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쉐키들! 친절하면 덧나냐? 예쁘게 말하면 덧나냐고? 남편의 수술을 맡았던 안준형 교수님은 친절히 상황 설명을 했고, 친절하려고 애쓰고, 오히려 질문을 잊어버릴 정도로 말씀하시며 궁금한 거 없어요? 하는데 말이야. 아직 전문의도 되지 않은, 내 눈에는 피라미로 보이는 녀석들이 말을 함부로 했다. 환자의 보호자가 환자에 대해서, 병원에 대해서, 병에 대해서 아는 게 없다고 막 무시하는 말투로 말하는 건 쫌 아니지 않을까? 불현듯 내가 하고 있는 일, 내 자리에서 나를 찾는 다양한 고객들은 어떨까 반성하게 된다. 아~~ 나는 나의 합리화를 끌어내려 애썼지만 역지사지의 입장에선 똑같은 상황일 듯하다. 나부터 바꾸자. 나도 바꿔야겠다.
"정옥채 환자는 신경외과에서 더 이상 할 거 없으니 퇴원하세요!
"네? 이 상태로요? 집으로 가라고요?" 아직 머리에 붕대도 안 풀었는데요? 이제 병실에 올라온 지 8일째인데요? 걷지도 못하는데요? 30일도 안 됐는데요?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네. 30일 상관없습니다. 치료가 끝났으니 집으로 가시던지 우리 병원 재활의학과나 다른 재활병원으로 전원을 하시면 됩니다."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걸 알겠다. 좀 더 상세히 신경외과에서 하는 과정은 머리에 대한 치료이고 더 이상은 할 게 없으니 우리 병원은 보통 환자들을 재활의학과로 전과시키고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보호자께서 다른 병원으로 전원을 하셔도 좋고요. 이렇게 말했더라면 '아~ 이렇게 기간을 맞추어 퇴원하는 거구나!' 하고 알 텐데.... 강의 때 초등학생 수준에서 알만한 수위로 말해야 된다는 것이 이해가 갔다. 자기가 아는 것 모두를 상대방이 알 거라고 생각하는 건 오산이다. 살면서 아이한테도 배울 게 있다는 말이 맞다.
나는 전원이라는 단어를 태어나서 처음 들었다. 처음 병원생활이라 모든 게 생소했다. 남의 일 같았던 일들이 내 일이 되고 나니 모든 걸 직접 부딪치며 마주해야 했다. 3차 병원이라고 칭하는 대학병원은 환자가 1달 이상 머물 수 없도록 제도가 되어 있었나 보다. 그냥 입원한다고 해서 병원에 남아 있을 수 없고, 1달이 다 되어가면 전원이라는 단어에 맞게 다른 병원으로 옮겨가야 하는가 보다. 그 기간을 넘기면 담당 의사는 확인서를 써야 하고, 명확한 이유가 있어야 하며, 페널티가 있다는 얘기를 간호사에게 들었다. 환자의 보호자는 중간중간 다음으로 옮겨갈 병원에 진료를 넣어놓고 환자 없이 대리진료를 신청해서 옮겨가는 병원을 찾는 것이다. 이런 제도가 왜 생겼는지 알 것도 같고 화도 났다. 오랫동안 치료를 해서 완쾌가 된 후에 퇴원을 시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뭐가 뭔지도 모르며 다른 병원들을 찾았다. 꼼짝 못 하는 남편을 지켜야 하는 내 대신에 딸이 밖에서 여기저기 재활의학과가 있는 3차 병원을 찾았다. 대기가 한 달에서 삼 개월이나 되고 당장 옮겨갈 병원을 찾을 수 없었다. 다행히 병원 내에서 재활의학과로 전과를 해서 30일쯤 됐을 때 중앙대병원에서 입원해도 좋다는 연락이 왔다. 부랴 부랴 정리해서 중앙대병원으로 옮겼다. 병원 시설이 조금 나았다. 재활의학과 시스템도 좋았고, 시간표도 잘 정리되었다. 옮겨오긴 잘했지만 가져온 차트만으로는 다 알 수 없는지 많은 검사를 다시 했다. 약도 바뀌었고, 환자에 대한 파악도 다시 들어갔다. 이게 뭐냐고?
중앙대병원에 입원시킨 다음날 신촌세브란스에서 입원하라고 연락이 왔다. 뭐지? 어쩌라는 거야? 이렇게 옮길 수 있는 거야? 그럼 중앙대병원은 뭐가 되고? 신촌세브란스는 집에서 아주 가깝다. 재활의학과가 뛰어나다는 소식도 있었다. 마을버스 한 정거장이니 가고 싶은 마음은 더 굴뚝같았다. 그래도 차마 옮기겠다는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건 양심적으로 아니야! 를 외치며 중앙대병원에 남기로 했다. 중앙대에서 한 달을 보내고 난 뒤 그다음에 다시 신촌세브란스로 가면 된다고 다음 순서에 넣었다. 중앙대병원에서도 30일을 넘길 수 없다고 했다. 3차 병원은 각 병원마다 한 달을 넘길 수 없고, 3차 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것은 총 3개월을 넘길 수 없다고 했다. 다음에는 2차 병원인 재활병원으로 옮기고, 그곳에서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요양병원으로 옮기던지 해야 된다고 했다. 이런 상급병원 제도는 중증환자의 적절한 치료를 보장하고, 의료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운영방침이라고는 하지만 중증환자들에게는 너무 불리한 시스템이었다.
중앙대병원 30일이 가까워졌을 무렵 신촌세브란스에 대리진료 신청을 하고 진료를 봤다. 지난번에 불렀을 때 안 왔다고 입원시켜 주지 않겠다고 한다. 다시는 자기한테 진료신청도 하지 마라고 한다. 뭐 이런 시스템이 있냐고 사정 사정 했다. 겨우 옮겨간지 하룻만에 어떻게 병원을 옮겨 오냐고 했더니, 오라고 할 때 와야지, 다른 환자들은 다 온다며 안된다고 했다. 다시 이 병원에 오게 될까 봐 의사 선생님과 싸울 수도 없고, 눈물이 났다. 뭐 이런 시스템이 있어! 원무과에 병원비 계산을 하며 펑펑 울었다. 원무과에서 행정을 보는 사무원이 "명의라서 그렇다고" 한다. 명의가 인성도 좋으면 안 되냐고? 나는 신촌세브란스를 영원히 안 가기로 했다. 싫어하기로 했다. 남편은 중앙대병원에서 한 달을 넘기고 재활병원으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