어서,
진로를 찾았다고 생각했지만 원점으로 돌아온 삶의 이정표 고민.
그렇게 이상과 현실이 처음으로 정면충돌하는
나의 첫 사회생활 아닌 사회생활 속으로
천천히, 그러나 피할 수 없이 들어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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