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렇게 한국에 도착했지만 집에 가지 못했다...
지난 번 글에서 말했듯이 다사다난한 경험을 하고 난 후에서야 나는 한국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영국에서 출발해 경유지에 도착하는 비행기는 거의 만석에 가까웠다. 나를 제외한 동양인은 한명도 보지 못한 상태.
블로그와 유튜브 후기에선 사람들이 다 눕코노미다, 하는데 내가 운이 없는건지 갈때도 올때도 거의 만석이었다.
그.런.데! 정말 운좋게도 경유지에서 한국으로 입국하는 비행기는 널널했다는 것!
'와- 오늘 진짜 운이 좋은데?'라고 생각하며 눕코노미를 즐기며 왔다. 난 그때까지만 해도 운이 좋은 날인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운수 좋은 날>이었던 것.
눕코노미를 즐기니 10시간 비행이 정말 짧게 느껴졌다. 몸이 편하니 당연 그랬던 듯. 그렇게 한국에 도착했다. 포스트 코로나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 바로바로 입국심사를 통과하지 못하고 검역소에서 짧은 건강체크를 해야지만 통과가 가능했다. 여러 대의 비행기가 한꺼번에 들어와서 그런지 거의 게이트 앞까지 줄이 늘어섰다. 그렇게 한 30분을 기다린 후에야 내 차례가 되었다. 그 자리에서 체온을 쟀을 때도 이상이 없었고, 기침도 없고 콧물도 안나고. 하지만 비행기를 탄 후에 재채기가 나기 시작해서 기타 사항에 재채기가 났다고 적었다. 그것이 이 큰 화를 불러올 것이란 걸 그때까진 생각하지 못했지. 난 그대로 방역복을 입은 군인을 따라 따로 마련된 공간으로 들어갔다. 이것저것 건강에 대해 질문을 하더니 '영국에 왜 방문을 한 것인가?' '이 시국에 여행을 다녀온 것인가?'라는 질문이었다.
내가 여행을 계획할 당시만 해도 한국은 해외입국자 자가격리도 없었고, 여행을 권고할 때였다.
"제가 여행을 계획할 때만해도 여행을 권고했었는데 갑자기 자가격리가 생겼어요. 이미 돈 많이 들어셔 비행기표랑 다 준비했는데 취소가 안된다니 갈 수밖에 없었죠."
내 말에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냥 못들은 체 했다. 그리곤 간단한 검진을 한다고 이리저리 보더니, 목은 언제부터 부어있었냐고 물었다. 이미 여행갈 때부터 목이 부어있었다. 불안한 마음에 여행을 가기 2주 전부터 나는 매일같이 선별진료소에 가서 코로나 검사를 했다. 다행이 음성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여행도 가능했었다.
한국에서 출국할 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들이 한국에 입국하려니 다 문제가 되버린 상황이 살짝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그 자리에서 붙잡혀 버렸다. 안전을 위해서 코로나 검사 결과를 하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공항에서 대기해야 한다고 했다. 도착시간 오후 4시. 검사 결과가 나오는 시간은 대략 12시. 꼼짝없이 8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미국 여성. 본인은 그냥 알레르기일 뿐이라며, 이미 미국에서 다 진찰을 받고 들어왔다고 소리를 지르며 여기서 내가 대기를 할 사람처럼 보이냐, 본인은 미군의 가족이라며 난동 아닌 난동을 부렸다. 심상치 않은 그곳의 분위기를 그때 직감했어야 했다.
나와 같이 모여있던 사람들은 검사를 받고 해외 입국자 격리 호텔로 가서 대기를 하라는 기쁜 소식. 그렇게 호텔로 바로 가서 쉴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대기하고 대기하고 또 대기하고. 밤 10시가 되어서야 호텔 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검사 결과가 이제 2시간 후면 나온다는 생각에 기다리고 있었지만, 검사 결과는 자정이 넘어서도 1시가 넘어서도 나오지 않았다. 나를 자가격리 장소로 데려다 줄 가족은 이미 공항에 도착해있는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그렇게 새벽 2시가 다 되어서야 검사 결과가 나왔다. 역시 음성. 그런데 앞서 언급한 난동부린 미국 여성. 코로나 양성이었다. 그렇게 난동을 부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하소연을 했는데 말이다.
그렇게 다시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돌아갔다. 드디어 가족을 만났다.
1월 3일 오전 7시에 기상, 시차가 9시간 빠른 한국에 1월 4일 오후 4시에 도착, 1월 5일 새벽 4시 침대에 누웠다.
나는 그렇게 약 30시간이 걸려 무사히 영국에서 한국으로 귀국했다.
코로나, 너는 나에게 잊지 못할 여행을 선물해줬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