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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숲 Feb 07. 2018

학교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병원, 학교 실험실 인턴의 이야기

앞으로 진행될 이야기는 한 병원과 학교 실험실에서 인턴 생턴 생활을 했던 인턴 H 와의 인터뷰 내용에 기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제가 수의대 학생이라 주로 인턴 생활을 하는 곳은 병원이나 학교 실험실입니다. 지난 학기에는 교내 실험실에서 학생 인턴으로 일했었고, 이번 학기 들어서는 매일 병원으로 인턴 실습을 나가고 있습니다.      



난 병원 실습생인가 알바생인가     


  병원 실습은 수의대 학사 과정의 일부입니다. 따라서 병원 실습은 수업의 일종입니다만, 교육을 받기보다는 병원의 잡무를 돕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물론, 교육이 아예 제공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진료가 없는 날에는 이론 실습 교육이 진행되기도 합니다. 문제는 교육 시간이 전체 실습 시간에서 매우 적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시간표상으로는 주 5회 4시간 정도 병원 실습을 하지만 실제로는 항상 저녁 늦게까지 일을 하기 때문에 거의 하루의 반 이상을 병원에서 보냅니다. 그러나 이번학기에 제가 받았던 교육 시간은 5시간도 되지 않습니다. 


  시간 외 실습도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수술이 늦게 끝나거나 밤새 환자를 돌봐야 하는 경우에 실습 시간이 끝났다 하더라도 자리를 비워서는 절대 안 됩니다. 자리를 떠났을 때에 교수님이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하시기 때문에 한 사람이라도 자리를 뜨면 나머지 사람의 입장이 곤란해지고, 또 한 사람당 해야 하는 잡무도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학생들은 늦은 시간까지 누구도 자리를 뜨지 않습니다. 이러한 조치에 대하여 실습 학생들 모두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실습 시간을 준수하도록 요구하는 별다른 움직임은 없습니다.


  실습 직후에 추가적으로 일을 하는 것 이외에 아주 늦은 시간(새벽 1시 이후)에 학생을 병원으로 다시 부르는 경우도 자주 있습니다. 저는 아직 이런 경우는 겪어보지 못했는데, 경험한 친구의 말에 따르면 동물 환자에게 투약하는 것을 보러 오라고 새벽 1시에 불러냈다고 합니다. 교수님은 아무리 늦은 시간이여도 투약하는 것을 참관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큰 의미가 있기 때문에 불편함을 감수하라고 말씀하시지만, 너무 늦은 시간이여서 병원까지 가는데 마땅한 교통편도 없고 병원이 아주 외진 곳에 있어서 안전의 위험도 있습니다. 교수님의 의도를 학생들이 이해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실제로 아주 늦은 시간에 위험을 감수하면서 병원으로 간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저 투약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라 그 시간을 통해 무엇인가를 배우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병원 실습 과정에서 노동력을 제공한 것에 대해서는 대가를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실습 시간 외 추가 근무를 해야 할 때에도 5천원 상당의 식권 한 장만 받았을 뿐, 초과 근로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교수님이나 병원 관계자들도 병원 실습 과정에서 교육보다는 잡일을 학생들이 많이 한다는 것을 명백히 알고 있지만, 그마저도 교육의 일환이라고만 생각할 뿐 학생들이 병원에서 하는 행위가 ‘노동’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이 병원에서 하는 일들은 학생들이 하지 않았더라면 사람을 고용해서 돈을 주고 처리했어야 하는 것들입니다. 예를 들어, 동물 병원 특성 상 병원에 오물이 많은 편인데 동물들의 배설물을 치우는 것은 주로 병원에 실습중인 학생들이 합니다. 만약 학생들이 하지 않았더라면 청소 업체를 고용해서 했어야 할 일입니다. 오물 청소 이외에도 방사선사나 임상병리사를 고용해서 해야 할 일을 실습 나온 학생들에게 자주 맡겼습니다. 돈을 받고 고용되는 사람들이 하는 일을 학생들이 대신해서 하였다면 학생들에게도 수고비 명목으로 일정 금액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수님이 왕이다     


