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

3.

by 최신글

귓가에 맴도는 모깃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눈앞에 얼굴 없는 여자가 내 목을 조르고 있었다.


아아악, 사람 살려! 누가 나를 죽이려 한다! 운전하는 기사님, 나 좀 살려주세요! 앞좌석에 앉은 아주머니, 나를 좀 봐주세요! 무섭다. 두렵다. 공포가 군대처럼 밀려온다. 오한이 들고 온몸이 떨려온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큰일이다. 아무리 소리를 질러봐도 입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는구나. 얼굴 없는 여자가 내 목을 조르기 때문일까? 괴롭다. 고통스럽다. 여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싶다. 하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아아, 내가 왜 이럴까? 정신이 몽롱하다. 버스에 타기 전에 마셨던 커피가 문제였을까? 누군가 나에게 약물을 주입했던 걸까? 사람 살려! 사람 살려! 누가 저 좀 살려주세요!

너는 죽어야 한다.


여자의 입에서 모깃소리만 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깊은 슬픔과 혐오가 느껴졌다.


내, 내가 왜 죽어야 합니까? 당신은 대체 누구시길래 제 목을 조르시는 겁니까? 제가 당신에게 무슨 잘못을 저질렀습니까? 나는 오랜 시간 동안 혼자 지냈습니다. 제 기억에 당신 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당신은 저를 압니까? 저는 당신을 알지 못합니다. 혹시 사람을 잘 못 본 것은 아닙니까? 당신은 대체 나에게 왜 이러십니까? 저는 지금 우리 어머니의 장례식에 가는 길입니다. 우리 어머니를 봐서라도 제발 저를 살려주십시오. 제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는 모르겠지만, 용서를 구합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너는 죽어야 한다.

당신은 그 말 밖에 할 줄 모릅니까? 다른 말은 잊어버렸습니까? 당신이 주장하는 바는 잘 알겠으니 이제 그에 합당한 이유를 설명해주십시오. 제가 왜 죽어야 합니까? 아, 그렇구나. 당신은 정신적인 문제를 앓고 있군요. 당신이 있어야 할 장소는 이곳이 아닙니다. 당신은 정신병원에 있어야 합니다. 그곳만이 당신의 마음에 평안을 줄 것입니다. 나에게 평화를 되돌려 줄 것입니다. 누가 저 좀 도와주십시오! 이분을 병원으로 모셔야 합니다! 큰일이다. 점점 의식이 없어진다. 눈앞에 죽음이 어른거린다. 아아, 결국 나의 목숨은 끊어졌다. 나는 죽어버렸다. 이제 나의 영혼은 천국으로 가는 것일까? 아니면 지옥으로 가는 걸까? 과연 그런 곳이 있기는 한 걸까? 모르겠다. 어쩌면 그녀는 천사일지도 모르겠다. 미궁 속에서 괴로워하는 나를 위해 신이 보내주신 죽음의 천사 말이다. 평안을 주소서. 끝없는 창작의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안식을 주소서. 옳도다. 죽음은 미궁 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또 다른 출구다. 휴식이다. 아득바득 힘겹게 살아온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안녕이다. 준비하라, 구도자들이여! 죽음은 이처럼 예고도 없이 찾아온다. 그동안 나는 죽음을 예비하며 살아왔던가? 후회 없이 살아왔던가? 언제 죽어도 후회가 없도록 자신의 인생을 온전히 살아왔던가? 그렇노라. 고, 나는 감히 말한다. 나는 언제든지 자신의 죽음을 감사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었다. 나의 인생이 경제적으로 궁핍했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다. 아니다. 어쩌면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가난했기 때문에 죽음이 달콤하게 느껴지는 걸지도 모르겠다. 정말일까? 나도 모르겠다. 이 세상에 내가 아는 게 있기는 한 걸까? 아니다. 이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다 안다 한들, 그게 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 세상의 모든 재물을 다 가지고 있다 한들, 그게 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오, 솔로몬이여, 구도의 선구자여! 그대는 옳았노라. 덧없는 인생이여! 이제 나는 너에게 작별을 고하노라. 드디어 나는 짧은 생존을 마치고, 영원한 휴식으로 들어가노라. 너 죽음이여, 어서 나에게 오너라! 나는 너를 열렬히 환영한다. 인간은 언제 죽어야 하는 걸까? 어떻게 죽어야 하는 걸까? 죽음이란 이런 걸까? 어떠한 후회도, 아쉬움도 없다. 나를 괴롭히는 예술도 없다. 그래서 죽음에 감사하다. 드디어 쉴 수 있겠구나. 끝없는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겠구나. 나에게 죽음을 준 신이여, 당신을 찬양합니다! 나에게 죽음을 준 악마여, 당신을 사랑합니다! 고독과 적막이여, 이제 너희에게 작별의 인사를 고하노라! 나는 마침내 완전한 자유를 손에 넣었도다. 아아, 자유라! 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이름이란 말인가. 나는 자유를 사랑한다. 그래서 예술가가 되었다. 하지만 예술가가 되어도 자유를 얻지는 못했다. 예술가의 육체는 늘 어딘가에 매여있다. 주린 배를 채워줄 음식에 매여있고, 따듯한 옷과 비바람을 막아줄 집에 매여있다. 놀라지 마시라. 예술가의 정신도 늘 어딘가에 매여있다. 생존을 위해 아득바득 몸부림치는 육체에 매여있다. 나는 예술가가 되면 신선이 되는 줄 알았다. 신선처럼 자유로운 삶을 살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예술가에게 자유란 신선놀음에 불과하다. 신선놀음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돈만 있으면 할 수 있다. 돈만 있으면 자유를 살 수 있다. 시간을 살 수 있다. 아아, 돈이여! 너는 이상을 현실로 만드는 마법사로구나. 오해하지 마시라. 나는 예술가로서의 삶을 후회하지 않는다.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을 꼽으라면 예술가의 삶을 선택한 것이다. 오해하지 마시라. 예술가의 삶이 다른 인생보다 더 훌륭하다는 말이 아니다. 나는 나를 고찰했었다. 그리고 예술가의 길을 가야 한다고 확신했었다. 예술가는 내가 살아야 했던 인생이었다. 팔자였다. 운명이었다. 미궁이었다. 경제적인 성공의 여부를 떠나, 나는 예술을 통해 인간으로서 성장할 수 있었다. 나라는 복잡한 인간을 더욱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그렇게 한평생 한 명의 인간으로서 자신의 인생을 온전히 마주하며 살아왔다. 눈앞의 이득을 위해 자신과 세상을 속이는 짓은 하지 않았다. 하늘 아래 떳떳하게 살려고 노력했다. 수많은 시련과 선택 앞에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부끄러움 없는 인생을 살려고 노력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언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두렵지가 않다. 후회가 없다. 아아, 그렇구나. 오늘 받은 문자는 어머니가 아니라 나의 장례식을 알리는 문자였구나. 인생이란 기묘하구나. 마치 장난을 좋아하는 어린아이와 같다.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나는 지금 죽음을 맞이한다. 더 이상의 고뇌와 고통은 남아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살아있는 자들이여, 고민하고 고뇌하라! 내가 그러했듯, 너희도 먼저 떠나는 자의 짐을 이어받는구나. 하지만 걱정하지 마시라. 인생은 짧고 휴식은 길다. 삶의 고뇌가 강한 만큼, 너희의 죽음 또한 달콤하리라. 아니다. 그만하자. 선구자의 훈장질은 이미 충분하지 않았던가? 내가 그러했듯, 너희 각자의 인생이 너희의 참 스승이 되어주리라. 이제 됐다. 더는 나의 안식을 방해하지 말아라. 너희가 각자의 길을 가야 하듯, 나 또한 나의 길을 가야만 한다. 어서 오너라 죽음이여! 구도자는 따스한 미소로 너를 반기노라. 기쁨으로 너의 뺨에 입을 맞추노라. 사랑의 눈물로 너를 포옹하노라. 내가 너무 말이 많았던 걸까? 목이 마르는구나. 아아, 대체 죽음은 언제쯤 오는 걸까? 죽음이 정말로 오기는 하는 것일까? 모르겠다. 정말로 모르겠다.

