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제 어머니라면 치료 안 합니다.
미국 해군 대학의 톰 니콜스(Tom Nichols) 교수는, 반세기 전 급격한 사회 변화로 일반 시민과 엘리트 전문가 사이의 장벽이 무너진 것을 주목합니다. 결과, 지식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되기보다 모두의 지적 수준이 동등하다는 비합리적인 신념이 확산되는 경향을 맞게 되었다고 지적합니다. 교육은 평생 배움을 멈추지 않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목적인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약간의 배움이 교육의 시작이 아니라 종착점이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인터넷의 발달이 이러한 ‘전문지식의 죽음’을 전부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많은 부분을 설명해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블로그에 이런 내용의 글을 올리자 전 세계의 수많은 과학자, 의사, 변호사, 교사 등의 전문직업인들로부터 정신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연락을 받았는데, 특히 의사들이 가장 진절머리를 내는 것 같다고 술회합니다(125).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알아. 증상을 설명하기 어려울수록 제대로 이해를 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어떻게 아픈지 모르는 의사가 치료는 제대로 할까 의심이 듭니다. 힉스 입자가 발견되었다는 기사보다 새로운 항암제나 몸에 좋다는 건강기능식품에 대한기사가 관심을 많이 받습니다. 관심이 많으니 정보도 많아지지요. 인터넷 검색이 대중화되기 전부터 진료실에서 제일 난감한 것이 ‘누가’ 복음이었습니다. 신약성서가 아닙니다. ‘누가’ 그러던데요,라고 시작되는 환자나 보호자의 말입니다. 출처도 없고 진위도 알 수 없는 ‘누가’ 복음에 대한 무한한 신뢰는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요즘 진료실에서는 AI가 그러던데요,라는 AI 복음이 들립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수많은 낭설들 뿐만이 아닙니다. 정론지에 인용된 기사들, 심지어 의학 저널에 발표된 논문도 모두 진리는 아닙니다. 2005년 플로스 메디신(public Library of Science, PLoS Med)에 실린 ‘왜 출판된 연구결과는 대부분 거짓인가(Why Most Published Research Findings Are False)’ 는 큰 반향을 불렀습니다(126). 존 이오애니디스(John Ioannidis) 교수는 자주 인용되는 임상 시험 결과가 나중에는 효과가 크지 않다고 드러나거나 아니면 아예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하고, 이런 사례가 결코 무시할 만한 수가 아님을 밝혔습니다. 의사들이 흔히 하는 농담처럼, ‘서둘러라, 새 약이 아직 효과가 있을 때 써야 하니까.’라는 거지요. 2011년 이 논문의 열람 횟수가 40만 회를 넘고 인용 횟수가 800건을 넘었지만, 네이메헌 라드바우드 대학의 강연에서 이오애니디스는 6년이 지났어도 출판된 논문의 신뢰도는 여전히 변한 것이 없다고 말했습니다(127).
폐경기 여성에게 호르몬 치료가 필요한 지에 대한 의견은 여러 가지입니다(128-130). 자궁내막암의 위험을 높인다, 골다공증 치료에 도움이 된다, 심혈관질환의 위험을 낮춘다, 아니다 오히려 높인다, 유방암 위험을 높인다, 아니다 치사율은 다르지 않다… 인류의 절반은 여자이고 50세를 전후해서는 모두 폐경을 맞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대상이다 보니, 이런 논문 결과는 나오는 즉시 미디어를 통해 대중에게 바로 전달됩니다. 온라인에서 논문 전문을 통째로 구할 수도 있습니다. 정보의 간극은 줄었습니다(131). 하지만 의료계 변혁의 선구자 에릭 토폴도 지식의 간극을 줄이기는 어렵다고 경고합니다. 의사와 보건의료 종사자들은 오랜 기간의 대대적인 훈련을 통해 막대한 양의 지식을 습득합니다. 의학적 배경이 없는 개인도 무제한의 검색은 가능하지만 결코 의사와 같은 지식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하여, 지식의 간극은 여전히 남아있게 될 것이라고 단언합니다(112). 전문가도 사람이고 한계가 있지만, 자신에게 이로운 결과를 얻으려면 이런 사람들의 지식을 이용하는 편이 더 낫습니다. 폐경기 호르몬 치료는 최신 논문을 보고 혼자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간의 병력과 가족력을 모두 고려하여 주치의와 상의해서 결정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이제 의학 정보는 넘쳐납니다. 지피지기, 병도 알고 내 정보도 안다면 모든 상황을 다 통제할 수 있을까요. 환자 중심으로 축이 이동하면서 결정권도 환자 손에 놓입니다. 저희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선생님 손에 다 맡길 테니 알아서 잘 부탁드립니다, 수십 년 언제나 듣던 말입니다. 배우 앤젤리나 졸리(Angelina Jolie)는 유방절제술을 받으면서 ‘나의 의료 선택(My Medical Choice)’이라고 했습니다(132). 그러나 결정권을 가지는 것이 반드시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미시간 대학의 법의학 교수 칼 슈나이더(Carl Schneider)는 의료에서 의사 결정에 대한 연구를 시행했습니다. 그는 환자들이 종종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에 부적합한 상태에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환자들은 지치고, 예민하고, 기진맥진하거나 낙심해 있었으며, 대개 당면한 고통과 구역증, 피로와 싸우는 것만으로도 버거워 중요한 결정에 대해 생각할 여력이 거의 없었습니다. 슈나이더는 감정적으로 좀 더 자유로울 수 있는 의사들이 애착과 두려움으로 인한 왜곡 없이 불확실성을 헤치고 논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환자들이 의사한테서 가장 원하는 것은 자결권 그 자체가 아니라 실력과 친절이라고 했습니다. 아툴 가완디(Atul Gawande)는 슈나이더의 연구를 소개하면서 많은 윤리학자들이 환자의 자결권을 여러 가치들 가운데 하나로 인식하지 않고 의학의 궁극적인 가치로 주장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말합니다(133).
