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소를 찾아라! (1)

내면을 탐험할 수 있게 해준 작품들

by 최우성

새로운 수업을 듣게 되었다. 자유롭게 재료를 활용하여 추상화를 그리는 건데 특강의 이름은 5원소.

다소 특이한 이름이다. 말 그대로 총 5개의 파트로 구성된 수업이다.


1원소: 물

2원소: 불

3원소: 흙

4원소: 바람

5원소: ?


먼저 3원소 흙이라는 수업을 출발해 보면 이 수업은 소묘를 기반으로 재료를 이용해 제시된 대상을 그리는 것이다.


"어떠한 제약 없이 표현할 것"


수업의 핵심이다. 즉흥 작업을 선호하는 나에게는 정말 잘 맞았다. 소묘 수업임에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연필로 세밀하게 작업하는 것 외에도 흑연을 물에 섞어 붓으로 그린다든지 목탄으로 그린 뒤 위에 물 스프레이를 뿌려 흘러내리는 연출을 한다든지 본질적으로 틀에서 벗어나는 수업이다.


첫 시간은 모과, 사과, 단호박, 등 다양한 정물 사진을 보고 그리면 됐다. 나는 흑연을 활용하는 작업하는 것을 특히 좋아했는데 물과 섞으면 나오는 끈적함과 굳었을 때 그림의 분위기를 한층 높여준다. 내가 선택한 사진은 모과, 사과, 단호박 그리고 도자기였다.


먼저 사과와 모과를 보면서 평소 과일 알레르기가 있는 것을 떠올리게 되었고, 몸에 일어나는 반응을 표현해 보았다.


8화 001.jpg 재료는 흑연을 물에 섞어서 붓에 묻혀 사과와 모과를 표현했고, 목탄으로 강렬함을 더해주었다.



막상 그려보니 곤충의 눈이나 바위 같기도 하다. 모래 위의 물웅덩이 같은 느낌도 든다. 이렇게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주는 게 추상화의 묘미라고 생각한다.




다음으로는 못생기고 투박한 단호박을 도자기에 넣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그렇게 표현하기로 했는데 무언가 다도에 쓰이는 차선 같았다.


8화 002.jpg 흑연을 물에 섞어 손에 묻혀서 스케치북에 강렬하게 표현해 보았다.



이어서 책상 위의 모과를 목탄을 사용하여 형태를 살려 그려보았다. 의외로 특징을 파악하기 어려워 그리는 내내 고생했다. 스케치 없이 그리다 보니 비례가 반듯할 리 없었고, 어딘가에 눌린 것처럼 찌그러져 있었다. 재미있는 건 그림에서 이런 것들이 드러나 보인다는 거다.



8화 003.jpg 목탄을 활용하여 형태를 잡으려고 노력했다.



수업의 마지막에는 항상 총평하는 데 학생끼리 의견을 주고받거나 주로 검은 그림자 선생님이 솔직한 평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첫 번째 그림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선생님의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검은 그림자 선생님: 뭘 그린 거야?

나: 모과랑 사과를 그려봤는데 과일 알레르기를 생각하면서 표현해 봤어요.

검은 그림자 선생님: 과일보다는 여성의 몸처럼 보이는데? 네가 그린 두 개의 과일이 오히려 사람처럼 보여. 분위기 있게 그렸네.


여성의 몸처럼 보인다는 말씀에 조금은 후끈거렸다. 의도하지 않았던 것을 남을 통해 들으니 말이다.


두 번째 그림은 내가 느낀 것처럼 선생님 또한 다도에 쓰이는 도구라고 생각하셨다. 이에 선생님은 작품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간단히 덧붙여주셨다.



"여러분들이 이것만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집에 작품을 걸 테니 그에 맞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핵심입니다. 항상 이점을 염두에 두면서 작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또한, 작품을 만들 때는 이것저것 아이디어들을 터뜨려보세요."






다음 그림은 혹평받았다…. 근데 이건 내가 보더라도 좀 아닌 것 같긴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다른 사람들 눈에는 형태가 일그러져서 모과가 아닌 다른 정물로 보인 것 같다.


검은 그림자 선생님: 야 이건 뭐야?

나: 책상 위 모과를 그려봤습니다.

검은 그림자 선생님: 모과? 그냥 잣인데? 너 모과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아냐?

나: 엥? 사진 보고 그린 거예요!

검은 그림자 선생님: 에이 사진 보니까 안 똑같은데~ 모과를 무슨 잣같이 그리냐?

나: 아~ 모과라고요~~!!

검은 그림자 선생님: 이런 잣 같은 거~


학생들의 웃음소리에 내 얼굴은 선홍빛 복숭아처럼 붉어졌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