  병원 실습을 하면서 ‘어? 이건 아닌데?’ 싶은 일들을 처음 겪었을 때에는 선배들에게 상담했습니다. 선배들은 실험실이나 병원 실습을 어떻게 여기고 있는 지가 궁금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은 주로 참으라는 내용이 골자였습니다. 졸업 논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교수님의 싸인이 있어야 하는데, 병원에서 일어난 부당한 일에 대해 항의를 하게 되면 교수님에게 밉보여서 졸업을 못 할 수도 있다고 겁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업계는 굉장히 좁은 곳이기 때문에 지금 부당함에 대해서 공론화해버리면 나중에 사회 생활할 때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선배들의 말이 아예 틀린 말은 아닙니다. 실제로 이쪽 업계는 좁습니다. 일개 학부생인 저도 우리 학교 학생들을 상당히 많이 알고 있고, 튀는 행동을 하는 학생들은 소문도 많이 나는 편입니다. 또한 교수들이 이 업계의 원로 인사이기 때문에 밉보여서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는 선배들의 말도 사실입니다. 일을 구할 때에도 이 사람이 학부생 시절 어떤 학생이었는지, 성격은 어떤지 조사할 수 있을 만큼 좁고 얕은 곳이라 교수님이 학생에 대한 평판을 나쁘게 말해버리면 그 학생은 실제로 일을 구하기 힘들 것입니다. 그런 말을 듣다보니 저 역시 제가 겪은 부당함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점차 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그렇고 동기들도 부당한 일에 크게 반발하는 편이었지만 차츰 다들 지쳐가는 모습이 눈에 보입니다. 지금은 그냥 ‘언젠가는 병원 실습도, 이 학교에서의 생활도 끝나겠지’ 하는 심정으로 버티고 있는 중입니다.      




학교는 학생을 위하는 곳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학교 실험실에서도 부당한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가장 대표적인 문제는 실험실에서 인턴으로 일하는 학생들에게 수당을 지급하지 않거나, 지급하더라도 최저 시급 기준에 미달하는 금액을 지급한다는 것입니다. 저의 경우에는 학기 중에는 한 달 30만원, 방학 중에는 50만 원을 받고 실험실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한 번은 저의 시급을 계산해본 적이 있습니다. 방학 중에 실험실에서 일하면 보통 9-6시까지, 때로는 그보다 더 늦은 시간까지 일하는데 인건비로 50만원을 받으니까 사실상 시급 계산이 무의미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 마저도 받지 못하며 실험실에서 일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학교 내에 있는 실험실 중에 최저 시급에 준하는 임금을 제공하는 실험실은 사실상 한 곳도 없으며, 무급으로 일하는 학생들도 꽤 많이 있습니다. 무급으로 일하는 학생들이 있는 것은 연구비 중 학생 인건비로 제공된 금액을 챙기는 교수님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실험실에서 진행되는 연구는 주로 산학 협력 연구로, 학생 인건비는 연구 의뢰 업체와 학교의 산학 협력단에서 지원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인건비를 챙기는 교수님이 있다는 사실은 학교 내의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저는 소정의 금액이라도 돈을 받고 일을 하기 때문에 월급에 대해서 친구들이나 교수님에게 불만을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50만원이라는 금액은 현실적으로 생활하기 어려운 금액입니다. 제가 일했던 실험실에서는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방학 중에 학교에 남아서 실험실 일을 돕기를 요구했습니다. 방학 중에 학교에 남기 위해서는 기숙사 거주 기간을 추가로 설정해야 하는데, 방학 중에 인건비를 받는다 하더라도 기숙사 거주 비용과 식대 정도를 소비하고 나면 사실 손에 쥐는 돈은 거의 없습니다. 


  “실험실 일을 아르바이트처럼 여기지 말라”, “가르쳐 주는 데에도 비용이 든다” 라는 교수님의 말을 들으면 인건비에 대한 불만을 말하기가 참 힘듭니다. 그리고 저희 학교 내에서는 교수님의 지위가 절대적이기 때문에 그런 말을 듣지 않았더라도 인건비나 실험실 근무 조건 개선에 대한 요구를 하기가 어렵습니다. 최근까지 우리 학교에서는 졸업 논문제를 실시했는데, 졸업 논문이 통과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교수님의 서명이 있어야 합니다. 만약 근무 조건을 개선해달라는 학생의 요구를 교수님이 언짢게 듣는다면 서명을 해주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생이 졸업 때까지 부당한 일이 있어도 참고 견딥니다. 이번에 졸업 시험제로 바뀌어서 약간의 개선이 이루어지기는 하겠습니다만, 여전히 많은 교수님들은 실험실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실험실에서 일어나는 부당한 일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교수님들이 잦은 시험과 점수로 학생들을 압박하기 때문입니다. 성적이 너무 낮으면 유급을 당하기 때문에 성적이 낮은 학생들은 매우 소극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교수님들은 F의 비율을 50% 이내에서 자의적으로 조정해가면서 학생들이 본인의 말을 잘 듣도록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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