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

2.

by 최신글

밤새 괴로움 속에서 고민을 하다 겨우 잠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름 햇살이 창가에 내리쬐었다.


피곤하다. 눈이 떠지지 않는다. 좀 더 자자, 좀 더 눕자. 아니다. 눈을 뜨자. 어서 일어나 글을 쓰자. 내 생각을 실행에 옮기자.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생각은 죽은 생각이다. 생각만 해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후,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세월은 바람처럼 흘러 가건만, 어째서 나의 날짜는 똑같이만 느껴지는 것일까? 매일 같은 행동을 반복해서일까? 생활 패턴을 바꿔보면 괜찮아질까? 아니다. 아마도 추측건대, 내 글에 발전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괴롭다. 작가로서 글을 쓰며 살고 싶은데 능력이 부족하다. 매 순간 자신의 한계에 부딪히며 고통에 몸부림친다. 목이 타들어 간다. 온몸의 혈관이 메말라간다. 고독한 예술가의 고뇌를 어느 누가 알 수 있으랴? 창작의 고통을 어느 누가 알 수 있으랴? 타인의 글을 모방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정형화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일까? 내가 정말 표현하고자 하는 것일까? 펜을 놓지 못하는 이유일까? 글을 쓰는 목적일까? 아니다! 그건 절대로 아니다! 라고, 내 마음이 외친다. 그런 글은 성에 차지 않는다. 그런 글은 불쏘시개로밖에 쓸 수가 없다. 편안한 글은 달콤하지만 진정성이 없다. 깊이가 없다. 진리가 없다. 인생이 없다. 그래서는 쓰는 의미가 없다. 시간 낭비일 뿐이다. 그렇다면 나의 글이 진부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건대, 인물들 때문이다. 나의 글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는 인생을 관통하는 깊이가 없다. 그들의 인생으로 들어가려고 노력을 할 때마다 실패한다. 인물들을 고찰하려 할 때마다 포기한다. 나도 모르게 두려워진다. 온몸이 떨리고 한기가 몰려든다. 알 수 없는 공포가 나를 옭아맨다. 들어가지 마라! 그 안으로는 들어가지 마라! 라고 외친다. 괴롭다. 매 순간 자신의 나약함에 절규한다. 부족한 용기에 좌절한다. 너 공포야, 나를 놓아라! 나를 붙잡은 그 검은 손을 치워라! 아아, 신이여! 악마여! 고독과 적막이여! 제발 나 좀 도와주시오! 나를 옭아매는 공포로부터 해방시켜주시오! 나는 왜 이렇게 두려움에 떠는 것일까? 대체 인물 안에 무엇이 있다는 말인가? 인물의 내면은 칠흑같이 어두워서 보이지도 않는다. 그 안을 보려면 인물 속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아니다. 들어가지 못한다면 차라리 고개라도 집어넣어 보자. 좋다. 그렇게라도 해보자. 조금만이라도 엿봐보자. 라고 생각하지만, 겁에 질린 나의 마음이 내 앞길을 가로막는다. 너 마음아, 왜 그렇게 두려워하느냐? 왜 그렇게 위험을 경고하느냐? 용기여, 너는 대체 어디에 있느냐? 어디에 숨어있느냐? 아아, 여기에 있구나. 너는 언제나 내 안에 있었구나. 좋다. 어서 가자. 나와 함께 인물 안으로 들어가자. 심연 속으로 들어가보자. 어찌 된 일이냐? 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말이냐? 그렇구나. 나의 두려움이 너를 뛰어넘었구나. 두려움이여, 너는 대체 누구냐? 어디에서 온 것이냐? 아아, 괴롭다. 나 자신이 두렵다. 내가 점점 미쳐가는 것일까? 아니다. 차라리 미쳐버렸으면 좋겠다. 정신이라도 미쳐버리면, 마음이 편할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미칠 수 있을까? 아무리 술을 마셔도 정신은 멀쩡하다. 혹시 마약에 취하면 미쳐버릴 수 있을까? 나는 이제 예술가들이 마약에 심취하는 이유를 알았다. 그들은 안식을 원한다. 미궁 속에서 헤매다 지친 영혼을 쉬게 할 안식처를 원한다. 미궁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출구를 원한다. 예술에서 벗어날 수 있는 예술을 원한다. 하지만 그건 거짓이다. 기만이다.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진 대문이지만, 그 뒤에는 개미지옥이다. 늪이다. 무저갱이다. 소용돌이다. 보아라! 달콤한 거짓의 속삭임에 타락해버린 수많은 예술가들의 인생이 나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이 해결할 수 없는 괴로움을 어떻게 해야만 한다는 말인가? 정녕 이 미궁 속에서 나를 구원해 줄 수 있는 존재는 어디에도 없다는 말인가? 신도 없고, 악마도 없고, 고독과 적막도 없다는 말인가? 아아, 조용하구나. 여전히 나의 물음에 답해주는 이는 어디에도 없구나. 절망하라, 세상이여! 신은 죽었노라! 통곡하라, 세상이여! 악마는 죽었노라! 인정하라, 세상이여! 고독과 적막은 죽었노라! 하지만 걱정하지 마시라. 이제는 어느 누구에게도, 어떠한 기대도 하지 않으니까. 자신의 인생은 스스로 구원하는 것이니까. 자신의 행복은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니까. 이 문제 또한 내가 스스로 해결해야만 한다. 그러니 귀 있는 자들은 들어라! 이 세상에서 나를 구원해 줄 존재는 나 자신뿐이다! 라고, 이 자리에서 선포하노라.


핸드폰에 새로운 문자가 전송되었다.


