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백
아아, 괴롭구나, 창작의 고통이여!
나는 왜 소설가가 되었을까? 대체 무엇을 표현하고 싶어서 이 길에 들어섰을까? 작가란, 예술이라 불리는 광야에서 홀로 방황하는 순례자와 같구나! 아니다. 순례자라 하더라도 나처럼 고독하고 외롭지는 않을 것이다. 순례자는 하늘의 해와 달이 길동무가 되어주고 눈 앞에 펼쳐진 자연이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주지만, 예술가에게는 고독과 적막이라는 두 명의 친구 외에는 아무도 없다. 아니다. 그들은 친구가 아니다. 아무리 말을 걸어보아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그들은 친구가 아니다. 그들은 신이다. 악마다. 나의 고통을 보고 즐기는 그들은, 혈관 속에 뜨거운 피가 흐르지 않는 사이코패스들이다. 사라져라! 사라져라! 나의 괴로움을 안고 사라져라! 너희가 나의 친구들이라면, 나의 괴로움을 외면하지 말아라! 나의 고통을 간과하지 말아라! 나의 노력을 멸시하지 말아라! 나는 예술이라는 광야에서 홀로 떠도는 구도자다. 구원을 찾아 미궁 속을 외로이 떠도는 구도자는, 어제도 괴로웠고, 오늘도 괴롭고, 내일도 괴로울 것이다. 매 순간이 이처럼 괴롭건만, 나는 대체 왜 이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일까? 누가 시키지도, 강요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대체 왜 이 일에 인생을 바치고 있는 것일까? 전쟁터에서 총을 들고 싸우는 군인들만이 목숨을 거는 건 아니다. 각자의 이권을 위해 아득바득 물어뜯는 사람들만이 목숨을 거는 건 아니다. 여기 예술을 하는 사람도 자신의 목숨을 건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목숨을 건다. 간절한 마음으로 자신의 인생을 건다. 아아, 정신이 혼미하다. 아무것도 먹지 못해 배가 고프다. 그런데도 나는 펜을 놓지 않는다. 아니다. 놓을 수가 없다. 나는 글을 써야만 한다. 내 안에서 솟구치는 목소리가 나를 쓰게 만든다. 나는 목소리의 노예다. 주인에게 매인 노예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선택권이 없다. 괴롭구나, 나의 인생이여! 자신의 운명을 비관하며 흘린 눈물은 마른 지 오래다.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며 좌절했던 감정은 글을 쓰는 관성 앞에 굴복한 지 오래다. 오늘도 나는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면서도 펜을 든다. 아아, 나는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왜 글을 쓰려고 하는 것일까? 대체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일까? 수많은 창작 방식 중에서도 왜 하필 소설일까? 이처럼 조그마한 글자 속에 무엇이 있길래, 나는 이토록 글쓰기에 집착하는 것일까? 글을 쓰는 와중에 정신이라도 미쳐버린 걸까? 광기가 내 정신을 사로잡아 집착을 예술로 착각하게 만든 건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광기를 향해 외치고 싶다. 너 광기여, 물러가라! 나에게서 물러가라! 나를 온전히 두어라! 너는 왜 이토록 나를 괴롭히는 것이냐? 나는 너를 욕되게 한 적이 없다. 아, 그렇구나! 너는 악마다! 광기의 탈을 쓴 악마다! 네가 나를 예술이라는 미궁 속에 던져넣었구나. 미궁 속에서 괴로워하는 내 모습을 보며 너는 손뼉을 치며 즐거워하는구나. 무섭다. 나를 옭아매는 너의 손길이 두렵다. 나는 이 세상에 신이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여기 당신의 어린 자녀가 이토록 고통 속에서 절규하는데, 당신은 대체 어디에 계시나이까! 제발 당신의 어린 자녀를 구원하소서! 라고 기도하고 싶다. 신에게 의지하고 싶다. 그가 원한다면, 나의 영혼이라도 바치고 싶다. 이 미궁 속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신이 아니라 악마에게라도 달려가고 싶다. 나의 영혼을 들고가 구걸하고 싶다. 그리고 울부짖고 싶다. 예술을 다오! 나에게 예술을 다오! 예술이라는 출구를 다오! 예술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예술뿐이다. 나는 예술이라는 바닷속에 들어가 흠뻑 젖어 살고 싶다. 예술이라는 바다가 주는 젖과 꿀을 먹어가며 살고 싶다. 그렇게 성공하고 싶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 오해하지 마시라. 나는 위선자가 아니다. 세상에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돈만 있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다. 