너는 죽어야 한다.

아아, 그렇구나! 나는 잠에 빠져 있었던 거구나. 이건 현실이 아니다. 꿈이다. 이제야 모든 게 이해가 된다. 하하하. 헛웃음이 나온다. 그것도 모르고 지금껏 북 치고 장구 치고 혼자 쇼를 다 했구나. 하지만 정말 꿈일까? 꿈치고는 너무나도 생생하다. 내 목을 조여오는 여자의 손길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숨쉬기가 힘들다. 당장에라도 죽을 것만 같다. 내 몸에서 움직일 수 있는 부위라곤 눈동자뿐이다. 아니다. 그것도 아니다. 눈꺼풀은 얼어붙은 듯 감기지 않고, 눈동자는 새의 눈알처럼 움직이지 못한다. 최소한 그녀의 얼굴이라도 외면하고 싶건만 불쌍한 나의 눈동자는 그러지도 못한다. 칠흑 같은 여인의 얼굴이 무섭다. 저 안에 무엇이 있을지 너무나 두렵다. 저곳에 한 번 빠지면 다시는 나오지 못할 것만 같다.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새끼 사슴처럼 살기 위해 발버둥 칠수록 더욱 깊숙이 빠져들 것만 같다. 아아, 대체 이 감정은 무엇이란 말이냐? 그녀의 손끝에서 전해오는 증오가 나를 얼어붙게 만든다.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저주가 내 가슴에 비수를 꽂는다. 내가 대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길래 이처럼 커다란 부정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걸까? 슬프다. 억울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린다. 내가 잘못했습니다. 내가 다 잘못했습니다. 제발 당신의 그 한 맺힌 마음이 풀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전히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육신은 움직이지 못하지만, 느껴진다. 눈동자에서 샘솟는 눈물이 뺨을 타고 내려와 턱 끝에서 사라진다. 슬픔이,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든다. 그래서일까? 내 목을 조르는 여인의 손길이 밉지가 않다. 그녀를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현실이 괴롭다. 당신은 왜 그토록 나를 증오하시나요? 왜 그토록 슬퍼하시나요? 부디 나를 괴롭히지 말아 주세요. 부디……

너는 죽어야……

콰과―광!


갑작스러운 천둥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창문 밖으로 굵은 빗방울이 쏟아져 내렸다.

문득 어디선가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모기는 천둥이 치면 죽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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