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일곱 살, 대학생이 되었다. 만 나이로 따지면 아직 스물여섯이지만, 어쨌거나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대학에 온 친구들과는 일곱 살 차이가 난다.
남들 다 대학 가는 나이에는 공부에 뜻이 없었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다. 호기심이 많은 나는 공부를 좋아했고 잘하는 편이었다. 공부 외에도 음악이라든지 그림이라든지 좋아하는 게 많았지만, 우리 집 형편은 그리 넉넉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돈 안 들이고 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잘하는 게 공부였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한 나는 많은 이들이 그렇듯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사활을 걸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2학년 중순부터 몸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추간판 탈출증으로 인한 극심한 요통과 한쪽 다리의 마비 증세를 시작으로, 위염과 위경련, 원인을 알 수 없는 부정 출혈 등 가지각색의 다채로운 질병에 시달렸다. 온갖 병원을 전전하며 약을 때려 부었지만 소용없었다. 공부는커녕 일상생활조차 어려워진 나는 급기야 심각한 우울증을 앓게 되며 대학 진학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그 뒤로 곧장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몸과 마음은 성치 않았지만, 연로하신 부모님이 은퇴를 앞두고 있었기에 스스로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빵집, 커피집, 식당, 옷 가게 등 다양한 곳에서 일했다. 내 손으로 돈을 벌게 되자 공부 외에 다른 일에도 도전해 보고 싶어졌다. 그러나 세상만사 쉬운 일 하나 없었다. 최저 시급 받고 일하며 자기 계발까지 하는 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어찌어찌 입에 풀칠하며, 맨땅에 헤딩하듯 아주 조금씩 나에 대해, 세상에 대해 배웠다.
동시에 풀리지 않는 의문이 끊임없이 쌓여갔다. 나와 우리 가족의 몸과 마음은 왜 자꾸만 아픈가? 가난과 질병과 폭력은 왜 이리 쉽게 대물림 되는가? 인간은 왜 술 아니면 약, 종교에 취해 있는가? 비극적인 사회적 죽음을 조롱하는 목소리는 어디서 무슨 목적으로 발생하는가? 나는 왜 이렇게 자주 성폭력에 노출되는가? 정신과에 다니지 않으면서 경제 활동을 하기란 과연 가능한가?
이런 질문에 명쾌하게 답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서점을 드나들며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찾아 읽기도 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어느 순간부턴가 나는, 내가 모르는 일련의 법칙에 따라 세상이 돌아가는 것만 같아 문득 세상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대학 진학을 결심했다. 책만으로는 닿지 못하는 영역, 사회와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지식을 배우고 싶었다. 내가 겪는 아픔과 모순의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었다.
그렇게 뒤늦게 시작한 대학 공부는 그 자체로 내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과정이 되었다. 나의 언어를 갖게 된다는 것, 내게 벌어진 삶을 사회학적 시선으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행위는 내게 주어진 사회적 계급을 깨닫게 함으로써 나를 상처 입힘과 동시에 강렬한 해방감을 안겨주었다. 병과 가난 등 인생이 내게 가져다준 갖은 고난과 굴욕, 수치, 무력감 속에서도 끝끝내 사라지지 않던 나의 호기심을 충족할 모든 것이 바로 여기, 대학에 있었다.
이곳에서 만나는 지식과 사유, 내 삶을 관통하는 질문과 나름의 해답을 앞으로 이 노트에 차근차근 기록해 나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