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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번역하는 엄마 Oct 09. 2020

시댁=악의 축, 이 공식을 깰 순 없을까?

워킹맘 에세이, 열 한번째 이야기


안녕하세요! 번역하는 엄마입니다. 


오늘은 여러분과 좀 어렵고 힘든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그래서 이곳에 담게 될 제 의견이 다소 불편하신 분들도 계실 테고, 제 생각이 동의하지 않는 분도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곳은 제 공간이니만큼 그냥 저의 언어로 저의 생각을 편하게 풀어내보려 해요. 이해해 주시길 미리 부탁드리겠습니다.


시댁을 향한 며느리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나, 궁금하시죠?! 네, 맞아요. 제목에 적은 것처럼 시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시댁을 대하는 며느리의 언행과 태도에 관한 문제입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많은 분은 저처럼 누군가의 아내요 엄마이자 며느리일 거라 생각합니다.


지금은 얼마 전 우리는 시댁의 힘이 가장 막강하게 발휘되는 명절을 지냈습니다. 코로나로 부득이 귀성을 포기한 경우도 더러 있겠지만, 가까이 살면 여느 때처럼 함께 모여 차례도 지내고 식사도 하셨을 거예요. 그래서인지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무섭게 각종 사이트와 커뮤니티는 명절증후군을 겪는 며느리 이야기로 도배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수많은 글을 읽으며 몹시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수필이나 에세이라는 이름으로 쓴 글조차 제목부터 내용까지 차마 입에 담기조차 힘든 시댁 흉으로 가득했습니다. 아무리 익명성이 보장되고, 아무리 내 목소리 내가 낸다지만 제3자가 보기에도 심하다 싶을 만큼 원색적인 비난이 줄을 이었습니다.


나의 힘듦을 바라봐 달라는 하소연


더욱이 각종 사이트는 그런 글을 정면에 배치했습니다. 더 자극적으로, 더 원색적으로 시댁을 깔아뭉개는 글. 그런 글이 연휴 내내 최상단에 노출되었습니다. 물론 편집자는 조회 수를 최우선에 두고 상단 혹은 메인 노출 글을 선택해야 하겠지만, 조회 수만을 염두에 둔 큐레이션은 '시댁=악의 축'이라는 명제를 더욱 공고히 했습니다.


네, 우리 며느리들. 물론 이해합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얼마나 억울했으면, 얼마나 답답했으면 익명성을 등에 업고 수많은 사람에게 하소연을 했을까요. 겉으로는 험담과 욕설의 모습이지만 그 속내는 분명 나의 힘듦을 좀 알아달라는, 내가 이렇게 아프고 힘들다는 하소연이었을 겁니다. 네, 저도 압니다. 저도 며느리니까요. (참고로 저는 결혼과 동시에 합가 생활을 시작한 10년 차 며느리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그렇게 욕을 하고 험담을 한다고 어디 내 속이 풀리던가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때뿐입니다. 그 순간 잠시 후련할 뿐 내 속의 화는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 입만 더러워집니다. 내가 뱉은 말, 내가 그대로 다 먹습니다. 후련한 기분은 잠시, 찜찜하고 언짢은 기분이 지속됩니다.


내 말과 글을 사랑의 언어로 바꾸는 방법


그럼 뭘 어떻게 해야 하냐고요? 이렇게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글이라도 쓰지 않으면 내 속이 속이 아닌데! 자, 그럼 내 말과 글을 온갖 추잡한 표현 대신 사랑의 언어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을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제 생각이 결코 정답은 아닙니다. 다만, 10년간 시어머니와 한 집에 살면서 제가 터득한 나름의 노하우입니다. 그런 관점에서봐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첫째,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합니다. 물론 이것이 얼마나 힘든 줄 누구보다 잘 압니다. 합가 생활 10년 차인 지금까지도 제가 저희 시어머니께 가장 적응이 안 되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말투인데요. 어머니는 참 속정이 깊은 분이지만 겉으로 살가운 스타일은 아니거든요. 그야말로 말을 툭툭 던지실 때가 많은데, 저는 유난히 상대방 말투에 약한 편이라 어머니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저 혼자 상처를 많이 받곤 해요. 말투 하나에 혼자서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하고요.


그러면서 요즘 깨달은 건, 상대방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려면 끊임없이 연습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에요. 처음부터 쉽사리 인정이 되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왜?'라는 의문이 따라다니죠. '어머니는 왜 저래, 도대체 왜 말을 그렇게 하는 거야, 정말 이해할 수 없어!'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저건 그냥 어머니 스타일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과정이 필요해요. 저는 그렇게 하기까지 10년이 걸렸고, 물론 아직도 자주 넘어져요.


둘째, 나 역시 너무나 부족하고 연약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상대방에 대해 느끼는 억울하고 분하고 원통한 감정의 바탕에는 '내가 너보다 낫다'라는 명제가 자리합니다. 넌 틀렸고 내가 맞다는 것이죠. 시어머니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순간은 허다합니다. 그런데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반대로 며느리인 나의 말과 행동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제 경우 어머니는 야행성 저는 아침형, 어머니는 느릿느릿 저는 빠릿빠릿. 성향이 완전히 반대예요. 그런 두 사람이 한 집에 살았으니 서로 얼마나 이해되지 않는 순간들이 많았겠습니까! 그런데 저는 매번 그런 어머니가 이해되지 않는다며 어떤 식으로든 성토대회를 했던 반면 어머니는 한 번도 이러쿵저러쿵 말씀하신 적이 없어요. 그래서 뒤늦게 깨달았죠. 인간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잣대로 세상을 바라보기에 스스로의 약점은 좀처럼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이죠.


셋째, 시부모님은 남편의 어머니요 아이들의 할아버지, 할머니이자 결국은 내 가족이라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내가 속으로든 겉으로든 시댁 어른들을 욕하고 험담하는 순간 그 더러운 말은 내가 먹고, 우리 아이들이 먹습니다. 화내고 분노하고 소리치는 과정에서 나오는 좋지 않은 기운이 사랑하는 내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당연히 부부 사이도 멀어지고 아이들에게도 면이 서지 않습니다. 내 가족을 스스로 짓밟는 행위인 셈이죠.


사실 이것도 제가 직접 경험한 건데요. 어머니와 극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때가 몇 번 있었는데, 눈치가 빤한 큰 아이는 벌써 집안 공기로 상황을 다 알더라고요. 당연히 남편도 자꾸만 제 눈치를 보게 되고요. 이후 제가 관계적인 부분에서 조금씩 성숙해가며 깨달은 건, 내 꽃밭을 스스로 망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어요. 시부모님은 나의 또 다른 부모로, 가족으로 맺어진 분들이니까요.





휴우, 글을 쓰면서도 이런 이런 대목은 동의하지 않으실 수도 있겠다, 싶은 구절이 많았습니다. 각자의 상황과 여건이 모두 다르니까요. 하지만 저 역시 며느리로서, 더욱이 10년째 시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시댁이 마치 악의 축인 것처럼 깎아내리고 험담하는 모습만큼은 참 보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경험을 살짝씩 녹여 제가 합가 생활 10년 동안 깨달은 바를 저만의 목소리로 한 번 정리해봤습니다. 그저 '아, 번역하는 엄마의 생각은 이렇구나' 정도로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특별히 제 글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더욱 좋겠고요!


오늘도 긴 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 Anemone123,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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