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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번역하는 엄마 Oct 26. 2020

예순셋 요가 강사, 우리 엄마 이야기

<워킹맘 에세이> 열한 번째 이야기

제목 보고 좀 의아하진 않으셨나요? 예순셋? 요가 강사? 번역하는 엄마와는 딱히 상관없는 단어인데 말이죠. 그런데 아주 크게 상관있답니다, 하하. 바야흐로 줌의 시대, 생존을 위해 밤샘 노력도 마다 않는 예순셋 요가 강사! 바로 저희 친정엄마랍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해요. 궁금하시죠?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엄마의 요가인생

STAGE1: 어깨 통증으로 시작한 요가수업


저희 엄마는 올해로 24년 차 요가 강사세요. 그야말로 인생의 절반을 요가와 함께 해오신 분이죠. 스물셋 꽃다운 나이에 시집와 가족들을 위해 온 청춘을 바쳤던 엄마는 늘 어깨 통증에 시달렸어요. 기억 속 엄마는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윤영아, 엄마 어깨 좀 주물러줘."


엄마는 어깨가 아파서 제대로 펴지도 못하셨어요. 그래도 만져드리는 게 시원한지 제게 자주 부탁하곤 하셨죠. 그러던 어느 날 동네 노인정에서 요가 수업이 열렸고, 어깨 통증에 좋다는 말에 엄마는 그날로 등록을 하셨어요. 엄마의 요가 인생을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꾸준함, 성실함으로는 따라올 자가 없었던 엄마는 요가수업도 늘 열심히 하셨어요. 덕분에 그토록 괴롭히던 어깨 통증도 말끔히 사라졌고요. 그렇게 7~8년을 꾸준히 하시던 어느 날, 엄마를 가르쳐주시던 선생님의 권유로 엄마는 요가 자격증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답니다.



엄마의 요가인생

STAGE2: 요가선생님으로 변신한 우리 엄마


사실 그때는 지금만큼 요가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어요. 요가 수업도 흔치 않았고요. 그저 '요가'라고 하면 공중부양이나 묘기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죠. 저도 그중 하나였고요. 하하. 그래서 엄마가 전문적으로 요가 공부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좀 의아했어요.


하지만 사범대를 나왔음에도 졸업도 하기 전에 결혼을 택한 엄마는, 그렇게 못다 펼친 꿈에 대한 열정이 남아있던 엄마는 너무나 열심히 요가 공부에 매진했어요. 그리고 드디어 요가 강사로 첫 발을 내디디셨죠. 엄마 나이 마흔둘,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일이었어요.


그런데 마침 그 즈음부터 전국적으로 요가 열풍이 불기 시작했어요. 이제 갓 강사로 입문한 엄마도 덩달아 바빠지셨죠. 하지만 그때 제가 고1, 저희 오빠가 고2, 거기에 연로하신 할아버지도 집에 계신 상황이었죠. 엄마는 가정이 우선이라며 주부로서의 역할에 지장이 없는 선에서만 수업을 맡으셨어요.


다행히 요가 열풍은 쉬이 사그라지지 않았어요. 오빠에 이어 저까지 대학에 입학한 2001년. 엄마는 본격적으로 사회활동을 시작하셨죠.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수업이 꽉 차 있었어요. 20년간 오롯이 가정에 헌신한 엄마는 정말 날아다녔습니다. 당연히 수입도 좋으셨고요.


엄마는 그렇게 지금까지 20년 넘게 요가 강사로 일해오셨어요. 그러면서 늘 이렇게 말씀하셨죠. "70, 80 돼서도 계속 일하면 좋겠다!" 엄마의 성실함을 잘 아는 저는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확신했어요. 그런데 생각지 못한 복병이 나타났습니다. 그 이름은 코로나19!



엄마의 요가인생

STAGE3: 코로나 쇼크,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된 우리 엄마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엄마는 모든 수업을 못 하게 되셨어요. 체육 시설은 운영 중단 1순위였기에 아무런 기약 없이 수개월이 흘렀죠. 다행히 엄마는 생계의 목적보다는 일 그 자체에 의미를 두셨기 때문에 수업을 못한다고 크게 문제 될 건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했죠.


