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굶겨 죽이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아오키 신몬은 염습과 입관을 업으로 하는 납관부(納棺夫)로 일했습니다. 그가 처음 일을 시작한 1960년대 중반에는 자택에서 사망하는 경우가 절반을 넘었고, 당시 상가를 방문하면 마른 나뭇가지와 같은 시신을 종종 대하곤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별안간 퉁퉁하게 살이 찐 시신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나일론 주머니에 물을 넣어둔 것 같은, 창백하고 퉁퉁한 시신입니다. 주삿바늘 자국이 양쪽 팔 여기저기 남아있는 퉁퉁한 시신이, 때로는 목이나 하복부로부터 도관(導管)을 늘어뜨린 채 병원에서 실려 나옵니다. 그는 이런 시신이 늦가을에 마른 잎이 떨어지는 것 같은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지 않고 생나무를 쪼갠 것 같은 부자연스러운 이미지를 풍긴다고 했습니다(136). 몸과 영양의 균형이 흐트러진 것입니다.
의사 이시토비 고조는 고령자의 기초 대사량과 필요 열량에 대한 자료가 제대로 확립되어 있지 않아서, 영양과 수분 공급이 과잉으로 이루어지기 쉽다고 지적합니다. 이럴 경우 얼굴과 손발이 부어오르기 쉽습니다. 그가 근무하는 노인 요양원의 간호사들도 자택에서 돌아가신 분의 시신은 보기가 좋다고 합니다. 병원에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영양 공급을 중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단할 수 없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스스로 음식을 먹지 못할 때 영양 공급을 중단한다는 것은 굶겨 죽이는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입니다(137).
사람은 먹어야만 살 수 있습니다. 입으로 들어간 음식은 식도를 거쳐 위와 장에서 흡수됩니다. 흡수된 영양분과 물은 혈관을 타고 전신으로 운반됩니다. 어떤 이유로든 입으로 먹을 수 없는 환자는 혈관에 바늘을 꽂고 수액과 영양제를 주사합니다. 불필요한 수분을 줄이고 영양분을 늘이려면 농도를 높여야 하는데, 신체 말단의 가는 혈관으로 주입할 수 있는 농도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심장에 가까운 중심혈관을 확보하고 영양을 공급해야 합니다. 계속수액줄에 연결되어 있어야 하니 움직임이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나온 방법이 위장에 관을 삽입하고 유동식을 공급하는 것입니다. 흔히 콧줄이라고 부르는 비위관은 의식이 있는 사람에게는 몹시 거북하고 빠지기도 쉽습니다. 이렇게 되면 남은 방법은 음식을 바로 위에 넣을 수 있는 관을 설치하는 위루입니다. 위로 설치는 먹는 즐거움은 모두 포기하고 말 그대로 오로지 살기 위해 영양을 섭취하는 방법입니다. 일시적인 상황으로 위루를 설치하고, 상황이 해결되면 제거할 수 있는 환자들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애초에 위루술은 식도가 좁아진 어린이의 응급조치로 시작되었습니다. 수술로 식도를 넓히고 나서 제거할 때까지 임시로 쓰는 방법이었지요. 그러나 신체 전반이 쇠약해지고 모든 장기가 기능을 소실해가고 있는 나이 든 환자들은 경우가 다릅니다. 기능이 회복되어 이루를 제거할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생명윤리 논쟁의 중요한 사례인 테리 샤이보(Terri Schiavo)도 위로를 제거하는 문제가 쟁점이었습니다. 샤이보는 1990년 심장 마비로 쓰러졌고, 이로 인한 뇌 손상으로 식물인간 상태가 되었습니다. 1998년 남편인 마이클 샤이보(Michael Schiavo)는 위루술로 설치한 급식 튜브를 제거하기 바랐습니다. 이런 상태는 부인이 바라는 삶이 아니라는 이유였습니다. 그녀의 부모가 반대하면서 법원 공방이 시작되었습니다. 연방 법원에서 남편이 급식 튜브 제거를 결정할 권한이 있다고 판결하면서, 2005년 테리 샤이보는 사망하였습니다. 그러나 남편과 부모 사이에 수년에 걸친 법정 공방에 미국 대통령까지 의견은 내놓으면서, 대대적인 주목을 받고 논쟁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 논란 중에, 200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물과 음식의 투여는 인공적인 수단에 의해 이루어질 때도 목숨을 유지하는 자연스러운 수단이며, 의료적 행위가 아니다”라고 말하며, 식물인간 상태의 사람들에게서 급식 튜브를 제거하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했습니다(138). 의식 연구의 개척자인 크리스토프 코흐(Christof Koch)는 의학적으로 볼 때 그녀의 상태는 논란의 여지가 없이 대뇌 피질이 작동을 멈춘 상태라고 평가했습니다. 안락사를 막으려는 주장에도 공감하지만, 샤이보와 같은 무의식 상태의 환자에게 식수와 영양분을 중단하여 ‘굶어 죽게’ 하는 방법은 너무 야만적이며, 자신이 이런 상황에 처한다면 약제로 빠르고 고통 없이 사망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받기 바란다고 했습니다(139).
