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규모 주얼리 회사 인턴의 이야기
예술대 학생들은 보통 3학년 여름방학 때 첫 인턴십을 시작합니다. 그런 분위기를 따라서 저도 3학년 여름방학을 앞두고 여러 회사의 인턴십 프로그램에 지원했습니다. 지원한 회사들 중에서 단 한 곳에서만 연락이 왔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없이 현재 그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중입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곳은 10~20만 원대 패션 주얼리와 수백만 원 상당의 파인 주얼리를 제작해서 판매하는 소규모 주얼리 회사입니다. 총 직원 수가 저를 포함해서 5명밖에 되지 않는 아주 작은 회사이지만 그래도 주얼리 업계 내에서는 꽤 인지도가 있는 회사라고 합니다.
근무 환경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함께 일하는 분들도 친절하시고 일 자체도 너무 힘들지 않고요.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경험하기에는 무난한 회사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곧 그만두려고 합니다. 월급이 너무 적기 때문입니다. 주5일, 8시간을 근무하는데 알바 일당보다도 적은 돈을 받고 일하고 있습니다.
나의 가치는 30만원
제 월급은 30만 원입니다. 이 사실은 지금까지 가족들에게도 비밀로 해왔습니다. 왜 그런지 정확히 설명할 수 없지만 그냥 월급이 30만 원이라고 말하기가 굉장히 창피했던 것 같습니다. 월급이 30만 원이라고 말하는 것은 저의 가치가 그 정도밖에 안 된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자기 딸이 30만 원의 취급을 받는다는 사실을 부모님이 아시면 속상해하실 것도 같아서 월급에 대해서는 아예 함구하게 된 것 같습니다.
‘이번 인턴십에서는 경력 한 줄을 채우는 대신 돈은 포기하자’고 마음을 정리했기 때문에 지금은 월급이 30만 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월급 30만 원을 괜찮은 금액으로 생각했던 것은 아닙니다. 입사 첫 날, 월급이 30만원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맨 처음에는 제가 말을 잘 못 들은 줄 알았습니다. 그동안 아르바이트를 계속 해왔기 때문에 최저 시급이 어느 정도인지, 하루에 8시간 정도를 일했을 때 최소한으로 얼마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대강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저 시급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어도 모든 사람에게 30만 원은 황당한 금액일 것입니다. 월급 액수를 듣고 제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니까 대표님이 ‘우리 회사는 원래 인턴 월급으로 계속 30만 원만 줬다’고 당당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대표님이 하도 당당하게 월급이 30만 원이라고 말씀하시기에 ‘이 업계는 최저 시급 안 맞춰 줘도 되는가보다’ 라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왜 터무니없는 월급 액수를 듣고도 그 회사를 나오지 않았냐고 묻는 분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인턴십이 너무도 절박했기 때문에 그러질 못했습니다. 이번 학기 내내 인턴 지원서를 여러 군데 냈지만 전부 다 떨어졌습니다. 탈락 이유는 대게 다른 인턴 경험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탈락의 고배를 마실수록 어느 회사에서든 일단 인턴 생활을 해서 이력서 경력사항에 넣을 한 줄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해졌습니다. 그러다 지금의 회사에 인턴으로 뽑혔습니다. 인턴십은 돈보다 ‘경험’을 쌓으려고 하는 것이니 만큼 앞으로의 커리어를 위해 이번에만 희생하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확신도 없었습니다. 이 회사보다 더 좋은 회사에 인턴으로 들어갈 수 있으리라는 확신 말입니다. 계속 서류 탈락만 하다보니까 자신감도 극도로 떨어졌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월급이 30만 원이라는 황당한 이야기를 듣고도 ‘지금의 나는 아무런 경험도 없으니까 30만 원 정도의 가치밖에 없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합리화했던 것 같습니다.
인턴 말고 알바생 하고 싶어요
인턴과 알바생은 언어적으로는 구분되어 있지만 직접 인턴 생활을 해본 바로는 둘의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회사에서 주로 하는 일은 매체에 우리 회사의 쥬얼리가 나오면 그 자료를 저장해서 SNS에 올리는 일, 협찬품의 픽업과 반납을 관리하는 일, 쥬얼리를 검품하는 일, 간단한 쥬얼리 A/S, 손님 응대 등입니다. 인턴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단순 반복적인 일이기 때문에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서 시켜도 별 문제가 없는 일들이었습니다. 특히, 제가 아르바이트생과 인턴의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인턴으로서 교육을 제공받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르바이트생과 달리 인턴에게는 교육 프로그램이 제공되어야 한다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전 회사에 다니면서 인턴으로서 어떠한 교육 프로그램도 제공받은 적이 없습니다. 인턴에게 교육을 실시할 수 있는 형편도 안 되면서 왜 인턴을 뽑았을까, 하고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돈을 아끼기 위해서 그랬던 것이 아닐까요? 제가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던 구체적인 경험도 있습니다.
