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번역하는 엄마 Sep 30. 2020

어머니의 무말랭이 무침 (시집살이 10년의 소회)

무엇보다도 뜨겁게 사랑할지니

"이거 한 번 먹어봐."


다소 멋쩍게 내 옆으로 뭔가를 쓱 내미시는 어머니. 제가 지난번 어머니 댁에 갔을 때 맛있게 먹은 무말랭이 무침이었습니다. 흔하디 흔한 무말랭이에 황태포를 넣고 무친 것이었는데 어찌 그리 맛있던지요. 고기반찬에 이런저런 먹을 것이 즐비했지만 저는 그 무말랭이 반찬에 밥 한 그릇 뚝딱 비워내고 연신 맛있다, 맛있다를 중얼거렸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맛있게 먹던 모습을 기억하시고 커다란 통 하나 가득 맛있게 무쳐오셨습니다. 워낙 말씀이 없으신 분이라 "네가 맛있게 먹길래 만들어왔지."라는 부연 설명 한 마디 없이 그저 식탁 위에 툭, 올려두시고는 제게 젓가락을 내미셨지만, 이제는 어머니의 그 깊은 마음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없이 감사했습니다.


10년, 올해로 결혼 10년 차인 저는 꼭 그 기간만큼 시부모님과 함께 살았습니다, 아니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사정상 잠시 떨어져 지내고 있지만 저희 집에는 여전히 아버님, 어머님 방이 그대로 비워져 있습니다. 아이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할머니와 통화를 하고 일주일이 멀다 하고 얼굴을 봅니다.


제 나이 스물아홉, 그때는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철이 없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합가를 결정했지만 두려움이나 걱정은 눈곱만큼도 없었습니다. 20년 넘게 시집살이를 했던 엄마는 반대는커녕 어른들과 살면 좋은 점이 많다며 저를 독려하셨습니다. 그런 부모님 밑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저는 예비 시부모님이 마치 돌아가신 제 할머니 할아버지처럼 푸근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30년 넘게 남으로,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다가 같은 공간에서 24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생각도, 성격도, 습관도 제각기 다른 사람들과 맞춰가며 산다는 건 제가 지금까지 경험한 그 어떤 것보다 많은 인내를 필요로 했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저는 그리 참을성이 많은 사람도, 아량이 넓은 사람도 아니었기에, 그런 제 성격을 죽이지 못해 더 힘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특별히 서로의 다름을 차이로 인정하지 못하고 틀렸다고 생각하는 데서 오는 끝없는 비판과 정죄는 제 스스로를 점점 못된 아내, 못된 며느리의 굴레로 몰아넣었습니다. 왜 저러는 거야? 도대체 이해가 안 되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이야? 이건 말이 안 돼! 끝없이, 끝없이 나와 다른 생각의 차이를 인정하지 못한 채 날을 세우기에 바빴습니다.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상대방을 비난하면서 정작 저 역시 눈을 감고, 귀를 닫아버렸습니다.


물론 함께 사는 데서 오는 기쁨과 감사도 많았습니다. 특히 아이들에게 함께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존재는 말로 설명할 수없이 큰 그늘이었습니다. 짜증 많고 화를 잘 내는 엄마와 달리 늘 편안하게 웃는 얼굴의 할머니는 아이들에게 큰 피난처가 돼주었습니다. 공부하고 일하느라 항상 바쁘게 지내는 며느리를 가장 가까이에서 도와주신 분도 어머니였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제 머릿속은 그런 기쁨과 감사보다 그동안 켜켜이 쌓아온 온갖 상처와 서운함으로 가득 찼습니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펑 터져버릴 것 같은 시한폭탄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제 스스로도 제 자신이 늘 불안했고 위태롭게 느껴졌습니다. 모든 것이 불평, 불만으로 가득했습니다. 감사가 사라진 삶이 얼마나 지옥인지 그때 깨달았습니다.


그러던 중 아직 현직에 계신 시부모님의 일 때문에 올봄부터 어머니와 잠시 떨어져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벌써 6개월째에 접어들었네요. 그런데 신기한 건 마냥 좋을 것만 같았던 분가 생활이 생각만큼 즐겁지도, 홀가분하지도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간 살면서 제가 어머니께 잘못한 일들만 자꾸만 떠올랐습니다. 나만 힘들고 나만 속상했다고 생각했지만, 그제야 어머니의 입장이 조금씩 이해됐고 그 깊은 외로움과 상처가 헤아려졌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늘 안달복달했던 건 지극히 사소한 문제였습니다. 상대방의 말투 하나, 습관 하나, 버릇 하나. 모든 걸 내가 세운 기준과 틀로 이해하려니 좀처럼 해석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조차 내 아집과 편견인 걸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왜 나를 좀 더 이해해 주지 않느냐는, 사랑해 주지 않느냐는 불평이 관계의 틈으로 이어졌고, 그 틈은 나의 아집과 결합돼 점점 단단하게 굳어갔습니다. 어쩌면 관계를 단절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이해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 요즘 제 머릿속에는 성경 말씀 한 구절이 계속 맴돌았습니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 4:8). 사랑하면, 사랑만 하면 모든 게 끝납니다. 모든 허물이 덮어집니다. 하지만 그런 사랑을 하기가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그 한 끗의 순종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눈에 보이는 허물을 사랑으로 덮어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뼛속 깊이 체험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걸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더 이상은 이 상태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는 상대방을 향해 '(당신이 먼저) 사랑하라'라고 외쳤다면, 이제는 (내가 먼저) 사랑하겠다'라고 고백하고 전진해야 할 때라는 마음이 옵니다. 그렇게 해야만 제가 바로 서고, 제 가정이 온전히 설 수 있다는 확신이 듭니다.


오늘 아침도 어머니가 가져다주신 무말랭이 무침으로 먹었습니다. 며느리 생각해서 일부러 만들어 오신 반찬이라고 생각하니 더 맛있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지난 10년, 어머니는 끊임없이 제 허물을 사랑으로 덮고 또 덮어주셨음을. 저는 그런 어머니의 허물을 덮기는커녕 하나하나 들춰내며 비난하기에 바빴음을 말이죠. 힘들고 어렵겠지만 굳게 다짐해봅니다. 신앙인으로서, 한 남자의 아내로서, 아이들의 엄마로서, 그리고 한 집안의 며느리로서 이제는 내가 먼저 사랑하는 삶을 살겠노라고.


어머니의 무말랭이 무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