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사회에 송곳이 되어보다
처음부터 심리상담을 생각하지 않고 달려온 20대는, 그야말로 진로 방황의 시기였다.
적당히, 소위 말해 쪼들리지 않은 스펙을 갖기 위해 겨우 점수 맞춰 온 대학에는, 전공이 하나 더 있었다.
상세한 전공을 작성하면 어느 대학인지 누구나 다 알법하니 카테고리만 적자면 '작곡'이다.
음악과 친해진 건, "내 자식이 천재구나"라고 생각한 첫 자식을 둔, 여느 부모님들의 생각을 가진 엄마 덕분이었다.
내가 100일도 채 안 됐던 때 혼자 손가락을 땅바닥에 톡톡 대며 움직이는 걸 보고 "피아노에 재능이 있다!"라고 생각한 엄마는 5살 때 나를 가까운 피아노 학원에 보냈고, 생각보다 잘 해낸 나는 피아니스트의 꿈을 당연하게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공부냐 예능이냐의 기로를 결정하는 초등학교 6학년 당시 점점 깊어지는 피아노의 난이도와 진지해지는 피드백이 지겨워졌고, 공부를 선택하며 완전히 그만두었다. 당연히 피아니스트의 꿈도 흐려졌다.
단순히 음악을 좋아하고, 가끔 싱어송라이터의 꿈을 번뜩이며 가지게 한 연결고리이자 수증기에 불과했던, 그런 역할이었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처럼 학원을 다녀 입시를 준비할 만큼 집의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생각보다 현실적인 편이었기에 욕심이라고 생각될 만큼의 응석을 부리지도 않았다.
가망 없는 곳에 많은 시간과 금전을 투자하고 싶지 않았고, 투자한 만큼의 결과를 부모님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던 관념이 있었던 터라 결과가 불확실한 과정에 배팅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누구보다 불확실한 과정에 배팅하는 중인 도톰..)
왜 항상 내가 선택하는 진로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분야인지!
이런저런 진로를 건드려도 '굳이'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은 나는 경상대학에 입학했고, 입학한 학과는 법과 경제학을 함께 배우는 전공이었다.
암기 하나는 자신 있어서 학점을 따는 데엔 무리가 없었고 부모님의 경제적 보탬이 되어드리는 것도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이대로 토익과 자격증을 취득해서 취업하면 자연스럽게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삶을 살면 될 것 같았는데,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무언가 특별해지고 싶었고, 내가 어렸을 때 하지 못한 미해결과제를 이루고 싶은 마음이 스며오기 시작했다.
내가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공부를 하고 싶었다.
늘 표현의 욕구를 가지고 있었던 나는 내가 느꼈던 감정과 느꼈던 마음에 대해 표현하고 싶었고, 그 수단은 오래전부터 나와 함께 했던 음악이었다.
그리고 다양한 악기를 조합하며 귀에 듣기 좋은 선율이 나왔을 때, 그리고 그 선율을 따라 각자의 감정과 마음에 다양한 기억과 잔상들이 그려지는 경험을 선사하고 싶었다.
이 마음은 2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하면서, 독일로 홀로 배낭여행을 떠났을 때 비로소 꿈틀댔다.
나름 진로에 혼란을 겪는 나의 생각을 정리한답시고 떠난 여행이었다(지금 생각 보니 참 궁상이다). 당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오스트리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듣고 싶었지만 돈이 없어 광장에서 새어 나오는 음악을 간간히 들으며 소소한 행복을 누렸던 경험이다.
이 경험은 결심을 가져다주었다. 휴학 하반기 때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작곡 학원을 끊었다.
그 작곡 학원은 가볍게 시장조사를 하러 간 첫 번째 매물(?)이었는데, 실장님의 아들 사랑 가득한 이야기(우리 아들이 여기 원장인데, 00 TV에 나왔어서 잘하면 데뷔 아닌 데뷔도 가능해) 덕분에 코가 꿰어 다니게 되었다.
