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서 금지된 것들
[合] 허락 없이 존재하기 : 아픔을 발화하는 시민의 연대
최근 어떤 강의에서 “구성적 시민”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해당 강의에서는 국민/비국민, 민족/비민족을 넘어,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에게 주어져야 할 권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강의를 들으며, 처음으로 내 존재가 있는 그대로 수용되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모두가 여유 없고 각자의 이익을 지키기 급급한 현실을 이해한다. 그럼에도 나는, 자본주의의 컨베이어벨트에 탑승하지 못하고 톱니바퀴에 끼어 신음하다 죽어간, 지금도 죽어가는 이들에게 이입하게 된다. 누군가의 생존권이 누군가의 이익을 배반한다는 논리가 통하지 않는 세상을 꿈꾼다. 허락 없이 존재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나는 오랜 시간 나의 고통을 발화하고 싶었다. 어떤 날에는 콱 죽어버리고 싶다가도, 이렇게 소리 없이 사라지고 싶지 않다며 예술가를 꿈꿨다. 그러나 다듬어지지 않은 언어가 닿을 수 있는 영역은 한정적이었다. 고통의 호소에 가까운 나의 언어는 거대한 사회의 흐름 속 불협화음을 유발하는 작은 소음에 불과한 듯했다. 발화하는 나조차도 내 언어에 어떤 쓸모나 의미가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뒤늦게 대학에 와서 공부하며 나를 숨 막히게 했던 것이 겹겹이 쌓인 사회 구조적 모순임을 알게 되었다. 나의 고통은 나만의 것이 아니고, 나의 목소리도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지금도 소외되고 고립되어 기록조차 되지 못한 채 지워지는 언어가 있다. 그들의 입을 틀어막는 흐름에 합류하고 싶지 않다. 기존의 질서를 의심하고, 알맞은 대상에게 문제제기하고, 다른 구조와 방식을 꿈꾸며, 소외된 것에서 새로운 가치를 길어내고 싶다.
또한 사회적 약자가 질병에서 자유로운 세상을 원한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기호에 끊임없이 응해왔고 식탁에는 화학물질로 범벅이 된 가공식품이 범람한다. 생태 착취와 환경 파괴로 안전하지 않은 식품이 생산되고, 이를 섭취한 인간이 새로운 질병을 앓게 되며, 그 병을 고치는 또 다른 화학 약품이 개발되고 판매된다. 이 거대한 순환 구조 속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언제나 약자들이다.
현대 사회에서 의학계는 전문가들만의 불가침 영역으로 분류되며 일종의 종교처럼 기능한다. 그러한 현대 의학의 발전 과정과 현재의 구조에 모순이 없는지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고 싶다.
언제부터 환자가 의사의 ‘처방’을 받아야만 건강을 누릴 수 있는 수동적 존재로 자리매김했는가? 나부터가 현대 의학이 고치지 못한 질병을 스스로 치유한 산증인이다. 약물 처방에 앞서 건강한 식습관과 생활 습관을 기반으로 한 의학 지식이 표준화되고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새로운 공중보건의 방향을 상상하고 실천하고 싶다.
그렇다고 질병이 있는 상태를 비정상으로 간주하는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고 싶지는 않다. 현대 사회는 대부분의 인간에게 자연스럽거나 편안한 상태를 허용하지 않기에, 질병이 하나도 없는 쪽이 이상한지도 모른다.
나는 나와 나의 원가족에 대해 말하고 싶다. 우리가 앓은 지독한 병에 대해 말하고 싶다. 검열된 정결한 언어가 아닌, 고통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은 지저분한 언어로. 그 언어를 징검다리 삼아 타자의 고통에 가닿고 싶다. 그리고 이 말을 전하고 싶다.
당신과 나는 다르지만 다르지 않다고.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안전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