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에 만나기로 했다. 오후에 병원 예약이 있어 2시에 나와야 한다고 미리 말해 두었다. 거짓말이 아니었기에 다행히 마음이 불편해지지 않았다. 그녀와 내게 주어진 시간은 단 두 시간. 그 정도는 견딜 수 있다.
3년 만에 만났다. 이번에도 그녀가 먼저 연락을 해왔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나가야 했다. 그녀와 함께 카페로 이동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란히 걸으니 좋은데, 카페에서는 마주 보고 앉아야 하는구나.’
마음이 조금 무거워진다.
그녀는 말이 많다.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처럼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낸다. 나는 경청의 아이콘이다. 누구의, 어떤 말이든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이며 정성을 다해 듣는다. 그러나 그녀는 내 경청의 한도를 넘어버렸다. 이 만남은 기울어진 운동장. 대화가 아니다. 방전된 ‘경청봇’에서 나 자신으로 돌아오려면 언제나 홀로 조용히 명상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커피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살짝 긴장된 표정으로 웃어 보였다. 그녀는 내 근황부터 물었다.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까. 궁금하긴 한 걸까. 근황 브리핑을 마치자 드디어 그녀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어색하게 치솟은 광대로 인해 나의 긴장한 마음이 전달되지 않을지 염려되었다.
‘아니야, 재미있어, 생각보다 괜찮아.’
스스로를 다독이며 최선을 다한 후 자연스러운 몸짓으로 시간을 체크했는데, 아직 한 시간이 더 남아 있었다. 점점 텐션이 떨어져 가는 게 느껴졌다. 어깨에 힘이 빠지니 리액션하는 목소리도 낮아지고 치솟았던 광대도 제자리를 찾았다.
카페인이 간절했다. 사랑해 마지않는, 얼마 남지 않은 아이스 카페라테를 들이켜고 남아 있는 얼음도 씹어가며 집중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녀는 이런 나를 웃는 얼굴로 주시하며 찰나의 틈조차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이야기를 이어갔다. 한계에 다다를 때쯤 그녀가 매너 있게 내 병원 예약 시간을 상기하며 대화 종료를 선언해 주었다. 예정된 시간보다 조금 지연된 2시 5분이었다. 카페 문을 밀고 나오며 맞은 바깥공기가 타인의 말과 생각으로 가득 찬 나를 훌훌 털어낸다. 다시 치솟은 광대에는 어색함이 없다. 이제 나로 돌아갈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