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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숲 Jan 16. 2018

입사 전 월급을 물어봤다고 불쾌해하신 사장님께

저는 이런 회사에서 일할 수 없습니다.

  며칠 전 한 출판사에서 면접에 합격했으니 22일부터 출근하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예상치 못한 합격 통보에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원래 합격 통보를 해주기로 한 날은 지난주였고, 지난주에 연락을 받지 못했던 터라 이미 이 회사와의 인연은 체념한 상태였기 때문이었죠. 당황한 이유는 또 있었습니다. '경력 3년 이상' 이라는 자격 조건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한 군데라도 원서를 더 넣는 것이 낫겠지' 하는 심정으로 지원했던 회사인데 최종 합격까지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갑작스럽게 합격 전화를 받고 제가 느꼈던 감정은 지난해 2월 처음 인턴으로 일했던 회사에서 합격 전화를 받았을 때 느꼈던 것과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그 때에도 하루만에 면접 기회를 얻고, 면접을 본 지 3시간만에 '갑작스러운' 합격 통보를 받았었죠. 비슷한 상황, 비슷한 감정. 이번에도 저번 인턴십 때처럼 부당한 일을 겪지 않을 것이리라는 보장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전 <인턴백서>를 출판하면서 더 이상 같은 종류의 부당함은 견디며 살지 않겠다고 다짐한걸요. 그래서 용기있게 물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 전에
저의 근로 조건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근로조건'이라고 근사하게 포장했습니다만 솔직히 제가 이 질문을 통해 진짜 알고 싶었던 것은 '그래서 제 월급은 얼마죠?' 였습니다. (<인턴백서>에 "근로자가 자신의 급여에 대해 묻는 것은 사회적 인식과 달리 전혀 속물적인 것이 아니며 자연스러운 일이다" 라고 썼었지만 아직까지 저도 '돈'에 대해 솔직히 묻는 것이 어렵습니다. <인턴백서>의 작가로서 더욱 분발해야겠습니다.) 전화를 받으시는 분은 적잖이 당황한 듯 보였습니다. 요즘같은 불경기에 돈 벌 수 있게 해줬으면 "아이고, 감사합니다!"를 백 번 외쳐도 모자른데 신삥이 겁도 없이 근로 조건 운운하니 "얘 뭐야?" 하는 심정이었을까요? 뭐, 어떤 심경이었건 상관없습니다. 근로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한 결과로 받게 될 정당한 댓가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 감정이 개입될 문제가 아니니까요. 그 분이 근로조건을 묻는 저에게서 어떤 불쾌한 감정을 느끼셨다면 '근로조건을 감정과 결부짓는' 그 분에게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요?


  어찌 됐든 저의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이 회사는 첫 출근 당일에 대표님과 직접 근로 조건을 조율한다고 하더군요. 제가 궁금해하는 것은 출근을 하면 자연히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끝내 저의 질문에 대한 답은 듣지 못하고 통화를 마쳤습니다. 청년 실업률이 거의 두 자리 수에 육박하는 요즘같은 시대에 직장을 구했다는 기쁨보다는 찜찜함이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근로조건은 당연히 알려줘야 하는 건데,
왜 근로조건을 말해주지 않는 걸까?


  전화 통화를 끝낸 후부터 이번 주말까지 내내 이 의문이 머릿속을 어지럽혔습니다. 출근 당일에 근로 조건을 알려주겠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인지, 저의 의문이 사회 생활을 많이 경험해보지 못한 미숙함에서 비롯된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오랫 동안 직장 생활을 하신 분들께 저의 상황에 대해 설명을 드린 후 조언을 구했습니다. 대부분의 분들이 출근 전에 offer letter의 형식으로 근로 조건에 대해서 회사가 메일 등으로 통지해주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반드시 입사 전에 회사 측에 요청하여 근로 조건을 상세히 알아보고나서 입사 여부를 결정하라고도 조언해주셨습니다. 조언에 따라 저는 회사 메일 계정으로 아래와 같은 메일을 보냈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케팅 포지션 입사 제의를 받은 최수빈입니다.
보통 회사들은 면접 전형 합격 이후에 이메일로 offer letter 를 보내준다고 들었습니다.
저 역시 본격적인 출근에 앞서 offer letter와 비슷한 형식으로 근로 조건에 대해 공지받기를 원합니다.
저의 직위, 처우(기본급, 교통비, 식비, 성과급 등), 그 밖의 복지제도 등에 대하여 이메일로 통보해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최숲 드림.


  저의 말이 너무 버릇없게 보이시나요? 나중에 답신에서 저의 메일이 속된 말로 버릇없어보인다고 지적 받았는데, 근로 조건을 회사에 요청할 때 어떻게 최대한 '정중하게' 메일을 보내야 하는지 아시는 분은 좀 알려주세요. 당연히 알려줘야 할 근로 조건을 이렇게 굳이 요청까지 해가면서 알아야 하는 것도 어이가 없는데, 근로 조건을 물을 때 최대한 공손하게 묻는 것까지 고려해야 한다니... 참, 세상에는 고려해야 할게 너무나 많네요. 아무튼 저는 고민 끝에 이렇게 회사에 근로 조건에 대해서 알려주기를 요청하는 메일을 보냈답니다. 메일을 보낸 뒤 하루도 안 지나서 회사의 대표님께 직접 답장을 받았습니다. 아주 장문의 메일을 말이죠. 메일의 요지는 입사 전에 근로 조건을 '예의 없이' 물어온 제가 불편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저 같은 신입이 들어오면 부담스럽지 않겠냐면서요.  


