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 자서전

(3) 자랑거리 그리고 ... 외로움

by 초리

탈도 많았지만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반년을 보낸 후 나는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는 아주 작은 시골 마을에 자리한 사립학교로 옮겼습니다. 토론토 시내에서 2시간 반이 넘게 떨어진 이곳은 정말 자연만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호수가 한편에 있었고 그 외 나머지는 숲으로 둘러싸인 이곳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그곳의 많은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거기에서의 생활은 답답했지만 난 그 안에서 나의 가치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캐나다의 생활도 언어도 점점 익숙해져 갔으며 내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기숙사 생활은 난생처음 해보는 것이었습니다. 아침을 먹고 수업을 듣고 점심을 먹고 수업이 끝나면 운동을 했습니다. 한국의 엘리트 운동부 같이 치열하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업이 끝나면 꼭 한두 시간 운동을 해야 했습니다. 난 가을에는 축구부, 겨울에는 농구부에 가입하여 매일 연습을 하고 사립학교 리그 시합도 뛰었습니다. 영화에서 보던 그런 장면들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원정 경기가 있을 때면 학교 수업도 빠지고, 주요 행사가 있을 때만 입는 가장 격식을 차린 교복을 입고, 버스를 타고 해당 학교에 가서 시합을 치르고 왔습니다. 그럴 때면 마치 진짜 선수가 된 것 같은 느낌에 조금 설레기도 했습니다.

공부도 여전히 즐겁게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내가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서 그것들에게 집중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나와 가장 잘 맞았고 그래서 더 편안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었습니다. 무언가를 공부한다라는 마음보다는 내가 알고 싶은 것을 채워간다라는 마음으로 하나씩 배워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재미가 있었지요. 그 시절 내가 있던 온타리오주에서 4년제 대학교를 가기 위해서는 12학년까지의 고등학교 정규 과정을 다 마치고 난 후 대학 입학을 위한 과정을 이수하고 그 학점으로 평가를 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필수인 영어를 제외하면 난 수학 3과목, 과학 2과목, 컴퓨터로 그 과정을 구성할 정도로 내가 하고 싶은 분야에만 집중했었습니다. 그 덕에 재미있게 대학 입학을 준비할 수 있었지요. 사립학교에 다니는 3년 동안 거의 이런 방식으로 공부했습니다. 프로그램을 짜야하는 컴퓨터 과제를 하다 보면 어느새 새벽 5시가 넘어가고 있었고 결국 그 과제에서 프로그램을 제대로 짠 사람은 내가 유일했습니다. 이런 시간 속에서 어느새 학교에서 나름 유명 인사가 되기도 했습니다. 물리 시간에는 같이 수업을 듣는 친구가 일정 금액을 지불할 테니 과외를 시켜달라고 하였고 매년 수학 경시대회에서는 한 번도 빠짐없이 입상을 하였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이 나는 것은 11학년 화학 경시대회입니다. 캐나다의 유명 대학교와 은행이 협찬하는 대회로 일부 홍콩, 미국, 호주 학생들이 참석을 하였기에 나름 세계 대회라고 홍보하였습니다. 그 대회에서 전체 5등 안에 들어서 학교뿐 아니라 그 근방 지역에도 소문이 돌면서 지역 신문에 기사가 실리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대학 준비 과정에서도 영어 한 과목을 제외한 모든 과목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졸업하였을 정도로 화려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 초등학생 아들에게 아빠는 고등학교 때 전교 1등 하던 사람이라며 자랑을 하기도 하지요. 재수가 없을 정도로 너무 내 자랑을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내가 유학을 간 이유, 내가 원하는 교육 방식으로 거둔 성과는 나에게는 큰 자랑이자 내 인생에 큰 희열이었습니다.


그런 화려한 시절을 뒤로하고 드디어 대학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고등학교 때 거둔 성과 덕에 난 캐나다에서 우수한 학교 중의 하나인 토론토 대학교 기계공학과에 입학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 정기적으로 한 달에 한 번 정도 기숙사를 떠나야 했습니다. 그때마다 시골 마을에서 벗어나 토론토에 나가서 노는 것을 참 좋아했습니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에서 술을 마시기도 하고 거들먹거리며 거리를 돌아다니는 철없던 행동이었지만 그냥 즐거웠습니다.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대학교 생활을 위하여 토론토 시내 한복판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생각 없이 신나서 놀았습니다. 정신없이 놀다 보니 1년이 지났고 같이 놀던 많은 친구들이 학점을 이수하지 못해 유급을 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대학 생활은 고등학교 때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2학년 때부터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하고 다짐을 했지만 집중을 하는 것도 최선을 다 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때 처음 막연히 엄청난 외로움을 느꼈습니다. 캐나다에 처음 왔던 그때, 엄마가 먼저 떠나고 나 홀로 남겨졌을 때 느꼈던 그 감정이 이제는 수면 위로 올라왔습니다. 아무 이유도 없이 시작된 그 감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두려움으로 번졌고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갔습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날이 있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아무것도 하기 힘들었고 말로 설명하기 힘든 이상한 기분에 막연히 지하철을 타고 호숫가로 갔습니다. 호수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걸었습니다. 몇 시간 동안 그냥 걸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고대 그리스의 소크라테스가 할 법한 질문들이 나를 괴롭혔습니다. 그때부터 어렴풋이 가족과 떨어져서 살아가는 것이 너무 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어쩔 수는 없었습니다. 여태까지 내가 이루고 참아왔던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날 수는 없었습니다. 버텨야 했습니다. 힘들었지만 버텼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즐겁지도 편안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렇게 1년 1년이 지났고 어느새 3학년을 마치고 졸업까지 1년만 남기고 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꿈인 과학자가 되기 위하여 졸업을 하고 대학원에 가려고 하였으나 만족스러운 성적을 내지 못했습니다. 나름 최악을 피하려 공부를 하였으나 대학원에 갈 충분한 성적을 내지는 못했습니다. 이래저래 고민이 많고 내적 방황도 많이 했습니다.

학기가 끝나고 여름 방학이었습니다. 그동안 아쉬움이 많았지만 그래도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해보자고 다시 한번 나 자신에게 다짐하였습니다. 그날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누나와 대학 시절 가장 친하게 지내던 친구와 셋이서 오랜만에 모여서 술자리를 했습니다. 내 생일이 머지않아 생일파티 겸 모인 자리에서 신나게 놀고 있었습니다. 시간도 꽤 지나서 얼큰하게 술이 취해 있었을 때 엄마한테 전화가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