초고령사회인 일본에서는 위루가 익숙한 시술입니다. 의료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도 시술의 결과를 잘 인식하고 있습니다. 만화가 오카노 유이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치매가 계속 진행하는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셨습니다. 어머니 몸무게가 34kg 이하로 떨어질 무렵, 요양원에서 위루를 설치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어왔습니다. 지인들은 부모에게 위로 시술을 한 것을 돌아가신 후에 뒤늦게 후회한다고 충고했습니다. 자연히 생을 마감했으면 하는 마음과 하루라도 더 사셨으면 하는 마음이 티격태격 싸워서 한 달여를 망설였습니다. 위로 시술을 결정하고 난 후에도 계속 갈등하는 마음이 남았습니다. 옳다 그르다는 말은 아무도 할 수 없다고 술회했지요(140). 위로 시술을 결정할 때는 그나마 고민할 시간이라도 있습니다. 물만 공급할 수 있으면 며칠 영양공급이 안 된다고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기 때문에 생각하고 의논할 시간이 있습니다. 인공호흡기를 걸어야 할 때는 다릅니다.
뭐라도! 어떻게 해서라도!
필립 로스의 아버지는 뇌종양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와 사망선택유언(living will)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뇌종양 진단 이야기보다 훨씬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머뭇거리다가 말을 꺼냈을 때, 아버지의 반응은 두려워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아버지는 보험회사 영업사원으로 일했었고, 죽음을 다루는 계약서에 노련하고 지식이 풍부한 전문가였습니다. 쉽게 동의를 얻고 안도한 시간은 짧았습니다. 종양은 호흡을 관장하는 부위까지 침범했고, 아버지는 응급실로 실려갔습니다. 의사는 종양의 진전을 막을 길이 없으니, 인공호흡기를 연결하지 않으면 가망이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일단 기계를 연결시키면, 떼지 못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결정은 그 자리에서 즉시 내려야 했고, 그것도 형이 비행기를 타고 오는 도중이어서 혼자 결정을 해야 했습니다. 괴롭게 숨을 쉬는 아버지를 앞에 두고 사망선택유언 이야기를 꺼내기는커녕, “뭐라도! 어떻게 해서라도!” 하고 말하기 직전이었습니다. 한참을 앉아 있다가 아버지에 귀에 속삭였습니다. 아버지, 보내드릴 수밖에 없겠어요. 아버지는 몇 시간째 의식을 잃고 있어 말을 들을 수 없었지만, 스스로 충격을 받았습니다. 놀라고 울면서 자신이 믿을 때까지, 아버지에게 그 말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141).
응급실에 환자가 실려옵니다. 심장이 뛰지 않으면 의사가 침대 위에 올라가 흉부압박을 시작하고 전기 충격을 준비합니다. 숨을 쉬지 않으면 당장 기관지에 삽관을 합니다. 한바탕 회오리가 지나가고 의사가 다급하게 빠른 말로 설명합니다. 인공호흡기를 걸어야 합니다.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의료진 뒤에서 덜덜 떨고 있던 보호자는 얼결에 모두 동의합니다. 그 와중에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어요, 앞으로 어떻게 진행이 되나요, 차분하게 질문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설사 있다손 쳐도 전쟁터 같은 응급실에서, 앉아서 천천히 설명을 들어보세요, 하는 의사가 있을까요. 응급실에 근무하는 의사 입장에서 병원에 실려온 환자는 살려고 오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환자 보호자 입장에서는 반드시 그런 것만이 아닙니다. 눈앞에서 죽어가는 가족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의료진 손에 넘기고 싶은 것입니다.