피아노와 마주했었던 손가락 감각도 찾아보고, 잊어버렸던 코드와 각종 기호들을 다시 익혔다. 꿈에 다가가는 과정을 밟은 건 언제나 즐겁다. 하루하루가 생기가 느껴졌고, 살아있음을 경험했다.
사람에게 목표가 생긴다는 것과 성취를 하기 위한 동력을 가진다는 건 이렇게나 중요하다.
어느 정도 작곡 전공을 위한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작곡을 배우고 있는 친구들은 나보다 더 먼저, 더 깊은 배움을 가지고 많은 내용들을 익히고 있을 테니 이 친구들에게 뒤처지면 안 되었다.
하지만 더 늦출 수는 없었다. 하여 대학교 3학년을 복학하면서 '작곡' 전공을 복수 전공으로 신청하였다.
3월 입학 시즌에 풍겨오는 겨울공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봄이 시작되려 하는 내음은 한껏 사람을 설레게 한다. 이러한 설렘은 나의 마음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내가 다니는 대학은 경기도권 하나, 서울권에 하나 이렇게 나누어져 있었는데 작곡 쪽은 서울권에 있었다. 서울 중심에 있는 학교의 주변 장소들은 나의 영감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자원이었다.
수업에 들어가기 전 도서관에서 미리 예습을 하고, 수업이 끝나면 복습하는 것을 반복했다. 이론 수업은 그렇게 했다. 내 열정을 아셨는지 해당 수업 교수님이 나를 참 예뻐했다. 그 교수님은 차후에 나를 상담심리 분야에 관심을 갖게 한 분이기도 했다.
물론 중간부터 투입된 배움의 영역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이론은 나 혼자 성취할 수 있었지만, 실습은 그렇지 못하였다. 중간부터 투입된 사람들에 대한 배척과 나름의 텃새는, 사람을 좋아하지만 사람에 대해 관찰만 할 줄 알지 마음을 사는 방법에 서툴렀던 나에게 하루하루가 도전인 경험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최대한 폐가 되지 않도록, 그리고 뒤처지지 않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미 다양한 장비를 얘기하는 학우들 사이에서 귀동냥으로 정보를 담아 집에 가면 작곡프로그램을 독학하고 돌려보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내가 가진 장비는 엄마가 쌈짓돈으로 겨우 마련해 준 40만 원짜리 전자키보드가 전부였기 때문에, 더 많은 장비를 요구하기엔 염치가 없어 보였다. 그래서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했고, 최대한의 아웃풋을 내는 게 나의 목표이자 자존감을 지키는 일이었다.
다행히 내가 다룰 수 있는 악기는 피아노뿐이었지만, 작곡 프로그램으로 다룰 수 있는 악기는 다양했다. 프로그램으로 악기를 조합하여 감정을 살리는 선율을 만들어내는 건 정말이지 밤을 새워도 모자랄 만큼 재미있는 작업이었다.
제일 재미있었던 수업은 영상음악 수업이었는데, 영상에 작곡한 음악을 삽입하여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필자가 유럽 왕정의 지대한 팬이라 왕정을 다룬 영화를 가지고 필하모닉에서 귀동냥했던 느낌을 살려, 다양한 현악기와 타악기를 조합한 오케스트라 곡을 입힌 과제였다.
첫 학기 학점은, 그런 노력이 통해서인지 몰라도 실습과 이론 모두 A 이상을 획득했다. 다행히 부모님의 경제적 부담도 덜어드리는 학점을 받아서 더 마음껏 "돈 안 되는" 예술에 마음을 쏟을 수 있었다.
하지만 무엇이든 그렇듯이 모든지 배움에는 즐겁지만, 실제로 아웃풋을 위한 취업시장에 뛰어드는 순간 말도 안 되는 현실이 펼쳐지기 마련이다.
나 역시 그랬고, 마이너스 통장만 남을 것 같은 이 진로에 내 열정을 온전히 쏟을 수 있을지 다시 한번 고민되기 시작했다. 배팅해야 할까? 이건 효율적인 선택일까. 이상적인 열정이냐, 현실적인 적응이냐. 이러한 고민은 10대가 아닌 20대에도 다시 시작될지는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