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 미래가 궁금하고 기대되던 때가 있었다. 책을 읽고, 미술관에 가고, 여행을 떠나는. 예의 있고 우아한 할머니로 늙어가면 꽤 멋있겠다고, 평온하고 여유로운 표정의 노인이 된 내 모습이 퍽 괜찮을 거라 여겼다. 그래서 시간의 속도가 야속하지 않았다. 난 천천히 익어가는 중이라 생각했고 급할 게 없었다.
그러나 지금 난, 그 반대편에 서 있다. 여전히 책을 보고, 미술관이 좋고, 여행을 꿈꾸지만 공연장에서 음악을 듣고, 몸을 흔들고, 소리 지르며 뛰어노는 쾌락에 단단히 빠져 있다. 그곳에서는 음악과 나, 단둘만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어두운 조명 아래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나오면 그야말로 어쩔 줄을 모르겠다. 세상에 태어난 이후 가장 나답고 솔직한 모습을 만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급해졌다. 이 좋은 걸 왜 이제야 만났을까. 그간 내게 주어졌던 사회적 역할과 책임들이 대체 날 얼마나 옥죈 것인지 너무 억울하고 속상해서 많이 울었다. 누군가 작정하고 속인 건 아닌데 이런 세상이 있다는 걸 나한테만 알려주지 않은 것 같아 사람도, 시간도 야속하게 느껴졌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1분도,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다, 이 쾌락을.
사실 삶은 늘 남들과 다른 타이밍에 나를 올려놓았다. 소수의 무리에서 다수의 당당함을 바라보며 나도 평범해지고 싶다는 바람을 가진 적이 많았고, 특별한 게 아니라 특이하게 보이는 게 싫었다. 그런데 여전히 난 공연장에서 예매율 10% 미만에 속하는 관객이다. 예술을 사랑하는 데 연령의 구분이 필요한지 묻는다면 대부분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가수를 좋아하는 중년 여성에 대한 대중의 시선은 아직 차갑기만 하다.
그렇다고 이 좋은 것, 나의 쾌락을 놓아줄 생각은 1도 없다. 잔다르크처럼 내가 이 문화를 바꿔보겠다는 비장함 따위는 더더욱 없다. 그저 조금 서운하고, 많이 외롭다고 투덜거림으로써 무거운 마음을 덜어내 공연장에서 더 가볍게 뛰기 위한 웜업을 하는 것뿐이다. 스탠딩 공연장에서 신나게 뛰어놀려면 ‘재밌겠다’는 설렘과 물 한 병이면 충분하니까. 자, 또 놀아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