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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카모토 미깡 Nov 23. 2022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리 철학

그럼에도 살아내고자 다짐할  요리를 한다. 버거운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싶어 시작된 “매트리스  벗어나기파업은 길어야 이틀을 넘기지 못한  종료된다. 숨이 붙어 있는 인간에게는 어김없이 밥때가 돌아오기 마련이다. 그래  어쩌겠어, 남의 것도 아니고  인생인데. 죽을 용기가 없으면 어떻게든   궁리를 해야지 하며 터덜터덜 주방으로 향한다.

손수 요리한 음식을 스스로 대접하는 행위는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혀 짜그라진 삶을 어떻게든 펼쳐보려 끈기 있게 노력하는 나에게 표하는 최소한의 예의라고나 할까, 지금까지 충분히  해왔으니 아무쪼록 얼마나 남았는지   없는 징그러운 삶을 앞으로도  부탁한다는 무언의 청탁이라고나 할까. 스스로 먹을 음식을 요리하고 맛보는 시간만큼은 눈앞의 재료와 몸의 감각에 온전히 집중하게 된다. 어제의 후회와 내일의 불안으로 자꾸만 치닫는 의식을 눈앞에 닥친 현재에 맞춰 영점조절 하는 제의적 행동이 내게는 요리인 것이다.

흐르는 물에 갖가지 채소를 꼼꼼히 씻어내다 보면 상념으로 뒤엉켜 복잡했던 마음도 금세 말끔해진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가지와 버섯, 선명한 붉은 색을 뽐내는 토마토, 희고 단단한 몸통과 진한 초록 이파리를 가진 대파를 오감으로 느낀다. 각각의 채소를 용도에 맞는 크기와 모양으로 손질하는 동안 그들의 생명력이 살금살금  끝으로 스민다. 좋은 기름, 적절한 온도와 조리 시간을 거친 이들은 약간의 소금간 만으로도 훌륭한 요리가 된다.

처음으로 요리에 흥미를 느낀 것은 채식을 시작할 즈음이었다. 가족들과 살았지만 식성에 맞게 요리해줄 사람이 없었고 매번 외식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네이버 블로그 등을 뒤지며 따라 해봄 직한 메뉴들을 하나씩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생존을 위해 시작된 취사 행위의 결과물은 매번 기대 이상의 만족과 기쁨을 안겨주었다.

건강 때문에 채식을 시작하게 된 만큼 재료에도 각별히 신경 썼다. 웬만하면 무농약이나 유기농 채소를 구매했고 국산 콩으로 만들어진 된장과 간장을 구매했다. 소금은 꼭 천일염을 썼다. 건강한 식사가 차곡차곡 쌓이자 자기 파괴적인 생활 습관으로 망가졌던 장기의 기능이 원활해졌고 날이 갈수록 군살이 빠지며 힘과 생기가 돋았다. 아! 내 몸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대목에 얼마나 무지하고 무심했는가. 잃어버렸던 삶의 가장 큰 가치를 요리와 함께 되찾아갔다.

나쁜 습관처럼 관성적으로 가난한 마음이  때면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내일의 나를 위한 국을 끓였다. 기쁜 소식은 아득하고 대부분의 나날이 낙담과 허무의 반복일지라도…. 그럼에도 계속되는 , 계속되어야 하는 내일에 발맞춰 다시 주방 앞에 섰다. 삶이 계속되는  요리 또한 계속되어야 하니까. 내일도 어떻게든 살아내겠노라 하는 담담한 결의. 매일의 작은 다짐은 나를 조금씩 강하게 만들었다. 자기 사랑의 첫발을 내딛게 해준  또한 다름 아닌 요리였다.

요행은 없었고 내일도 모레도 오늘과 같은 고된 하루가 반복될 테지만. 아침에 눈을 뜨면 나를 반겨줄 미역국과 강된장을 떠올리며 지친 몸을 누이고 잠자리에 든다.

내일은 꼬시래기 볶음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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