누가 나에게 문자를 보냈을까?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사람은 없는데. 혹시 매달 오는 휴대폰 요금 통지서일까? 그것 외에는 생각할 수 있는 게 없다. 아니다. 요금 통지서가 아니다. 이 번호는 누구일까? 처음 보는 번호다. 아, 문자의 마지막 줄에 장례식장이라고 쓰여있구나. 장례식장에서 무슨 일로 나에게 연락을 했을까? 내용 또한 생소하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니, 우리 어머니를 말하는 걸까? 아, 맞다. 우리 어머니가 맞구나. 고인의 성함에 우리 어머니의 이름이 적혀있구나. 부모님을 생각하는 건 참으로 오랜만이다. 나는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부모님과의 연을 끊었었다. 그 후, 서로 연락할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내가 나이를 먹은 걸까? 막상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으니 마음이 아린다. 후회가 밀려온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한 번만이라도 뵈었다면, 지금 이 마음이 덜 아팠을까? 이대로는 안 되겠다. 장례식장에 가봐야겠다. 다시는 부모님과 만날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내가 나이가 들긴 들었나 보구나. 부모님이 보고 싶다. 아니다. 어쩌면 이건 나의 단순한 착각일지도 모르겠다. 풀리지 않는 현실 속 답답함에 잠시만이라도 벗어나고 싶은 변덕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어쩌면 이건 출구일지도 모르겠다. 미궁 속에서 나갈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미궁 속 길을 안내해주는 지도일지도 모르겠다. 예술 작품은 그 예술가의 깊이에 비례한다고 하지 않던가. 이번 일을 통해 나는 인간으로서 더욱 성숙해지리라 예감한다. 그래서 나의 작품 또한 더욱더 깊어지리라 확신한다. 오해하지 마시라. 나는 운명을 엿보는 점쟁이가 아니다. 미래 시장을 예측하는 증권가의 분석 전문가는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예술을 하다 보면, 인간을 연구하다 보면, 사람에 대한 직감이 늘어난다. 인생에 대한 통찰이 늘어난다. 그 직감이, 통찰이, 지금 나에게 장례식장에 가보라고 말한다.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라고 말한다. 여기 내 마음을 보아라! 그는 벌써 고향에 도착했구나.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다. 부모님께 가보고 싶다. 내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자신의 모든 걸 건다. 모든 걸 걸고 도전할 때 성장한다. 나는 늘 인간으로서의 성장을 갈망한다. 그러니 나는 지금 부모님께 가야만 한다. 만일 그대들이 내가 하는 말을 자신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변명이라고 비난한다면, 나는 할 말이 없다. 나의 직감을, 나의 통찰을, 그대들은 이성과 논리로 설명해달라고 요구한다면, 나는 할 말이 없다. 어설픈 설명이야 가능하다. 슬럼프에 빠진 소설 속 주인공은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보면서 성장한다. 하지만 현실은 소설이 아니다. 어느 누가 감히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으랴? 거짓말은 하지 않겠다. 만일 그대들이 자신의 성장을 확신하느냐고 묻거든, 모른다고 답하겠다. 그게 나의 최선의 답변이다. 하지만 내 안의 직감이 끊임없이 몸부림친다. 어서 고향에 돌아가라고 재촉한다. 오해하지 마시라. 나는 눈앞의 상황만을 쫓아 이리저리 휘둘려 다니는 집시가 아니다. 현실을 무시하고 이상과 감정만을 숭배하는 히피족이 아니다. 남들은 나를 보헤미안이라 부르지만, 나는 단지 자신에게 솔직한 거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대들은 충동이라 부른다면, 더는 할 말이 없다. 내 직감이 옳은지, 아니면 단순한 변덕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정신병인지, 그건 결과가 증명할 것이다. 나의 미래가 증언할 것이다. 만일 내 선택이 옳다면, 나는 성장할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나는 타락할 것이다. 오, 성장과 타락이여! 너희는 인생의 굴레에 매여 끊임없이 돌고 도는 수레바퀴로구나. 구원과 진리를 찾아 헤매는 구도자들의 거울이로구나. 성장을 이뤄낸 자는 남들의 평가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성장을 알 수 있다. 감정이 아닌 이성으로 알 수 있다. 추측이 아닌 확신으로 알 수 있다. 변화된 행동이, 언어가, 사고가, 그의 성장을 증명한다. 성장이란 오직 자신의 인생에 온전히 부딪혀온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초월자가 구도자에게 내리는 선물이다. 오오, 성장이여, 너의 이름은 달콤함이로구나! 나는 오직 너만을 갈구한다. 좋다. 다음으로 발을 내디딜 위치는 정해졌다. 하지만 두렵다. 만일 지금의 선택이 틀린거라면 어떡할까? 아니다. 그럼에도 용기를 내어 앞으로 나아가자. 나아가자! 앞으로 나아가자! 멈춰선 자에게는 오직 타락뿐이다. 나아가지 않는 자에게는 미래가 없다. 성장이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다행이다. 이번에는 나의 용기가 두려움을 이겼구나.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두렵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미래가 두렵다. 그래서 나는 신이 존재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내가 앞으로 나아가는데 용기를 잃지 않도록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시련만을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나의 앞길을 보살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내가 가는 길이 옳은 길이라면 나를 성장 시켜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타락시켜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그래서 내가 자신의 잘못을 깨달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부디 당신의 어린양을 저버리지 말아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언제나 올바른 길로 인도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올바른 길을 알아볼 수 있는 눈과 지혜를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그리고…


피곤했던 탓인지 고향으로 내려가는 버스에 몸을 실자마자 잠에 빠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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