제 어머니라면 치료 안 합니다.
기거렌처(Gerd Gigerenzer)의 어머니는 80세 나이에 눈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임상 경험이 풍부한 전문의를 찾아가 의논을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렇게 물으신다면 치료받아야 한다고 말씀드리겠죠.”
그 순간 내가 질문을 잘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선생님의 어머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라면 안 합니다. 그냥 계시라고 할 겁니다.” 그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답이 왜 달랐을까? 의사의 어머니는 의사를 고소할 리 없지만, 나는 고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134).
의사들은 일반인보다 훨씬 앞선 최신 치료를 받을까요? 의사들은 교과서에 나온 대로 질병을 설명하고 학회의 권고안에 따라 치료를 제시합니다. 그러나 자신이나 가족에게는 오히려 더 소극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왜 환자들은 이런 선택권이 없을까요? 의사들이 아는 것은 통계 자료일 뿐입니다. 어떤 의사도 한 개인의 여명을 자신 있게 단언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설명한다고 한들, 인생의 막다른 데에서 감정적으로 혼란스러운 환자나 보호자가 냉정하게 모든 정보를 정확히 판단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어렵습니다. 치료가 얼마나 고통스러울 것인지 실제로 받아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견딜 수 있는 고통의 한계도 개인차가 상당합니다. 주위에 환자가 많았던 사람과 병원이라고는 가본 적이 없는 사람도 치료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많이 다릅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개입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고, 모든 환자에게 교과서대로 설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은퇴한 남가주대학의 가정의학과 임상교수 켄 머레이(Ken Murray)는 치료를 받아도 5년 생존율이 5퍼센트 정도인 진행성 암을 진단받으면, 절대다수의 의사들이 치료를 거부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무의미한 치료’가 이뤄지는 것은 거의 모든 의료 전문가들이 목격한 바다. 몸을 절개하고 구멍을 뚫고 튜브를 넣고 기계와 연결하고 약물로 공격한다. 나는 동료 의사들로부터 이런 말을 셀 수 없이 들었다. “약속해 주게, 만일 내가 저런 상태에 있는 것을 발견하면 죽여주겠다고.”(135)
의사들이 ‘다르게’ 죽는 이유는 비교적 배경 지식이 많고, 병원에서 간접 경험을 많이 한 때문입니다. 머레이 교수는 글에서 갈로(Joseph J. Gallo) 팀의 자료를 인용합니다. 2003년에 765명의 의사들에게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의사들의 64퍼센트는 정상생활이 어려워졌을 때를 대비한 사전 의료지시서를 작성했습니다. 예상대로, 나이 든 의사들이 젊은 의사보다 비율이 높았습니다. 일반인은 20퍼센트에 불과했습니다.
경험이 치료 방향을 결정합니다. 결정권만 가진다고 의료의 질이 나아지지 않습니다. 정보가 많아질수록 오히려 혼동의 여지만 늘어날 수 있고, 몸이 아프고 감정이 혼란스러울 때 내리는 결정은 최선이 아닐 수 있습니다. 최선의 결과를 얻으려면 의사의 경험을 십분 이용해야 합니다. 의사가 필요 없는 세상이 인류가 원하는 바이지요. 나이 들고 죽는 것까지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시대입니다. 그보다 먼저 아픈 것을 해결하는 게 맞겠지요. 이미 환자 중심으로 의료의 축이 옮겨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도기에는 오히려 더 위험이 따를 수 있습니다. 어설프게 제작한 무인자동차는 도로에서 무법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의사가 없이 완벽하게 진료가 이루어질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기 전까지는 이중 삼중으로 체크를 해야 합니다. 의료 결정권이 환자에게로 옮겨진다면 책임도 함께 옮겨진다는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112. Topol E. 청진기가 사라진 이후: 청년의사; 2015
125. Nicholas T. 전문가와 강적들: 오르마; 2017.
126. Ioannidis JP. Why most published research findings are false. PLoS Med. 2005;2(8):e124.
127. Verhaeghe P.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 반비; 2015.
128. McNeil M. Menopausal Hormone Therapy: Understanding Long-term Risks and Benefits. Jama. 2017;318(10):911-3.
129. Manson JE, Aragaki AK, Rossouw JE, Anderson GL, Prentice RL, LaCroix AZ, et al. Menopausal Hormone Therapy and Long-term All-Cause and Cause-Specific Mortality: The Women's Health Initiative Randomized Trials. Jama. 2017;318(10):927-38.
130. Cho L, Kaunitz AM, Faubion SS, Hayes SN, Lau ES, Pristera N, et al. Rethinking Menopausal Hormone Therapy: For Whom, What, When, and How Long? Circulation. 2023;147(7):597-610.
131. Economist. A revolutionary healthcare is coming. Welcome to Doctor you. 2018.
132. Jolie A. My medical choice. the New York Times. May 14, 2013.
133. Gawande A. 나는 고백한다 현대 의학을: 동녘 사이언스; 2003.
134. Gigerenzer G. 지금 생각이 답이다: 추수밭; 2014.
135. Murray K. Why doctors die differently? Wall Street Journal. Feb 25,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