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배웅하는 길.
그 날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날은 엄마의 생일과 멀지 않아, 이를 축하하는 가족여행을 떠나려던 날이었다. 나는 아껴뒀던 노란 원피스를 꺼내어들고, 막 옷을 갈아입으려는 참이었다.
그날 아침,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뭐야..아침부터 스팸전화야? 잘못 걸려온 전화면 다시 오겠지.'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잠시 뒤, 익숙한 번호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자다가 일어나도, 눈을 감아도, 외울 수 있는 너의 번호로 걸려온 전화였다. 12년을 눌렀던 바로 그 번호였다.
이른 아침이었는데, 너의 전화에서는 네 남자친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가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말을 꺼내기에, 여행 때문에 마음이 급했던 나는 그를 다그쳤다.
"잘 안들리는데, 다시 한 번 말씀해주시겠어요?" 그 말을 하면서 나는 생각했다. '아침부터 남자친구랑 내기라도 했나..? 얘가 새삼스럽게 장난은..'
내 말에, 다시 대답한 사람은 너의 어머니였다. 어머니의 목소리로 흘러나온 이야기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들로 가득했다.
네가 우리의 곁을 떠났다고, 우리가 너를 지켜주지 못했다고, 네가 눈을 뜨지 않는다고. 울음인지 절규인지 알 수 없는 그 목소리에 나는 머릿 속이 멍해졌다.
망치로 한 대 맞으면 딱 이런 기분이겠구나 싶었다. 눈물은 하염없이 흐르는데 내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들은건지, 지금 어떻게 해야 하는건지, 어머니께 지금 그리로 간다고 이야기를 전하면서도,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냐는 가족들의 말에, 나는 울음으로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원피스를 벗고, 검은 양복을 손에 들었다.
간신히 정신을 붙들고 네가 있는 병원에 도착하자, 환하게 웃는 네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네가 떠난지 일년 반이 지났어.
여전히 엉망이 된 마음을 풀어내는 중이지만, 나는 좋은 사람들 덕에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시간을 견디고 또 살아가고 있어. 이제는 웃는 날이 꽤 많아. 야속하게 흐르는 시간에 내 기억이 무뎌지지 않기를 바라며 이 글을 적어. 너의 흔적이 이 세상에 한 글자라도
더 남았으면 하는 마음에 말이야.
네가 얼마나 소중하고 예쁜 사람이었는지 기억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