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갱신 안내 문자가 왔다. 벌써 10년이 지났다니 믿을 수가 없다. 나는 그저 매일을 살아낼 뿐인데, 겹겹이 쌓인 시간의 양이 숫자로 정의될 때면 문득 당혹스럽다. 고심 끝에 고른 초록색 원피스를 입고 사진관으로 들어서던 10년 전 그날이 생각났다. 여권 사진에는 얼굴만 크게 나오고 옷은 거의 보이지도 않는다는 걸 그땐 몰랐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 집에서 제일 가까운 사진관을 골랐음에도 도착했을 땐 이미 온몸이 땀범벅이었다. 그런 상황에 얼굴이 무사할 리 없었다. 기름을 바른 듯 번들거리는 얼굴이 그대로 박힌, 불만족스러운 사진으로 10년을 견뎠다. 앞으로의 10년을 잘 버티기 위해 내 모든 필살기를 총동원해 생애 가장 만족스러운 모습을 남겨보기로 했다.
겨울이라 다행이다. 땀이 날 일이 없다. 외투 안에는 깔끔한 인상을 책임져 줄 줄무늬 카디건을 챙겨 입었다. 눈 밑 애교 살이니 턱 윤곽이니 그런 건 못하지만, 최선을 다해 화장도 했다. 그런데 사진관에 들어서자 사진사님이 놀란다.
“흰옷 입으셨어요? 배경이 흰색이라 안 돼요.”
아 진짜. 시작부터 틀려버렸다. 사진사님이 빌려주신 재킷을 걸치고 침착한 척 카메라 앞에 앉았다. 이 순간에 앞으로의 10년이 달려있다. 자못 엄중한 마음으로 사진사님의 지시를 적극적으로 따랐다. 턱도 당기고 입꼬리도 살짝 올렸다. 오늘은 왠지 잘 나올 것 같다.
어릴 때 나는, 사진관에서 증명사진을 찍는 걸 무서워했다. 사진사 아저씨의 과한 친근함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그보다 싫은 건 조명이었다. 셔터를 누를 때마다 번쩍 터지는 그 섬광이 너무 눈부셨다. 불빛이 언제 터질지 몰라 긴장한 채 눈을 부릅뜨고 있느라 사진 속 내 표정은 대개 찡그린 얼굴이었다. 눈부심을 참지 못해 눈을 감았다가 혼난 일도 많았다. 그러고 보면 난, 조명이 무서운 게 아니라 눈을 감아서 혼나는 게 무서웠나 보다. 그런데 이제는 조명이 더는 눈부시게 느껴지지 않는다. 덕분에 혼날 일도 없다. 내가 늠름하게 잘 큰 건가, 조명 기술이 착실하게 발전한 건가. 뭐, 어느 쪽이든 내겐 이득이다.
10분이면 다 된다며 컴퓨터 앞에 앉은 사진사님이 어서 와 옆에 앉으라고 재촉하신다. 외투를 미처 다 입지도 못한 채 다가가 앉으니 모니터 가득 내 얼굴이 떠 있다. 낯선 이가 내 얼굴을 뚫어지게 보고 있는 걸 지켜보는 이 심정은 뭐라 설명해야 할까? 게다가 그 얼굴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마음에 들지 않는, 그게 그거인 내 얼굴 여러 장을 띄워놓고, 어떤 게 낫냐고 묻는 질문에 나는 결국 “그게 그거 같다.”라고 말해버렸다. “절망이네요.”라는 문장도 덧붙여서. 고난의 과정을 거쳐 한 장의 사진이 정해지자, 진짜는 '지금부터'라며 사진사님이 팔을 걷어붙였다. 클릭, 클릭, 또 클릭. 마우스 포인터가 내 얼굴을 사정없이 두드린다. 사진사님이 진두지휘하는 마우스 부대가 점령하는 곳마다 피부는 밝아지고, 윤곽은 살아난다. 전진하라, 고객 만족의 고지를 향하여.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은 요즘 잘 안 쓰는 것 같다. 그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대로인 게 과연 있을까. 나는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얻었을까. 모니터를 보며 공상에 빠지려던 찰나, 사진사님이 내 눈에 하얀 별을 박아주셨다. 이게 화룡점정이구나. 작업 종료. 사람이 됐다. 잘 만져진 사람. “꺅! 너무 마음에 들어요.”라고 나도 모르게 외쳐버렸다. 아, 나는 지난 10년 동안 낯선 이에게 스스럼없이 마음의 소리를 넉살 좋게 내뱉을 수 있는 사람으로 만져졌나 보다. 앞으로 나는 또 어떤 모양으로 만져지게 될까. 그때는 나이 앞자리가 5로 바뀌어있겠네, 엉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