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지금 영국에 살고 있습니다.

영국에 살고 있는 이유

by 아일수

나는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나름 꾸준히 업로드하고 있다. 거기에도 영국에서 살고 있다고 언급은 했지만 정확히 왜 영국에서 살고 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한 번도 이야기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요즘 '왜 영국에 살고 계세요?', '거기서 일하시는 거예요?'라는 메시지를 받곤 한다. 일부러 말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고,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것 같아서 말해야겠다는 생각을 못 했달까. 그래서 늦었지만 설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살고 있는 조용한 영국 시골 마을


질문에 대한 답을 위해서는 연애썰을 풀어야 할 것 같다.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애칭이 없어서 '남편'이라는 단어가 살짝 어색하다. 그러니 이름으로 써야지. 우리는 내가 프라하에서 일하던 당시 만났다. 그의 첫인상을 다시 생각해보자면 딱히 나에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런 것 있지 않은가. 상대방이 나에게 관심이 있는지 알아보는 자세와 제스처. 펍에서 만난 그는 말수가 적었고 의자에 기대앉아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그런 그의 반응에 나 역시 '그래 맥주 한 잔만 하고 집에 가야지.' 라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다른 곳에 가자며 2차, 3차를 계속 권하는 것이 아닌가. 속으로 '뭐지?' 싶었다. 그리곤 재밌었다며 쿨하게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그게 내가 기억하는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연락에 소원해졌는데, 어느 날 뜬금없이 토마스에게 잘 지내고 있냐는 연락이 왔다. 나도 괜히 반가운 마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곧 한국으로 돌아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당시 프랑스에 살고 있던 토마스는 그럼 마지막으로 얼굴 한 번 보자고 제안하더니 바로 프라하로 왔다. 오랜만에 만났음에도 오래 알고 지낸 친구를 만난 듯, 어색함 하나 없이 너무 편하고 재밌었다.


"우리가 또 만날 수 있을까?" 라고 넌지시 묻는 토마스에게 나는 장난식으로 대답했다.

"그럼! 네가 한국에 오면 만날 수 있지. 내가 한국 구경시켜 줄게!"

정말 놀랍게도 토마스는 그 자리에서 한국행 비행기 표를 샀고, 그렇게 우리는 한국에서 다시 만나 연인이 되었다.


토마스가 한국 여행을 마치고 프랑스로 돌아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는 베트남으로 일하러 떠났다. 사실 베트남에 사는 동안 너무 힘들어 울기도 많이 울었는데, 그때마다 토마스가 심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 심지어 내가 있는 베트남에 오기 위해 일자리를 찾기도 했었다. 취업은 잘 풀리지 않았지만, 대신 내가 토마스를 만나기 위해 프랑스로 갔다. 우리는 장거리 연애를 하는 동안 서로가 있는 곳을 오가기 위해 노력했지만, 문제의 코로나 시대가 시작되었다.


Saint Paul de Vence, 토마스가 사는 마을 구경


나는 코로나로 인한 락다운이 시작되기 바로 직전 한국으로 돌아왔다. '각자의 삶을 살면서 곧 다시 만날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상황은 생각보다 점점 심각해졌다.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유일하면서도 가장 쉬운 방법은 토마스가 한국에서 원어민 선생님으로 일하는 것이었다. 토마스는 바로 한국의 일자리를 알아봤고, 코로나가 정점을 찍을 무렵 전주에서의 삶을 시작했다. 그래서 나의 아부지는 토마스의 고향은 전주이고, 전주 토씨라고 농담처럼 이야기한다. 토마스는 본인의 고향이 전주라도 되는 듯 이 말을 너무 좋아하고 애정한다.


한국에서 산지 1년이 되었을 즈음, 유럽의 상황은 점점 나아졌다. 코로나로 닫혔던 국경을 열리고, 회사 채용도 다시 활발해졌다. 덕분에 토마스도 영국의 한 회사로부터 제안을 받고 취업에 성공했다. 그런데 토마스는 아직 여행이 완전히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라며, 영국으로 가기보다는 조금 더 기다리기를 희망했다. 그런 토마스를 등 떠민 게 바로 나였다. 그는 언제나 다시 엔지니어 분야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지금 거절하면 언제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나는 나름 과감히 장거리 연애를 다시 선택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한국에서 살 수도 있었는데, 어쩌면 내 스스로 영국에서의 삶을 선택한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지금의 토마스는 본인이 공부한 분야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해하고 있다.


"우리가 계속 장거리 연애만 할 순 없어."

토마스가 영국으로 간 지 얼마 안되서 나는 여러 현실에 부딪혔다. 당시 일하던 회사의 방침상 휴가 사용이 자유롭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토마스를 몰아붙였다. 그에게 화풀이 한거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못난 나를 언제나 받아주는 그는 바로 함께 하기를 선택했다. 하지만 이 과정도 정말 순탄치만은 않았다. 이 이야기는 따로 풀어야겠다. 그렇게 우리는 여러 나라를 거쳐 장거리 연애를 하다가, 결국 함께 하기 위해 내가 영국에 정착하게 되었다.


모든 연애가 그러하듯 우리의 연애 역시 함께하기 위해 많은 선택을 해야했다. 비싼 값을 치르기도 했지만 그때의 선택은 너무나도 옳았다.


토마스는 초반에 내가 영국에서 사는 것을 너무 힘들어해서 미안한 마음이 컸다고 이야기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웃으며 "그 힘든 선택을 해서 지금은 나름 함께 잘 살고 있잖아."라고 말한다. 생각해 보면 우울증 아닌 우울증을 겪으며 "영국에 살기 싫어.", "나 한국 가고 싶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 적이 있었다. 그때를 떠올릴 때면 나는 아무 설명 없이 토마스에게 치대며 미안하다고 이야기한다.


아무튼 그리하여 나는 지금 영국 시골에서 살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장황하고 뻔한 연애 시절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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