행복은 감정이다. 감정은 개인마다 다르다. 그래서 행복 또한 사람마다 다르다. 하지만 그들 중에도 공통점은 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진솔해야 한다.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야 한다. 자신을 속여서는 절대로 행복해질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에게 솔직했다. 사람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자신이 가장 잘하는 걸 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오랜 시간 동안 나 자신을 고찰했다. 그리고 나에게는 예술적인 재능이 있다고 보았다. 그렇게 나는 예술을 선택했다. 용기를 내어 결단했다. 무엇에 홀린 듯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 한순간의 감정적인 충동은 더더욱 아니었다. 예술가의 인생이 고달프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예술 속으로 뛰어들었다. 혼신을 다해 글을 썼다. 그리고 소설책 한 권을 출판했다. 사람들의 반응도 좋았다. 그렇게 나는 미래가 촉망받는 젊은 작가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글이 써지지 않는다. 벌써 십여 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건만 아직도 글이 써지지 않는다. 수없이 많은 방법을 찾아 미친 듯이 시도해보았지만, 글이 써지지 않는다. 그 이유조차 몰라 더더욱 괴롭다. 낮이나, 밤이나, 일상이나, 꿈속이나, 매 순간을 미궁 속에서 헤맨다. 작가로서 사람들에게 잊혀진지 오래다. 이제는 지친다. 힘이 든다. 그만 끝내고 싶다. 나는 내가 예술을 선택했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지금와 돌이켜보니 내가 예술을 선택한 건지 아니면 예술이 나를 선택한 건지 모르겠다. 아아,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니. 대체 무엇이 옳다는 것일까? 이 세상에 무엇 하나 뚜렷하게 정해져 있는 게 있기는 한 걸까? 혹시 예술이 나를 착각에 빠뜨려 스스로 선택해 내린 결정이라고 믿게끔 만든 건 아닐까? 오 예술아, 네가 나를 선택했다면 제발 나에게 예술을 다오! 이 괴로움 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예술을 다오! 너는 왜 아무 말도 없는 것이냐? 너도 고독과 적막의 친구가 되었다는 말이냐? 슬프다! 이제는 어느 누구도 나에게 말을 걸어주지 않는구나. 부모와의 연을 끊은 지도 오래다. 함께 고민할 친구도 없다. 이 인생이 옳다고 생각했건만, 이제는 나도 모르겠다. 정말로 모르겠다. 아아, 이 세상에서 내가 아는 게 있기는 한 걸까? 혹시 내 두뇌가 퇴화하고 있는 건 아닐까? 치매라도 걸린 건 아닐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바보가 되어버린 걸까? 이 세상에 태어난 지도 벌써 서른하고도 몇 년이 지났다. 어른이 되면 이 세상을 모두 알게 될 거라 생각했건만, 나이가 들수록 나 자신이 바보라는 것만 깨닫게 된다. 삼십여 년의 시간 동안 내가 배운 거라곤 내가 모른다는 것뿐이다. 어쩌면 이런 게 인생일지도 모르겠다. 한평생 풀리지 않는 미궁 속에서 끊임없이 방황하다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 말이다. 아아, 그렇구나, 인생이란 그런 거구나! 태초에 신이 자신을 배신한 인간들에게 내린 저주구나. 죽을 때까지 헤매야만 하는 미궁이로구나. 그렇다면 우리는 이 미궁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 이 덧없는 시간을 무엇으로 채워야 한다는 말인가? 대체 어떤 인생이 옳은 인생이란 말인가? 모르겠다. 정말로 모르겠다. 이 질문에 정녕 답이 있기는 한 걸까? 정답이 없다면 어떠한 인생을 살아도 상관이 없다는 말인가? 남들에게 걸리지만 않는다면 불법적인 일도 서슴없이 저질러도 된다는 말인가? 육신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일도 정당화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가족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일도 합리화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정녕 사람들에게 양심이 있기는 한 걸까? 도덕이란,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잘못 착각한 것일까? 타인의 고통은 무시해도 되는 걸까? 타인의 선행은 이용해도 되는 것일까? 인류의 발전과 개인의 욕망은 상관이 없다는 말인가? 대체 인류의 공감 능력은 어디로 사라졌다는 말인가? 