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가족, 친지, 친구들과 새해 인사 많이들 나누셨나요? 직접 찾아뵙지도, 만날 수도 없는 상황이 되면서 대부분 전화나 카톡 메시지로 대신하셨을 줄 생각됩니다. 네, 저도 그랬습니다.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꼭 인사를 전해야 할 분들에게 전화도 하고 메시지도 전했습니다. 그런 인사를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카카오톡 알림이 하나 떴습니다. 그런데 순간 제 눈을 의심했네요."사랑하는 나의 며느리 ㅇㅇ아~"로 시작되는 메시지였습니다.
사실 어머니와는 10년을 한 집에서 살았기에 별다른 새해 인사도, 덕담도 나눠본 기억이 없습니다. 으레 형식적으로 세배를 하고, 떡국을 먹고 매년 그렇게 새해를 맞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번엔 좀 달랐습니다. 시부모님 사정상 잠시 지방에 계셔야 하는 여건이라 올해는 처음으로 새해를 따로 맞았습니다. 그런데 코로나로 이 난리를 겪다 보니 서로 오갈 수도 없는 상황이 돼버렸고요. 어머니께서는 며느리인 제가 먼저 안부전화를 드리기도 전에 며느리에게 진한 사랑 고백 문자를 보내오셨습니다.
메시지가 온 걸 확인한 순간 바로 열어야 했지만 차마 열어보질 못하겠더라고요. "사랑하는 나의 며느리 ㅇㅇ아~"라고 시작되는 첫 머리만 보고도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간 제 마음에 쌓였던 차갑고 딱딱했던 모든 감정이 스르르 녹아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제목 한 줄만 보고도 이런 마음인데, 내용 전체를 확인하고 찾아올 그 진한 감동을 어쩐지 감당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묵히고서 한두 시간쯤 지났을까. 메시지를 열고 찬찬히 읽어 내려갔습니다.
이렇게 말을 하니 제가 시어머니와 굉장한 사연이 있다거나 극심한 고부갈등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딱히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런데 여러분, 생전 처음 보는 성인남녀가, 수십 년을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온 이들이 한집에서 어울려 산다는 것. 그것의 어려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합가 생활을 시작했어요. 20년 넘게 시부모님을 모시며 온갖 병수발을 했던 친정엄마 밑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컸기에 시부모님도 그저 또 다른 할머니, 할아버지쯤으로 생각하고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합가 생활은 제가 생각했던 그런 그림과는 많이 달랐어요. 시부모님 두 분 다 정말 좋은 분이셨지만 한 공간에서 같이 생활한다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습니다. 그분들은 제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니고 제가 깍듯이 모셔야 할 시부모님이셨고, 30년 가까이 너무나 다른 생활 패턴으로 각자의 삶을 살다가 순식간에 같은 집에 살게 된 남남이었습니다. 그 남남이 하루아침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공동생활을 시작했으니 얼마나 부딪치는 일이 많았겠습니까. 갈등이 없는 게 이상한 일이겠지요.
좋으면 좋다고, 싫으면 싫다고 뭐든 호들갑스럽게 반응하는 저와는 달리 어머니도 남편도 참 점잖은 분들이에요. 그런 모습이 늘 든든하고 신뢰가 가서 좋기도 했지만 반응이 없는 그 분위기가 저는 참 적응하기 힘들었어요. 작은 거 하나에도 다소 과장되게 소통했던 친정집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죠. 그래서 저는 10년 내내 이런 의문을 갖고 살았어요. '왜 저렇게 말을 안 할까?' 그런 마음은 급기야 '내가 마음에 안 드나? 내가 싫은가?' 이런 오해로 이어졌고, 크고 작은 갈등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지난 결혼생활 10년은 그 갈등을 줄이고 서로 간의 불협화음을 조화롭게 맞춰가는 기나긴 여정이었어요. 크고 작은 마찰 속에서 수없이 많은 상처가 제 마음을 할퀴고 지나갔습니다. 어디 저만 그랬겠나요? 남편도, 어머니도, 늘 한 발짝 물러나 계셨던 아버님도 나름의 상처를 지니고 여기까지 왔을 겁니다. 그리고 잠시 떨어져 지내게 된 지난 1년은 각자 상처받은 마음을 추스르고 서로의 소중함을 더 깊이 깨닫게 된 시간이 되었어요. 만나면 여전히 투닥거리고 삐걱대지만 이제는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큰 존재인지 잘 압니다.
그런 시간을 지나오며 결혼 10년 만에 처음 받아본, 며느리를 향한 어머니의 사랑 고백. 제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느껴지시나요? 우리 남편도 결혼하고 저한테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해본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남편에게 들은 것만큼, 아니 그보다 훨씬 더 감동적이었어요. 이루 말할 수 없는 뿌듯함과 함께 지난 10년간 나의 노력을, 나의 애씀을 인정받은 것만 같았죠. 어머니가 날 사랑하시는구나, 마음 깊이 날 생각하고 계시는구나. 그런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보낸 한 줄의 사랑 고백은 제게 날개를 달아주었습니다.
저도 답장을 보내긴 했는데, 너무 쑥스러워서 사랑한다는 표현은 담지 못했어요. 하지만 마냥 철없이 시집왔던 스물아홉 며느리는 어느덧 마흔이 되어 눈에 띄게 늙으신 어머니의 모습에 그저 마음이 아려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이런 마음을 전했어요. 먼 훗날 어머니, 아버님이 거동이 불편해지신다고 해도, 행여나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는 상황이 온다고 해도 제가 그 곁을 지켜 드리겠다고. 여전히 툴툴거리고 삐죽거리겠지만 그 곁에 남아 함께 울고 웃겠다고. 어머니의 용기 있는 사랑 고백에 못난 며느리는 그렇게 속으로만 사랑을 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