  연봉이나 복리 후생을 들어본 다음에 회사에 들어오겠다는 사람은 원하지 않는다고 하고, 저를 부담스러운 신입으로 생각하는 직장에서는 일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입사를 취소하겠다는 각오로 저 역시 장문의 답신 한 통을 보냈습니다.

 

안녕하세요, 최숲입니다.

입사에 대한 저의 의사를 밝히기에 앞서 먼저 오해를 풀고 싶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제 시간에 합격 통보를 하지 않고 왜 뒤늦게 해주냐고 불쾌해했다" 고 하셨는데, 그 말은 전혀 사실이 아님을 밝히는 바입니다. 이미 예정된 발표일이 지나 이 회사는 떨어졌다고 생각하고 다른 길을 모색하고 있었을 때 갑자기 합격 통보 연락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상치 못했던 결과라 저는 몹시 당황한 상태였고 "원래 지난 주에 통보해 주시기로 했던 것 아니었나요?" 라고 통보해주시는 분께 되물었습니다. 그게 끝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끝으로 늦은 합격 통보에 대한 어떤 불평도, 언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감정이란 주관적인 것이기에 저와 통화하신 분이 제 말투나 어조 등에서 늦은 합격 통보에 대한 불쾌함을 느끼셨다면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만, 저의 본 의도는 불쾌함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다음으로는 제가 메일로 offer letter를 요청드린 것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한 번의 인턴 생활에서 근로계약서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성급하게 사인하는 바람에 호되게 당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런 경험을 되풀이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출근 이전에 신중히 근로계약서를 검토한 후 회사에 입사를 결정하고 싶었습니다. 출근 당일에 계약과 관련하여 상의한 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음 날부터 나오지 않으면 된다, 라고 말씀하셨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그런 상황이 매우 껄끄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그런 상황을 막고자 offer letter를 요청드린 것입니다. 다른 회사와 비교해서 불쾌하셨다고 했는데 offer letter를 요청한 저의 본 의도는 출근 이전에 계약 조건을 확인하기 위한 것일뿐 타 사와 비교하기 위함이 아님을 밝힙니다. 어쨌든 저의 의도와 상관없이 타 사와 비교당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셨다면 사과 드립니다.

하지만 대표님, 근로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어떤 댓가를 받게 될지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출근 당일날 계약 조건에 대해 협의하는 것이 회사의 관행이라고 해도 그 이전에 근로자가 자신의 근로 조건에 대해 묻는다면 대답을 해줘야 하는 것이 노동력을 제공받는 사용자의 의무가 아닐까요? 물론 대표님께서는 저의 질문에 친절히 답해주셨습니다만, 회사의 관행을 무시하고 사전에 근로 조건을 물어오는 제게 감정이 상하신 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결정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대표님의 재량으로 분에 넘치는 자리를 제안받았습니다만 정중히 거절하는 바입니다. 저를 부담스럽게 느끼는 곳에서는 저의 역량을 제대로 펼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대표님이 장문의 메일로 보내주신 조언들은 가슴 속에 새기며 더 나은 사람이 되는데 잘 활용하도록 하겠습니다. 늦게나마 저에게 귀한 시간 내어 주시고, 면접 기회와 일할 기회를 제공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최숲 드림.


  굳이 개인적인 메일까지 공개해가며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인턴백서>를 제작하며 했던 저와의 다짐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기 위함입니다. <인턴백서>를 만들며 저는 제 자신을 항상 소중히 대하며 해야 할 말은 당당히 하면서 살겠다고 다짐한 바 있습니다. 비록 저는 이 직장 말고 다른 갈 곳이 정해져 있지 않은 취업 준비생 신분입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제 자신을 아무 직장에나 밀어넣지는 않을 것입니다. 또한 근로자가 자신의 근로 조건에 대해 묻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근로 조건에 대해 묻는 것을 불편해하는 직장에서는 더더욱 일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저는 이 회사에서의 입사를 거절하고자 합니다.

  

  제가 지원했던 회사는 나름 혁신적이라고 평가받는 스타트업이었습니다. 이런 곳에서까지 근로 조건을 물어오는 신입을 불편해하고, 부담스러워 하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에는 아마 제가 꿈꾸는 일할 만한 곳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와의 다짐을 지키려다가 정작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 못하는 것은 아닌지 솔직히 두렵기도 합니다. 하지만 일단은 저의 신념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것을 시도해보려고요. 그러다가 정말 일할 만한 곳이 우리 사회에 없어 보인다면... 회사를 하나 차리죠, 뭐 ! 하하...


작가의 말 : 기업에서 실제로 인턴들을 관리하고 계시는 실무자 분, HR 담당자 분 등 기업의 관점에서, 혹은 본인의 관점에서 '인턴제도'에 대해 말씀을 나눠주실 분을 찾습니다. 갖고 계신 생각을 공유해주시는 것만으로도 세상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인턴제도에 대한 의견을 공유해주실 분은 subinne@naver.com 으로 연락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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