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카모토 미깡 Apr 11. 2023

관망하는 연습

외로움으로부터 멀어지기

평일의 4호선 열차는 저녁 네 시만 되어도 붐빈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말 그대로 지옥철로 변하고 마는데 이를 알게 된 지 얼마 안 된 그는 - 일찍 알았더라도 별다를 것 없겠다만 - 하릴없이 저녁 여섯 시 반 사람들 틈에 끼어 닭장 속 닭처럼 옮겨진다. 혼잡한 지하철에서 서로 부대끼는 사람은 소통의 대상이 아닌 살덩어리에 불과하다고 어느 책에선가 그랬는데. 핸드폰과 눈을 맞추기 위해 몸에서 떨어뜨린 팔들의 간격이 그는 미웠다. 물에 푼 독처럼 불쾌감과 불안감이 삽시간에 발끝까지 퍼져나가는 것을 인지한 그는 문득, 어라, 지금 숨이 잘 안 쉬어지는 것 같은데. 심장 소리가 이렇게 크게 자주 들렸었나. 맥박은 무대 공포증이 있는 신입사원 같다. 관심이 쏠리자 영락없이 붉어지고 마는 얼굴. 꼼짝없이 갇힌 줄 알고 자꾸만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심장을 안심시키고자, 그는 콧대의 굴곡을 따라 정확하게 모양 잡힌 마스크의 철심을 일그러뜨려 숨 쉴 공간을 약간 확장하는 데에 성공한다.

모두를 지키기 위해 시작된 사회적 거리두기라는데. 마스크를 쓴 채 맞닿은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쩐지 살덩어리를 넘어서 병균 보는 듯하다. 그래도 이만하면 많이 나아졌지. 일 년 전에는 어땠게. 더욱이 그에게는 그랬다. 주삿바늘 속 내용물이 민감한 면역체계에 역효과를 줄까 두려워 사회 명령에 불응한 그에게 내려진 처벌은 철저한 고립이었다. 집 밖을 나가면 밥도 커피도 혼자 먹어야 했다. 주변의 시선도 차가웠다. 그냥 눈 딱 한 번 감지 그래. 이게 다 모두를 위한 건데. 그래. 맞는 말이지. 그 모두 안에 나의 안녕이 포함되지 않을 뿐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나아진 줄로만 알았던 공황 증세가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걸 보니 최근 여간 힘든 게 아니긴 했구나. 가까스로 닭장을 빠져나온 그는 곧바로 마스크를 내리고 숨을 몰아쉰다. 눈총을 견디며 붐비는 에스컬레이터를 탈 바에는 계단 오르기를 택한다. 지친 몸뚱이를 이끄는 힘겨운 걸음이, 내디딘 발의 비틀거림이 제 눈에도 기이하고 가엾다. 그래도 감사할 것이 있다면 역으로부터 집이 가깝다는 점이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불을 켜고 매트리스 위로 철퍼덕 엎어져 숨을 고른다. 여태 요동치는 심장도 설움을 떠올리고 만 뇌도 아우성이지만 방안은 온통 조용하다. 소란한 침묵. 그 속에 가만히 누워있노라면 어김없이 전기 흐르는 소리가 우우웅 이이잉 하며 귓바퀴를 맴도는 것이다. 그 소리가 듣기 싫어 노래를 튼다. 요새 밍기뉴의 노래가 좋더라. 나아지지 않는 날 데리고 산다는 건 따위의 노래 말이야. 있지. 그때 내가 눈 딱 한 번 감았더라면. 그래서 우리가 외식을 좀 더 자주 할 수 있었다면 말이야. 데이트다운 데이트. 밥 먹고 카페 가고 영화 보는 식상한 그거. 한동안 우리는 할 수 없었던 그거. 그랬다면 달랐을까. 전기 흐르는 소리 대신 카랑카랑한 너의 목소리. 너의 목소리는 해변을 쓰다듬는 파란 물결 같아. 밀물과 썰물은 모난 자갈밭을 고운 모래사장이 되도록 가다듬어 줬을까. 그러면, 나는, 소리 내어 우는 법을 잊지 않을 수 있었을까.​


욕실 거울 앞에는 두 개의 칫솔꽂이가 놓여있다.

대나무 칫솔과 스테인리스 재질의 혀 스크래퍼가 꽂혀있다.


이제는.

작가의 이전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