도대체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 묵자여! 공자여! 맹자여! 장자여! 한비자여! 구도의 선구자들이여! 그대들은 아는가? 나는 모르겠다. 정말로 모르겠다! 매 순간 나 자신의 한계를 체감하며 겸손을 배운다. 인생의 불가사의를 마주할 때마다 고개가 절로 숙어진다.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그의 도우심을 절실히 갈구하고 싶다. 설령 신이 없다 하더라도 그에게 두 손을 모아 기도하고 싶다. 우리의 인생에 평안함이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렇게 해야만이, 잠시만이라도 끝없는 불안 속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거짓말은 하지 않겠다. 나는 겁쟁이다. 매 순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미래가 두렵다. 길을 잃은 어린양처럼 두려움에 떨며 신의 구원과 도우심을 갈구한다. 이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내가 아는 게 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내가 아는 건, 그저 나 자신이 모른다는 것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매 순간 자신의 행복을 위해 부단히 애쓰는 일뿐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인생길 위에서 한 발짝을 내디딜 때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신의 도우심에 감사한다. 그리고 또다시, 다음 발판을 찾아 부단히 움직인다. 다시 한 번, 신의 도우심을 갈망한다. 그렇게 자신의 행복을 위해 끊임없이 몸부림친다. 허둥지둥! 아득바득!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다. 내가 하는 일의 전부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위해 이토록 애를 쓴다는 말인가? 대체 나의 행복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그 답을 찾기 위해 너무도 많은 시간을 괴로움 속에서 허비했다. 이제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너무나도 지친다. 그만두고 싶다. 더는 소설가로서의 성공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이 미궁 속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당장 나의 주린 배를 채울 수만 있다면, 어떠한 일도 마다하지 않겠다.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삶이라면, 그곳이 바다든, 산이든, 사막이든, 그 어디라도 상관하지 않겠다. 그렇게도 간절히 바라건만, 나는 왜 아직도 펜을 놓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냐? 무엇을 바라고 있다는 말이냐? 아아, 현기증이 난다. 끝없이 돌고 도는 질문들이여, 제발 멈추어라! 신이여! 악마여! 고독과 적막이여! 나의 영혼을 당신들에게 바치겠나이다! 제발 나에게 답을 주시오! 라고 울부짖어도, 답하는 이는 어디에도 없구나. 아아, 어쩌면 이게 바로 초월자가 나에게 부여한 미궁일지도 모르겠다. 인생일지도 모르겠다. 운명일지도 모르겠다. 팔자일지도 모르겠다. 만일 그렇다면, 만일 이게 내 미궁이라면, 인생이라면, 운명이라면, 팔자라면, 이 짐을 짊어지는 것 또한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다. 이 인생을 헤쳐나가는 것 또한 나의 몫이다. 하지만 사람이 자신의 운명을 선택할 수 있다면, 신이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었다면, 나는 왜 아직도 펜을 놓지 못한다는 말이냐? 무엇이 그토록 아쉽다는 말이냐? 무엇을 그토록 이루고자 한다는 말이냐? 모르겠다. 정말로 모르겠다. 됐다. 그만 생각하자. 그만 질문하자. 답이 없는 질문 속에 무슨 의미가 있으랴. 아니다. 그건 아니다. 질문 없는 삶에 무슨 광명이 있으랴! 호기심을 억누른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으랴! 하지만 질문을 한다 한들, 호기심을 가진다 한들, 나는 정답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인가?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정말 모르겠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미궁 속에서 홀로 방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