제가 일하는 회사는 주로 백화점에 팝업 스토어를 열어서 제품을 판매합니다. 팝업 스토어를 열 때마다 판매를 담당할 백화점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는데, 최근에 팝업 스토어 오픈 날짜에 일할 아르바이트생을 구하지 못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알바 자리가 펑크 나니까 저한테 백화점에 나가서 판매 업무 지원을 나가라고 했습니다. 말이 좋아서 지원이지, 그냥 백화점 아르바이트생이 하는 일을 제가 대신하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백화점 아르바이트생은 시급으로 7,000원을 받습니다. 저의 월급을 시급으로 계산해보니 1,500원 이었습니다. 아르바이트생의 4분의 1 정도밖에 안 되는 시급을 받으면서 본사 일에다가 알바생이 해야 할 일도 대신하고 있으니 참 착잡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인턴 때려치우고 알바나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반면에 회사는 엄청 좋았을 겁니다. 알바생 대신 인턴을 쓰면서 엄청난 비용 절감을 이뤄냈잖아요?
나중을 위해 참습니다
일하는 매 순간 억울한 마음이 듭니다. ‘내가 정말 30만 원 정도의 가치밖에 없는 인간인가’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어서요. 그렇지만 감히 회사에 항의할 생각이나 고용 노동청에 신고해볼 생각은 전혀 해보지 않았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예술계에서 인맥이 엄청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예술계에는 인맥이 곧 실력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어떤 디자이너와 친한지’와 ‘어떤 디자이너 밑에서 일해 봤는지’가 자기 실력을 입증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이 회사에서 일하면서 주얼리 디자이너 분과 친분을 쌓으면 다른 더 좋은 회사에 취업하기도 쉬워지니까 지금의 억울함이 나중에는 다 보상될 것이라고 믿고 그냥 참고 견디기로 했습니다. 더욱이 저는 지인의 소개를 통해서 이 회사에 입사했기 때문에 열정페이 문제로 회사에 항의를 하게 되면 절 소개해주신 지인 분과도 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인맥 관리를 위해 이번 인턴십에서는 경력 한 줄 이외에 모든 것을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예술계에서 열정페이를 받고 일하는 것이 워낙 만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1년 전 쯤에 이상봉 디자이너가 열정페이로 큰 사회적 파장을 불러 일으켰는데, 동종 업계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들은 ‘이상봉이 운이 없어서 걸렸다’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이 업계가 열정페이를 당연하고, 별 문제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죠. 선배들 중에서도 월급을 제대로 챙겨 받고 일한 사례가 거의 없다보니 예술 계열을 전공한 학생들은 ‘우리 업계는 원래 이렇지’하고 체념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업계에서,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계속 생활하다보니 저도 어느 순간부터 열정페이를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받아들이게 된 것 같습니다.
예술계에서 열정페이가 끊이지 않는 이유
예술계에 유독 악덕 사장님들이 많아서 열정페이를 받고 일하는 학생들이 다른 곳보다 많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예술계에서 열정페이와 관련한 문제들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이유는 예술계의 구조적 한계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흔히들 예술을 하게 되면 돈 벌어먹고 살기 힘들다고 하는데 맞는 말입니다. 실제로 예술계 학생들이 인턴을 경험해볼 수 있는 곳은 회사 규모가 작고 수익이 많지 않아서 인턴들에게 최저 시급에 준하는 월급을 주기 힘든 곳들이 많습니다. 더 많이 줄 수 있으면서도 30만 원만 주는 것이 아니라 정말 30만 원 정도밖에 줄 수 없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열정페이를 주는 회사들도 있다는 거죠. 예술계에서 열정페이 문제를 근절하려면 예술 분야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단순히 열정페이를 지급하는 개인 기업들을 처벌해서는 열정페이를 근절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작가의 말 : 기업에서 실제로 인턴들을 관리하고 계시는 실무자 분, HR 담당자 분 등 기업의 관점에서, 혹은 본인의 관점에서 '인턴제도'에 대해 말씀을 나눠주실 분을 찾습니다. 갖고 계신 생각을 공유해주시는 것만으로도 세상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인턴제도에 대한 의견을 공유해주실 분은 subinne@naver.com 으로 연락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