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과장과 파견회사 직원의 첫 만남

Part III 회사가 맺어준 우리

by 번역하는 엄마

저희 가정은 최근 남편의 실직이라는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매주 2회 블로그와 브런치에 연재 중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려요 :)



우리는 회사에서 처음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사내 커플은 아니다. 당시 나는 마케팅 컨설팅 회사의 직원으로 남편이 근무하던 대기업에 파견돼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속도 업무도 모두 달랐다. 그저 같은 건물, 같은 사무실을 공유하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일 뿐이었다.


내 이야기를 조금 하자면, 당시 나는 상당한 자격지심에 사로잡힌 20대 청춘이었다. 앞날에 대한 희망이랄 게 없이 그저 집과 회사만 오가던 스물여덟 여자. 대학 때부터 오직 한길, 언론사 입성만을 목표로 공부했지만 기자라는 직업은 내게 허락되지 않았다. 결국 스물일곱 여름을 끝으로 오랜 꿈을 내려놓고 가까스로 취직을 했다.


그 즈음, 친구들은 이름만 대면 아는 회사에서 잘나가는 커리어 우먼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나만 실패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바라던 직종도, 유명한 회사도 아니었기에 괜한 자격지심만 점점 커졌다. 돌이켜보면, 마케팅 업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내게 기회를 준 고마운 회사였지만, 그때는 그걸 깨닫지 못했다.


당시만 해도 E 성향이 강했던 나는 그나마 사람들과 어울리는 재미로 회사를 다녔다. 소속도 업무도 전혀 달랐지만, 또래와 성향이 비슷한 그곳 직원들과 친분이 생겨 나름대로 즐거운 생활을 이어나갔다. 애사심으로 똘똘 뭉친 수백 명의 입사 동기는 없었지만, 그들은 내게 그 이상으로 진한 우정을 나눠주었다.


그렇게 1년 이상 파견 업무를 해오던 중, 데스크탑 컴퓨터에 문제가 생겨 업무와는 전혀 상관없는 옆 팀 책상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 팀에 남편이 있었다. 그저 오가다 목례만 하던 사이일 뿐 개인적인 친분은 전혀 없었다. 옆 팀 과장님과 파견 회사 직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물리적 공간이 가까워지니 마주칠 기회도 점점 더 많아졌다. 어느 날부터 남편, 당시 옆 팀 과장님은 내게 어쩌다 한 번씩 비타500 뚜껑을 주기 시작했다. 어렴풋한 기억에, 그때 그 뚜껑에 각종 경품이 걸려 있었다. '한 병 더'라는 글자가 적혀 있으면 구입한 곳에 가서 공짜로 한 병을 먹을 수 있는 그런 이벤트였다.


나는 비타500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어서 그냥 뚜껑만 받아 두었더랬다. 어느새 뚜껑은 서랍 하나를 가득 채웠고, 며칠 뜸하면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어? 과장님 뚜껑이 영 소식이 없네? 무슨 일 있나?' 그렇다고 서로에 대해 호감을 표시하거나 개인적인 만남을 갖진 않았다. 요샛말로 스리슬쩍 썸 타는 관계가 몇 달간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과 공식적으로 밥 먹을 일이 생겼다. 그것도 남편의 회사 사장님과 함께!


IMG_1878.JPG 홍대 에반스, 2009년 첫 데이트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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