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취월장 (日就月將)

발전한 그림을 보고, 스스로 놀란 날들

by 최우성

약 5년 후 다시 화실로 돌아왔다. 사실 중간에 몇 번 방문하였지만, 정규수업이 아닌 당일 크로키 수업 위주로 들었었다. 화실의 모습은 내가 처음 온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언제나 들려오는 재즈 음악과 귀가 간질거리는 연필 소리는 조금이나마 현실 세계에 벗어나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옥 선생님의 지도하에 기초 수업부터 시작한 나의 실력은 이전보다 많이 좋아졌다. 여전히 형태는 엉망이었지만, 선의 느낌이 향상된 것은 확실했다. 마침, 이 시기에 전시 준비가 한창이어서 향상된 선의 느낌을 어떻게 살릴지 고민이 많았다. 주제를 고민하던 중 평소 확증편향에 빠져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해 낸 대상이 카멜레온이다.


카멜레온이 떠오르게 된 과정은 이렇다. 내가 확증편향에 빠졌다는 것을 알게 된 건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내가 다른 사람과 틀린다고 생각해도 다수의 의견이 맞다고 억지로 끼워 맞춘다는 지 트렌드에 따라 옷을 입지 않으면 감각이 없어 보인다든지 하는 생각들을 주입해 왔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이었다. 멍청하고도 한심한 생각이다. 마치 카멜레온이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기 몸의 색깔을 포식자의 피부색으로 변하는 것처럼 나 또한 그랬다. 나도 모르게 외부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은 것이다.


대상을 뚜렷하게 잡았으니 어떤 재료와 기법을 사용할지 고민하였고, 내가 가장 자신 있는 점묘법으로 그리기로 했는데 단지 카멜레온을 점묘로 표현하는 것은 비교적 단순하여 요소를 추가해 보기로 했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좀처럼 떠오르지 않다가 어느 날 문득 양치를 하며 핸드폰을 보고 있었는데 우연히 광고하나 가 눈에 띄었다.


그건 테트리스 광고! 보자마자 작품에 적용하고자 했다. 확증편향이라는 주제와 무의식적으로 대다수 사람의 의견을 나한테 억지로 끼워 맞추려는 시도가 테트리스와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덧붙여 검은 그림자 선생님의 조언으로 테트리스 블록 부분을 점묘로 표현하되 그 안에 작은 카멜레온들도 넣기로 했다. 아이디어스케치 결과 굉장히 특이하면서도 나의 개성과 색깔이 묻어나 보였다.




“거짓 없이 솔직한 경험” 그리고 약간의 지식 한 스푼. 이 두 가지가 가장 큰 것 같다. 경험을 글로 정리해 보면서 실제로 내가 느낀 현상들에 관한 논문들과 서적을 찾아서 분석해 보았다. 그리고, 이것을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었다. 이후 경험을 통해 깨달은 점을 작품 속에 녹였다. 그저 그림을 그린 뒤 그럴싸한 이야기를 붙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비로소 작품을 만드는 방법에 한 걸음 가까워진 것 같다.




작품은 절대 혼자서 만들 수 없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로부터 배워야 한다. 배움 속에서 내가 깨달은 결과를 그림으로 표현해야 한다. 즉 작품은 언어이자 세상과 나를 연결 짓는 우주이다.



내가 내린 결론이다. 놀랍게도 이를 기반으로 다른 작품을 보는 시야도 넓어졌다. 독서 모임이나 글쓰기 모임 등을 전전하며 남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방법과 그들을 존중하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사람들을 만나고, 내가 변화했기에 그림도 발전할 수 있었다고 확신한다. 10년 만에 진짜 작품을 만든 것이다. 무엇보다도 스스로 내 작품 속에 빨려 들어갔다.


두 번째 전시 때에는 사람들의 앞에서 작품에 관해 설명하는 것이 낯설었지만, 내가 느꼈던 것들을 솔직하게 털어놓아 오히려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나의 진솔한 이야기를 사람들이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는데 궁금한 점들도 많이 물어봐 주다니! 무엇보다도 친구들과 지인들이 먼 걸음을 해주어 정말 고마웠다.


전시장을 나오는 데 흰 눈이 펑펑 내렸고, 동화 같은 새하얀 풍경을 걸으며 하루를 가치 있는 경험으로 기록할 수 있었다.


신기루_최우성_색연필 및 펜화기법 (21.0 x 29.7).JPG 최우성 / 신기루 / 색연필 및 펜화기법 (21.0 x 29.7)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