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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제라늄 Sep 02. 2018

 기도 중에 기억할게!

그대 있음에 나 외롭지 않음을

사는 동안 누구에게나 그런 때가 있다. 더 이상 내일이 오지 않는 영원한 밤에 갇혀버린 것 같은 순간, 더 이상 희망이라는 것을 가질 수 없었기에 세상이 끝나버린 것 같던 그런 날이 나에게도 물론 있었다.


작은 삶이 산산이 부서지고 쓰린 상처로 쓰러졌을 때, 나는 말할 수 없이 외로웠었다. 그것은 마치 황량한 겨울 벌판에 벌거벗은 채 서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생각했었다.


내가 이렇게 상처투성이로 이를 악물고 산다 한들, 이 세상 그 누가 나를 기억이나 해줄까?’


이 말을 내뱉는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해서 믿을 수 없을 지경이었지만, 자포자기한 나의 독백을 향해 대답해주는 이가 있었다는 사실은 더욱더 믿겨지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게, 당연하다는 듯이, 그분은 말씀하셨다.


내가 기억하지!”


1초도 망설임 없는 그 분의 대답이 너무나 생경해서, 아무 말 없이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하지만 그 날, 그 두 마디의 말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가슴속에 남아 씨앗이 되었다. 이 세상에 다시 희망을 품고 뿌리를 내리는 씨앗 말이다.


너를 기억한다는 것@Pixabay

그 분은 바로 나의 신부님이시다. 성씨도 같고 친구처럼 친해서 서로 오빠 동생하기도 하는 우리 신부님을 만난 것은 아주 우연이었다. 그 때가 1996, 그러고 보니 그 날로부터 어느덧 20여년이 지났다


누군가를 20년쯤 알고 지내다보면 중간에 몇 년쯤은 연락은 커녕 서로가 어디서 무얼 하며 사는지 알 수 없기도 하지만, 다시 만나면 얼굴을 마주보는 순간부터 어제 만났던 사이처럼 세월을 훌쩍 극복해버리곤 한다. 지난 해 5월의 우리의 만남이 그랬다. 


서로 알고 지낸지가 20년이 넘는데, 2003년 이후로는 뵙지를 못했으니 거의 14년 만의 만남이었다. 그 분은 변함없이 다정하셨고, 약속처럼 나를 잊지않고 기억하고 계셨다. 다시금 세상의 온기를 가득 충전하고 돌아오는 길, 나는 그 분이 주셨던 아름답고 따뜻했던 두 번째 위로를 떠올렸다. 


이태리 수도원으로 몇 년간 떠나셨던 신부님께 편지를 썼던 적이 있었다. 서로 연락을 못하고 지내던 시기라 신부님께서 그 곳에 계신 줄도 몰랐고 주소조차 확실하지 않았다. 천주교 교구청 홈페이지에서 받아 적은 주소로 밑도 끝도 없이 보낸 것이었기에, 편지가 제대로 수도원에 도착할지 어떨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렇게 몇 달이 흘렀고 편지에 대해 까맣게 잊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이태리로부터 국제우편 도장이 찍힌 한 장의 엽서를 받았다. 바로 우리 신부님이셨다. 편지를 잘 받았다는 인사와 함께, 밭을 가꾸고 기도를 하는 단순하지만 평화로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신다는 안부를 보내오신 것이었다.

반가운 소식@Pixabay

내 편지가 무사히 도착했고 답장을 받은 것만으로도 너무나 기뻤는데 그 엽서를 끝까지 읽은 나, 그만 심장이 멎어버리는 줄 알았다. 여전히 마음 어려운 시기를 관통하고 있던 나는, 엽서의 마지막 문장에 그만 눈물을 쏟고 말았다. 너무나 따뜻하고, 넘치게 감사해서!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기도 중에 기억할게!’


내게는, 이 세상에서 받아본 가장 아름답고 따뜻했던 위로였고 크나큰 사랑이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렇게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나,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어 살아보리라고.


나를 믿어주는 단 한 사람.

나를 이해해주는 단 한 사람.

그리고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단 한 사람. 


그런 한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언제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어떤 절망 속을 헤매고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감사합니다...전하고 싶다@Pixabay

P.S.

14년 만에 만난 우리 신부님, 대뜸 던지시는 첫 마디부터 홈런을 날리신다. 

"한국 올 때마다 연락 좀 해요. 좀 더 자주 봐야지, 이렇게 보다가는 앞으로 두 번 더보면 하늘나라 가게 생겼어요!"

진짜 너무 멋지고 귀여우시지 않은가! *^^*



휴식같은 글을 쓰는 작가이고 싶습니다.

- 최서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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