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운하게 업무를 마치고 귀가하는 길. 좋아하는 밴드의 노래를 차 안 가득 틀어놓고 추임새를 넣어가며 따라 부른다. 코끝 시리게 추운 겨울이지만 볕은 따뜻한 날. 햇빛 가리개 거울에 내 얼굴이 비친다. 오늘따라 팔자 주름이 유별나게 눈에 띈다. 40대 중반인데 팔자주름이 이 정도면 빨리 생긴 건가, 적당한 건가. 아니지, 늦을수록 좋은 게 주름인데.
40대가 되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을 숱하게 들어왔다. 그래서 앞으로 나는, 대체 뭘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 걸까. 팔자주름으로 바로 티가 나는 연식 때문에 스탠딩 콘서트에서 혼자 조금 외롭고 슬픈 생각이 드는 거? 그게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에 대한 책임이라면 가벼운 건가, 무거운 건가.
친구가 어제 보톡스를 맞았다고 했다. 이제 자신을 위해 돈을 쓸 거라고 다짐하듯 말했다. 나는 어디에 돈을 쓰고 있지? 공연 보는 데 아끼지 않고 쓰고 있지. 그거 온전히 나를 위한 거 맞는데, 왠지 나만 거꾸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사실 나는 그 흔한 점 한번 빼본 적이 없고, 피부과 상담도 안 받아봤다. 어쩌면 나는 피부과 대신 공연장에서 내 안의 뜨거운 나를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할머니는 만날 때마다 날 많이 안아주시고 칭찬도 해주셨지만 내 콧대가 낮아 걱정이란 얘기도 빼놓지 않고 하셨다. 나중에 콧대만 세워주면 인물이 살 거라고 하시면서, 귀가 아주 잘 생겨 잘 먹고 잘 살 거라는 말도 덧붙이셨다. 그런데 할머니, 귀가 잘생긴 건 어디다 써먹어요? 콧대를 안 높여서 사람들이 절 편하게 대하는 걸까요, 할머니?
신호 대기 중, 다시 거울을 본다. 입꼬리를 쭉 올려 환하게 웃어보니 팔자주름이 좀 가려지는 것 같다. 앞으로 남은 생, 일분일초도 안 빼놓고 웃는 게 팔자주름을 가릴 수 있는 가장 경제적인 솔루션인가? 그래, 뭐 앞으로 이렇게 40년 살면, 죽을 때 이름은 못 남겨도 웃는 얼굴 하나쯤은 남길 수 있겠다 싶다. 아, 공연장 가면 너무 신이 나고 행복해서 광대가 치솟고 잇몸이 마를 정도니까. 그래, 주름 좀 생기면 어때? 공연장에 더 많이 가면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