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길에 들이마신 공기에서 달큰한 냄새가 났다. 내 맘에서 100m 즈음 떨어진 곳에 봄이 와 있다는 뜻이다. 봄기운을 몰고 온 이 바람은 내 맘에 가까워졌다 멀어졌다를 반복하며 설렘과 불안함을 차례로 줬다 빼앗았다 하다가, 3월을 툭 던져놓고 가버린다. 그렇게 3월을 받아 든 나는, 비장함이라는 마음의 갑옷을 입고 출근할 결심을 한다.
나에게 한 해가 시작되는 시점은 늘 3월이다. 빠른 년생도 아닌데 어떻게 가능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버지의 뜻대로 7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교사로 일하고 있는 지금까지 쭉 그렇다. 엄밀히 말하자면 재수를 했던 1년은 제외하고. (숫자로 써보니 어마어마하지만) 40년 가까이 학교에 다녔고, 그중 20년은 교사로 살았다.
브런치를 시작하며 스스로에게 했던 다짐 중 하나는 나 자신이 오롯이 담긴 글을 쓴다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갖고 있는 여러 타이틀에 충실하게 사느라,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를 때면 어색하고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로 나를 사랑하지 못했다. 그래서 다른 이를 배려하고 챙기느라 나를 제일 뒤로 미뤄뒀던 지난날에 대한 아쉬움은 그만 내려놓고, 스스로에게 관대하고 다정해지기로 했다.
내 생각과 마음을 기록하기로 한 것도 그 때문이다. 글을 쓰면 생각이 정리되고, 허공에 떠다니던 내 마음을 눈으로 볼 수 있어 좋다. 나는 글을 잘 쓰진 못하지만 지속 가능한 일이 되도록 노력하고 싶다. 그러나 3월이 성큼 다가온 시점이 되니 조금 두렵다.
나는 내 직업과 관련하여 자기 검열이 심한 편이다. 나라는 사람과 직업을 분리하여 생각하지 못하고, 직업 정체성을 곧 나로 생각하며 오랜 기간 살아왔다. 때문에 글에는 내 직업이 드러나지 않게, 훨훨 자유롭게 쓰고 싶다는 바람이 컸다.
그러나 3월의 학교는 상상하는 것보다 더 치열하게 바쁘며, 월화수목금 시간표 대로 열심히 살다 보면 몸과 마음이 서서히 시들어갈 때쯤 방학을 맞이하게 되기에 과연 내가 학기 중에 글을 써낼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래서 '내 생각의 범위에 제한을 두지 않기로 했다'라는 말이 최최최종 하고 싶은 말이자 이 글의 중심 문장이다. 즉 이 글은, 자유롭고 싶었으나 또 다른 제약으로 나를 가두었던 내게 해방을 선언하는 글이랄까. 한 마디로 앞으로는 지금보다 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글을 쓰겠다는 말이다.
에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