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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숲 Feb 05. 2018

'인턴백서'를 만들게 된 이유

나의 이야기, 당신의 이야기,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

  다른 인턴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기에 앞서 저의 이야기를 먼저 해볼까 합니다. 2017년 2월, 저는 한 컨설팅 회사에서 첫 인턴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어렵게 얻은 인턴 자리였습니다. 열 곳 넘는 회사에 인턴 지원서를 냈지만 그 중 아무 곳에서도 합격 통보를 듣지 못했습니다. 다른 곳에 지원할 의욕도, 의지도 모두 사라졌을 무렵 극적으로 한 선배의 중개를 통해 컨설팅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선배는 인턴을 바로 업무에 투입하고 싶어 하는 회사의 니즈와, 인턴십을 하고 싶어도 마땅한 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학생들의 니즈를 모두 반영하여 ‘인턴 매칭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을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이 스타트업의 유일한 수익 구조는 서비스를 제공받은 인턴들의 월급에서 소정의 중개 수수료를 떼는 것이었습니다. 한 컨설팅 회사와의 매칭에 성공한 제가 몇 개월간은 이 회사의 수입원이 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선배는 수수료를 뗀다는 것만 말할 뿐 정확한 수수료 액수는 알려주려 하지 않았고, 일하게 된 회사가 아닌 선배의 회사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도록 했습니다. 


  근로계약서는 정말 간단해서 제가 일을 시작하기 전에 알 수 있었던 근로조건은 근무 기간이 3개월이라는 것과 월급이 세후 백 만 원이라는 것뿐이었습니다. 명백히 최저시급에 미달되는 액수였지만 당시에는 최저 시급으로 월급을 계산하면 정확히 얼마인지 잘 몰랐기 때문에 월급으로 백 만 원이면 적지 않은 금액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인턴십 이전에 한 달에 백만 원 이상을 벌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백만 원은 굉장히 큰 금액처럼 느껴졌습니다. 또한 능력 있는 후배들이 인턴 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까워서 사업을 시작했다는 선배의 말을 그대로 믿었기 때문에 선배가 회사와 협상해서 최대한 챙겨준 월급이 백 만 원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머지않아 한 사건을 계기로 이런 저의 생각이 세상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일한지 한 달이 되어가는 때에 우연히 회사에서 인턴들의 월급 명세서를 보게 되었습니다. 회사는 인턴들에게 최저 시급에 준하는 135만 원을 월급으로 지급하고 있었고, 선배는 이 돈을 먼저 수령한 후에 30만 원 정도의 수수료를 떼고서 인턴들의 월급이 100만 원이라고 말했던 것이었습니다. 중개 서비스를 제공받은 것은 사실이니 어느 정도의 수수료는 지불해야 된다고 생각은 했지만 계약이 만료될 때까지 매달 30만 원의 수수료를 떼는 것은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계약 기간에 따라 수수료를 떼는 방식도 불공정해보였습니다. 제가 인턴으로 일했던 곳에서는 저와 같은 방식으로 입사한 인턴들이 4명이나 더 있었는데 모두 같은 중개 서비스를 제공받았지만 계약기간이 달라 내야 하는 수수료 금액은 천차만별이었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계약 기간이 3개월이었기 때문에 90만 원 정도의 수수료를 지불해야 했지만, 5개월을 계약한 인턴은 150만 원의 수수료를 내야 했던 것입니다.


선배, 당신을 통해 세상을 배웠어요. 아무리 친한 사람일지라도 쉽게 믿어버리면 안된다는 사실을요.  


  선배에게 수수료 액수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30만 원에 달하는 수수료를 책정한 기준이 무엇인지 밝혀달라고 요구했지만 선배는 업무상 비밀이라 공개할 수가 없는 사안이라고만 했습니다. 수수료 액수나 구조에 대해서 공개는 불가능하지만 합리적으로 수수료를 책정하였기 때문에 수수료를 변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도 했습니다. 인턴들의 월급에서 떼는 중개 수수료가 선배가 하는 사업의 주 수입원이었기 때문에 단지 수수료가 너무 많으니 줄여달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수수료 구조를 개선하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인턴들과 함께 근로기준법, 노무사와의 상담, 고용노동청 전화문의 등을 통해 현재의 수수료 구조가 불공정하다는 확실한 법적 증거를 수집했고 그 증거를 바탕으로 선배에게 수수료 구조를 개선해 줄 것을 다시 한 번 요구했습니다. 그 결과 다행스럽게도 월급을 고스란히 제 몫으로 받을 수 있었습니다. 


  월급은 제대로 받을 수 있게 되었지만 최저임금법으로 보장된 최저 시급 이상을 받을 수 있는 저의 권리가 누군가에게 침해될 뻔 했다는 사실은 여전히 억울했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억울한 일이 없도록 저에게 법적으로 어떤 권리가 주어졌는지, 누군가가 저의 권리를 침해하려고 하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공부하는 틈틈이 인턴 생활을 하고 있거나, 인턴십을 앞둔 친구들에게 새롭게 알게 된 인턴들의 권리에 대해서 알려주었습니다. 그러자 더 많은 친구들이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으며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언을 구해왔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며 인턴들이 정말 열악한 노동 환경 속에 내몰리고 있다는 사실, 이들이 앞으로 인생의 절반 이상을 노동자로 살게 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인턴들의 이야기에 제가 공부한 내용을 덧붙여 세상에 알리는 방식으로 저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인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이것이 인턴백서를 만들게 된 계기입니다. 


  인턴백서를 만들기 위해 많은 인턴 분들을 만나 인턴 생활 중 발생할 수 있는 부당한 일에 대해 인터뷰를 했습니다. 어떤 분들의 이야기는 제가 겪은 일과 비슷해서 저의 이야기처럼 느껴졌고, 제가 겪어보지 못한 부당함을 경험해보신 분들의 이야기는 앞으로 취업이 되기까지 인턴십을 더 경험한다면 제가 겪게 될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저의 이야기 같았습니다. 결국 모든 인턴 분들의 이야기는 각자의 이야기가 아닌 저의 이야기, 더 나아가 우리의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더 이상 각자의 이야기가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나 우리의 이야기가 되지 않고 각자의 것으로 머물렀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다가 점점 인턴 생활 중 겪었던 부당한 일에 관한 각자의 이야기마저 사라져버렸으면 좋겠습니다. 


<인턴백서>에 실린 인턴들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이자, 당신의 이야기이고, 더 나아가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그러려면 먼저 인턴들의 세상에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알고 있어야 합니다. 기존 이야기의 결말을 미리 알고 있으면 그 결말을 각색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턴백서에는 열 명의 인턴들이 직접 겪은 부당한 일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이 이야기들이 ‘나’의 이야기가 되지 않도록 각색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인턴 생활을 하다가 부당한 일에 맞닥뜨렸을 때 그 일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시면 됩니다. 인턴백서 속의 이야기들 대부분이 ‘부당한 일을 당했지만 참았다’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인턴들의 이야기를 소개한 뒤에 그 이야기를 변주할 수 있는 간단한 노동법 지식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그 내용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시어 이 책 속의 이야기가 다른 인턴 분들의 이야기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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