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임원 남편 덕에 누리고 산 것들

Part II 신입부터 임원까지 25년, 당신의 희로애락

by 번역하는 엄마

저희 가정은 최근 남편의 실직이라는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매주 2회 블로그와 브런치에 연재 중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려요 :)


얼마 전, 짧은 영상 하나에 마음이 와르르 무너진 적이 있다. 주말에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회사에 나가고, 퇴근을 하고 나서조차 아이들 방 한편에서 거래처 사람들과 통화를 하며 급기야 화상 회의까지 하는 남편의 모습을 아내가 촬영한 영상이었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남편도 저랬는데... 우리 남편도 밤낮없이 저리 바쁘게 지냈는데.'

그런데 잠시 후 내 머릿속에는 질문 하나가 스쳤다. '나는 무엇이 속상했을까? 무엇 때문에 생전 처음 보는 영상 속 부부의 모습에 눈물이 맺힌 걸까?' 불과 몇 달 전까지 정신없이 바빴던 남편이 하루아침에 집에 있게 된 상황? 어쩌면 다시 보지 못할, 남편이 출근하는 모습? 아니면... 대기업 임원 사모님에서 실직자 아내로 타이틀이 수직 낙하한 지금의 내 처지?

솔직히, 모두 다인 것 같다. 남편에 대한 안쓰러움과 함께 타이틀이 바뀐 내 처지도 조금은 서글펐다. 남편이 갑작스레 퇴직하고 근 석 달이 지난 지금, 달라진 일상에 어느 정도 적응은 했지만, 생각지 못한 마음들이 조금씩 자라고 있음을 느낀다. 피해의식? 아니면 자격지심? 그 비슷한 감정이 한 번씩 똬리를 튼다. 물론 그런 안 좋은 생각은 더는 크지 못하도록 꾹 누르고 있다.

오늘은 그런 의미에서 지난 4년간 남편 덕에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고 살았는지 복기해 보고자 한다. 그 혜택을 누린 것만으로도 내 인생에 큰 선물이었음을 감사해하며, 그 감사의 마음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21년 만에 평사원에서 임원으로 승진한 후, 가장 큰 변화는 한층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바뀐 남편의 모습이었다. 내가 아는 한, 남편은 출세욕이나 명예욕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직장 생활을 열심히 한 것도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성실히 이행한 것일 뿐, 그를 통해 임원이 되고자 한 야욕은 전혀 없었다. '김부장' 드라마 속 김부장이나 백상무와 전혀 반대되는 캐릭터였다.

하지만 그런 남편도 임원 승진을 통해 자신의 노고와 성과를 인정받고 나니 상당한 만족감을 느끼는 듯했다. 21년을 한결같이 노력한 자에게 주어진 보상은 남편을 한층 긍정적으로 변화시켰다. 매사에 여유가 느껴졌고, 왠지 모르게 당당한 위용이 뿜어져 나왔다. 그건 자만이나 거만과는 거리가 먼, 열심히 노력해 정당한 과실을 얻은 자에게서 나오는 품격과 여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정성적인 변화와 함께 정량적인 변화도 따라왔다. 우선 월급이 평사원일 때보다 두 배 이상 올랐다. 10여 년 전, 본업이 의사인 우리 교회 전도사님의 십일조 액수를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0이 하나 더 붙은 게 아닐까 싶어 꼼꼼히 세어 봤던 기억이 난다. 그때 마음속에 품은 소원 한 가지. '하나님, 우리 가정도 전도사님만큼 십일조 하게 해주세요.'

남편이 승진을 하고, 내 일도 자리를 잡아가면서 약 10년 만에 기도했던 십일조를 낼 수 있었다. 그 열매를 온전히 하나님께 드릴 수 있어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이에 더해 임원에게는 다양한 혜택이 따라온다. 몸과 마음의 양식을 길러 회사에 더 기여하라는 의미로 체력단련비와 도서구입비가 주어지고, 그룹 계열사의 각종 상품과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혜택도 주어진다.

그래서 지난 4년간 내 돈 주고는 가보지 못할 곳, 먹어보지 못할 것, 써보지 못할 것을 많이 누리고 살았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더 감사한 건, 그 모든 것이 남편의 공로로 누리는 것임을 늘 기억했고, 또 언젠가는 끝날 시한부 혜택임을 잊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누리는 동안 더 달콤했는지도 모르겠다. 남편 덕분에, 그리고 회사 덕분에 처음 경험해 본 것들이 참 많았다.

그리고 지금, 이제 더 이상 나는 상무님 사모님이 아니다. 남편의 건강보험은 지역가입자로 전환됐고, 임원 예우 차원에서 받고 있는 혜택도 2년 후면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남편 덕분에 감히 나로서는 해보지 못할 많은 것을 경험하고 누렸다.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충분히 감사한 일이다. 이제는 달리진 위치에서 또 다른 내일을 꿈꾸며 나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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