"엄마, 이제 그만 내려놔. 이제 환갑도 넘었고 그만하면 오래 했지. 이젠 홈트의 시대라고!"


하지만 엄마는 코로나가 잠잠해지길 기다리며 수업이 재개되기만을 기다리셨죠. 본인은 적어도 70까지는 수업을 할 거라며 의지를 다지셨어요. 이대로 물러날 순 없다며, 코로나에게 질 순 없다며!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한껏 상기된 목소리로 전화를 하셨어요.


"딸! 줌으로 강의를 시작한단다! 니 쫌 와서 내 가르치도!(경상도 사투리 버전)"


이건 또 무슨 소리! 저는 깜짝 놀라 몇 번이고 되물었어요. 줌으로 실시간 수업을 한다고? 요가를? 2월부터 못한 수업을 더 이상은 미룰 수가 없어 센터 측에서 결단을 내렸다고 했어요. 줌으로 요가 수업을 하고, 이를 위해 모든 강사에 대한 줌 교육도 시켜준다고.


그래서 속으로 생각했죠. '엄만 이제 끝났구나. 카톡으로 사진도 못 보내는 엄마가 줌으로 수업을? 이건 도저히 말이 안 된다. 엄마를 설득시켜 그만두게 해야지.' 정말 그랬어요. 엄마는 유난히 디지털과는 거리가 먼 분이었거든요. 스마트폰으로 전화, 문자, 카톡 외에는 일절 못 쓰시는 분이 줌 강의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엄마의 요가인생

STAGE4: 후퇴는 없다, 무조건 전진!


그런데 엄마는 두 주먹 불끈 쥐고 도전하셨어요. 꼭 해내고 말겠다는 의지가 대단했습니다. 체육센터에서 줌 강의를 듣고 온 날부터 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줌을 익히셨어요. 저도, 아빠도 좀 투덜대긴 했지만 열심히 도왔습니다. 근 3주 가까이를 완전히 줌에만 빠져 사셨죠.


그런 엄마를 보며 '과연 될까?'라는 제 물음표도 점점 느낌표로 바뀌어 갔어요. 어느덧 수십 번의 연습을 통해 엄마는 회의를 개설하고, 실시간 수업을 하고, 수강생들과 채팅까지 하는 수준으로 올라갔습니다. 물론 저와 아빠, 중국에 있는 오빠까지 수강생 대역으로 참여했고요.


지난 목요일, 엄마는 아빠와 2인 1조로 완벽한 팀워크를 자랑하며 무사히 첫 수업을 마쳤습니다. 엄마는 수업을 진행하고, 아빠는 지각생들 입장을 수락하고요. 그렇게 첫 수업이 끝난 직후, 제게 바로 전화를 하셨던 엄마의 목소리를 잊을 수가 없어요.


"딸! 끝났어! 엄마가 해냈어!"


겉으로는 퉁명스럽게 대꾸했지만, 속으로는 엄마가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몰라요. 예순셋에 줌으로 수업을 하다니! 이게 말이 돼? 카톡 프로필도 못 바꾸는 우리 엄마가! 손주가 넷이나 되는 우리 엄마가! 그런데 엄마가, 우리 엄마가 정말 해냈습니다.


말도 안 된다고, 그 나이에 무슨 줌으로까지 수업을 하겠다고 난리냐고. 그만두라고, 그렇게 함부로 말했던 게 너무나 미안했습니다. 그리고 엄마를 보며 생각했어요. 내가 엄마를 닮았구나. 저 근성, 한 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고야 마는 굳은 심지는 엄마를 닮은 거였구나.


엄마는 요즘 활력이 넘쳐납니다. 무엇보다 새로운 도전을 이뤄냈다는 것에 대한 만족감이 크신 듯해요. 엄마를 보며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회는 도전하는 자에게 열려 있다는 생각도 하고요. 예순셋 우리 엄마도 했는데, 서른아홉 딸래미도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도 잘 살아내 봐야겠습니다.


수업 리허설 하느라 하루에도 몇 개씩 날라온 엄마의 회의개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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