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뭐 하는 곳이야?

낯선 이곳에서 시작되는 크고 작은 이야기들

by 최우성

2017년 5월 20일 내가 화실에서 입문한 날이다. 휴학 도중에 방황하던 찰나에 우연히 한 애니메이션을 봤는데 나도 그 작품처럼 그려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작정 학원을 알아보았고, 우연히 화실의 유튜브를 통해 지금의 원장선생님을 알게 되었는 데 학생들을 지도해 주시는 모습이 타 학원보다 전문적인 지식을 겸비하고 계신 것 같아 선택했다. 그렇게 첫 화실의 문을 열게 되었을 때 내 생각과는 다르게 이상했다.


낡은 공장 같은 인테리어와 들려오는 재즈 음악. 그리고, 학생들이 집중하는 눈과 연필의 리듬에 맞춰 완성해 가는 그림들이 인상 깊었다. 이뿐 만 인가? 입시 미술 학원에서 보는 그림과는 다르게 제각각인 학생들의 작품들은 내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삐걱거리는 바닥 소리는 이 화실이 얼마나 오래된 곳인지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여기 있는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화실을 움직이고 있는 동력원 같았다. 유명한 애니메이션의 움직이는 성처럼 말이다. 한 여성분이 나에게 다가왔고, 이분이 누구인지 한 번에 알아보았다. 원장선생님은 상담 책자를 나에게 보여주시며 상세히 설명해 주셨고, 무엇을 배우고 싶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당연히 애니메이션처럼 멋진 일러스트를 그리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아 그러시구나~ 근데 일러스트는 기초가 중요해서요. 우선 기초 소묘부터 배우는 게 좋을 듯하네요~”


“네! 그럼 기초 소묘부터 배우겠습니다.”


사실 소묘를 말로만 들어보았지 어떤 식으로 그리는지 몰랐었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줄지 전혀 모른 채 선생님이 소개해 주신 서 선생님을 따라 지도받기로 했다. 첫 수업은 연필깎이였다. 학창 시절을 돌이켜보아도 중학생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런데 이게 뭐람! 선생님 말씀대로 해봤는데 의외로 너무 어려워서 깜짝 놀랐다. 솔직히 선생님의 설명을 내 손이 따라가지 못했다. 선생님께서는 다시 한번 차근차근 어린아이에게 설명하듯이 말씀해 주셨다.


“자 이렇게 손에 힘을 푸신 뒤, 왼손 엄지손가락으로 연필을 고정하시고요.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칼을 고정하신 뒤 천천히 앞으로 미세요.”


뭐… 뭐야 이거 왜 이리 어려워? 이게 맞아?


나의 당황스러운 표정과 함께 서 선생님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 본인도 꽤 어이없으셨을 것이다. 마치 외계인을 데려다가 가르치시는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까. 사실 선생님의 말씀은 들어오지 않았다. 눈치도 보이고, 삐뚤 거리는 연필을 보면 창피해서 열이 났다.


그리고, 연필만 계속 깎더니 서서히 집중이 안 되기 시작했다. 머리는 복잡해지고, 몸에 힘이 빠진다.






아… 급기야 학창 시절 때의 필름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고등학교 미술 시간대로 돌아간다…

친구들 사이에 나는 왜 잠을 자고 있는가.

친구들은 왜 이리 떠드는가.

나는 왜 미술 시간에 수학 문제를 풀고 있었는가.

하필 연필을 깎는 게 아니라 비누를 조각칼로 깎고 있는 거야!

비누가 연필이었다면 이것쯤은 식은 죽 먹기 아니었을까?

애초에 선생님은 왜 연필 깎는 법을 안 알려주셨을까?

돌아가던 필름이 멈춘다.


어찌어찌 정신을 다잡고, 연필을 다 깎은 뒤 화판에 스케치북을 올려놓았다. 연필의 모양은 어느 괴짜 조각가가 만들어낸 것처럼 괴상했다. 서 선생님은 다음으로 연필을 잡는 자세를 알려주셨다.


“일어서시고, 어깨 펴시고, 시선은 앞으로 고정하시고요. 연필은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고정하신 뒤 힘은 빼주세요. 선을 왔다가 갔다가 그려보시는 거예요.”


연필을 손에 쥐고, 대각선으로 그렸다가 원을 그렸다가 때로는 직선, 때로는 사각형으로 그리면서 이게 재활치료인지 필라테스인지 뭐가 뭔지 모를 찰나에 이내 적응이 되었다.

선생님의 말씀에 잠시 휴식을 취하고, 시간을 보자 어느새 초침은 빠르게 지나갔고, 다음 스텝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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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_003.jpg 그러데이션 연습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