설문조사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집에서 임종하기를 바라지만, 실제로 집에서 사망하는 사람은 열에 한둘에 불과합니다. 2024년 한국인 전체 사망자의 약 75퍼센트가 의료기관에서 숨졌습니다. 2024년 통계에 따르면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36퍼센트를 차지했습니다. 4인 가족도 드물게 보는 요즈음, 실제로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 모습을 본 이는 거의 없습니다. 일상에서 죽음은 점점 멀어지고, 사람들은 낯설고 버거워합니다. 가족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을 맞닥뜨리면 그 자리를 모면하고 싶어 합니다.
한 친구의 어머니는 오랜 기간 폐섬유화증을 앓으셨습니다. 상처가 생겼을 때 제대로 회복이 되지 않으면 흉터가 남습니다. 어머니의 병은 폐 조직이 지속적으로 흉터로 변해가는 질환입니다. 원인도 모르고, 치료법도 없습니다. 숨쉬기가 점점 힘들어 지지요. 고등학교 때 처음 뵈었을 때부터 병을 앓고 계셨습니다. 의대생이 되고 의사가 되고 전공은 다르지만 그럭저럭 경험도 쌓여갔지만, 어머니의 상태는 점점 나빠지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돌아가시기 전, 입퇴원을 반복하시면서 힘들어하셨습니다. 친구는 어머니가 호흡이 힘들어 괴로워하시면 당장 응급실로 모시지만, 인공호흡기를 걸어야 할까 봐 두려워했습니다. 연결하고 나면 다시 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고생만 하실 테니 응급실로 가지 말라는 제 말에 그러면 집에서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하냐고 묻습니다. 뭐라 변변한 대답을 해 줄 수 없어 답답했습니다.
작가 필립 로스는 아버지가 뇌종양으로 진단받고 투병할 당시, 자신도 관상동맥질환으로 몇 차례 병원을 드나들었습니다. 자신의 죽음도 마주하고 살았기 때문에 사망선택유언까지 준비하고 어느 정도 마음의 대비를 했습니다. 그런 사람도 막상 아버지가 숨을 못 쉬게 되자 이성적으로 행동하기 어려워집니다. 평소 죽음을 실감하지 못하고 살던 사람들이 갑자기 이런 상황에 맞닥뜨리면 아무 생각을 못 합니다. 뭐라도! 어떻게 해서라도! 대부분 보호자들이 응급실에서 하는 말입니다.
자율 주행 자동차가 개발되어 도로에 등장할 날이 가까워지자 윤리 문제가 주목을 받습니다.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판단을 하는 사람 운전자와 달리, 자율주행차는 미리 프로그램을 해야 합니다. 어떤 원칙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지 의견이 분분하고, 공리주의의 고전적인 사고 실험 전차 문제(The Trolley problem) 가 미디어에 자주 등장합니다. 다섯 명을 구하기 위해 한 명을 희생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한 명 쪽으로 간단히 스위치를 돌려서 다섯 명을 구할 수 있다면, 대다수 사람들은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한 명을 육교에서 밀어 떨어뜨려 전차를 멈추어야 다섯 명을 구할 수 있다면, 대다수는 반대합니다. 철학자들은 계속 문제를 꼬아갑니다. 한 명을 죽여서 장기를 적출하여 다섯 명을 살리는 것은? 이쯤 되면 대부분 사람들은 불쾌한 감정이 극에 달해 더 생각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142).
중점은 사람을 해치는 데 얼마나 관여해야 하는가입니다. 스위치만 돌려서 해결된다면 할 수 있지만, 사람을 직접 밀어 떨어뜨려야 하는 상황은 매우 부정적인 반응을 일으킵니다. 죽여서 장기를 여러 개 적출한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지요. 사이코패스가 아닌 보통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을 죽인다는 생각만 해도 불편해집니다. 자기 가족은 말할 나위도 없지요.
응급실에 실려간 가족을 두고 의사가 지금 인공호흡기를 걸지 않으면 죽습니다,라고 할 때 걸지 않겠다고 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죽게 두세요,라는 말이나 다름이 없으니까요. 자기 입으로 가족을 죽도록 결정하는 데 침착한 사람은 없습니다. 필립 로스도 스스로 충격을 받고 놀라서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136. 아오키 신몬. 납관부 일기: 문학세계사; 2009.
137. 이시토비 고조. 우리는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하나: 마고북스; 2010.
138. Singer P. 실천윤리학: 연암서가; 2013.
139. Koch C. 의식: 알마; 2014.
140. 오카노 유이치. 어머니의 보물상자: 라이팅 하우스; 2015.
141. Ross P. 아버지의 유산: 문학동네; 2017.
142. Greene J. 옳고 그름: 시공사; 2017.